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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Mar 14. 2021

홍가리비로 크림 소스 찜을 만들어 보자

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7)



2년 만에 최악의 미세먼지가 들이치고
꽃이 피는 것조차 반갑지 않은 어느 봄날,
호다닥 뛰어나가 버선발로 맞이한 손님.

새하얀 스티로폼 박스에 몸을 실어
살얼음 낀 그대로 우리 집까지 날아온
그대의 이름은 통영산 홍가리비.




좋아하지만 찾아 먹지는 않았던 가리비를 대량으로 선물받게 되었다. 두세 번에 걸쳐 쪄 먹기만 해도 나쁠 건 없겠지만, 기회가 생긴 김에 최대한 새로운 요리를 해 보고 싶었다. 가리비가 집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가리비 손질법과 레시피를 폭풍 서치하고 수소문한 끝에 크림 소스 가리비찜에 도전!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몇 미짜리인지가 감이 안 오는 크고작은 빨간 가리비들이 얼음 공격에 기절한 채 스티로폼 박스 속 비닐에 수두룩빽빽하니 담겨 있었다. 이 가리비들은 나에게 맡겨 두라고 온 가족에게 큰 소리를 빵빵 쳤다.


가만 있자, 홍가리비는 해감을 해야 하고 참가리비는 껍질을 닦아야 한다고 했지- 하지만 홍가리비도 껍질을 박박 닦아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껍질이 깨졌거나 입을 못 다무는 녀석들을 골라내어 버리고, 팬에 눌어붙은 치즈마냥 살살 떼어내면 떨어지는 하얗고 얇은 막도, 진흙인지 플랑크톤인지 모를 표면의 이물질도, 엉겨붙은 힘줄같은 강력한 끈끈이도, 투명하고 미끄덩한 것도 모두 깨끗하게 떼어 내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이미 시계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해감까지 하고 나니 10시 반이 되어 버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기 중이신 운명공동체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익숙한 찜기에 물을 얹고 손질한 가리비들을 찜통 윗칸에 고루 펴 놓은 다음 화이트와인을 들이붓고 뚜껑을 덮었다. 물이 끓자 뚜껑 너머로 하나둘 입을 벌리는 것이 보였다. 5-10분 찌라는 말은 결국 끓기 시작하고부터 5-10분이었다. 그리고 다 먹는 데에는 10분도 안 걸렸다.


홍가리비 찜


가리비라면 당분간 생각도 안 날 만큼 잔뜩 먹었는데도 엄청난 분량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손질을 해 보고 나니, 시간만 넉넉하면 다른 요리도 충분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전날 마저 다듬어 둔 홍가리비로 야심차게 크림소스 찜을 준비했다.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어떤 레시피를 참고해도 결국 원하는 맛이 나올 때까지 도전하는 야매요리이므로 분량은 매우 대략적으로 기재할 수밖에 없다.


1. 껍데기를 깨끗하게 닦고 해감한 홍가리비를 준비한다. 4인분 기준으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홍가리비 30마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중불에 데운 다음, 다진 마늘 2작은술과 다진 적양파 1/2개, 쪽파 약간을 살살 볶는다. 적양파 대신 같은 분량의 샬롯을 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셀러리도 넣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동네엔 셀러리를 대파 한 단만한 뭉치로 팔고 있어서 패스했다)

3. 2번이 완성되면 준비한 홍가리비를 껍질채 냄비에 넣고, 화이트와인 1컵을 붓고 뚜껑을 덮어 3분 정도 끓인다.

4. 홍가리비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생크림 200ml, 페퍼론치노 5-6알을 넣고 중불에서 끓인다. 중간에 뚜껑을 열어보아 가리비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껍데기를 잽싸게 제거해도 무방하다. (껍데기에서 나오는 특유의 맛있음이 있지만 조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과감히 제거했음)

5.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다진 생파슬리를 뿌려 마무리.....

6. 5번에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리가 없으므로, 좀더 녹진한 맛을 위해 슬라이스 치즈 2장(체다는 아니었음, 정체불명의 크림색 소와나무 치즈)을 추가했다. 두 장의 치즈는 순식간에 녹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친 김에 파마산 치즈가루도 투하하여 간을 맞추고서야 비로소 완성.


가리비 크림소스 찜


Takeaway:

가리비 껍데기 손질은 미리 하더라도 해감은 직전에 하자.

크림소스에 어울리되 지나치게 자기 색이 강하지 않은 다른 내용물도 추가해 볼까 (양송이, 다진 감자 등. 다음엔 셀러리를 꼭 추가해 봐야겠다)

요리에 넣을 와인은 꼭 시음을 해 보고 사자. 달지 않다고 해서 샀음에도 단맛이 강했다.

남은 재료도 잘 활용하기: 화이트와인은 사과와 자몽, 애플민트를 넣어 샹그리아를 담을 예정

파슬리는 미리 넣지 말고 마지막까지 참았어야 했다.

플레이팅, 플레이팅, 플레이팅!




괜찮아, 잘했어, 다섯 번만 더 해 보면 그때는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야.


전날 밤 껍데기 손질과 해감을 마치고 물기없는 상태로 냉장보관한 가리비로 후다닥 요리를 했다. 해감을 미리 해 둔 탓인지, 화이트와인의 향에 가려진 탓인지, 껍데기를 미리 건져 버린 탓인지, 가리비 특유의 풍미가 소스에서 많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기껏 가리비를 잔뜩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즈 맛으로 덮어 버린 시시한 요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 아쉬움 가득했던 첫 도전에서 그나마 내 마음을 보듬어준 것은 폭닥하니 곱게 익은 다진 양파가 입 안에서 살곰살곰 씹히는 부드럽고 온화한 맛이었다. 왜일까, 이런 단순한 야채를 통해 크림소스가 건네는 작은 위로가 더 섬세하게 느껴지는 건.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는 것도, 가진 재료로 색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혀끝이 원하는 맛을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너무나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맛있다는 말" 그 이상이다. 좋은 시도였다, 다음엔 이것도 넣고 해 보면 어떨까, 순서를 바꿔 봐라, 이건 아쉽다, 다음에 또 해 달라, 다섯 번만 더 해 보면 완벽해질 거야... 그게 뭐라도 좋으니 건설적인 방향의 피드백을 통해 성장하고 더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건 어째서인 걸까. 가리비의 맛이 비어 있던 오늘의 요리처럼, 소소한 성취로는 메워지지 않는 마음 한켠의 틈이 물끄러미 껍데기 사이로 나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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