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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호 Jan 25. 2024

마르투치의 <추억의 노래>

소프라노 알리체 바르비에게 바침

(이어서)


주세페 마르투치가 친구 로코 팔리아라(Rocco Pagliara, 1857-1914)의 시에 붙인 <추억의 노래>야말로 오페라의 나라에 불어온 새바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의 노래>는 팔리아라가 알리체 바르비(Alice Barbi, 1958-1948)에게 헌정한 시이다. 작가이자 음악 평론가인 팔리아라는 나폴리 음악원의 수석 사서이자 행정 감독으로 재임한 마르투치의 동료였다. 그에게 시를 헌정받은 바르디는 당대 음악의 뮤즈였다. 모데나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바르디는 처음에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성악의 재능에 눈을 떴다. 그녀는 마르투치와 비슷하게 로마 퀴리날레 궁전의 살롱에 초대받았고, 1882년 밀라노에서 정식 리사이틀 데뷔했다. 17세기에서 당대까지 아우르는 그녀의 프로그램은 성악의 발전 단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알리체 바르비

바르비는 특히 노년의 요하네스 브람스와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브람스는 바르비가 부르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오늘 내 노래를 처음 들었다”라고 감동하며 그녀를 클라라 슈만에게 소개했다. 심지어 친구 이그나츠 브륄에게 그녀가 중년 이후 자신이 결혼하고 싶었던 유일한 여인이라고 편지할 정도였다. 1893년 그녀가 러시아 귀족 보리스 폰 볼프 슈토머제 남작과 결혼해 고별 연주를 가질 때 브람스는 직접 객석에서 무대로 올라가 반주를 자청했다. 이런 바르비가 팔리아라나 마르투치에게 어떤 존재였을지는 짐작하고 남는다. 후일 남작 부인은 두 딸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알렉산드라는 소설 <표범 Il gattopardo>를 쓴 시칠리아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와 결혼한다.

람페두사의 소설을 영화화한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표범>. 주로 ‘레오파드라는 영어 제목으로 소개된다

마르투치의 <추억의 노래>는 일곱 개의 로망스로 이어지는 연가곡이다. 앞서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An die ferne Geliebte>는 낭만주의 연가곡의 시발이며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로 이어진다.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기여는 <여름밤 Les nuits d’été>을 통해 연가곡의 관현악 반주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 마르투치는 베를리오즈의 작품을 알았을 것이기에, <추억의 노래>도 처음에는 피아노 반주였지만 뒤에 관현악 반주를 더했다. 또한 그 내용도 도달할 수 없는 낭만적 동경이라는 점에서 베토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가 그린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베토벤이 <멀리 있는 연인에게>에서 첫 곡의 주제를 마지막 곡에 다시 불러오며 두 사람 사이를 나누는 공간을 애틋하게 유지하듯이, 마르투치도 첫 곡의 주제를 여섯 번째 곡에 다시 불러오고, 마지막 곡에서는 주제를 변조해 회상하며 아스라이 떨어졌으되 더 멀어지지는 않을 각오를 다잡는다. 교향곡 2번이 이탈리아 비(非) 오페라 기악곡 르네상스의 시발이라면, <추억의 노래>는 성악에서 같은 의미를 부여할 곡이다.

     

추억의 노래

Martucci - La Canzone dei Ricordi, op. 68b - Anna Maria Chiuri - Lucio Cuomo

1.

아니... 꿈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어루만짐에 굴하고 포기합니다

나는 생각에 잠긴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금빛 구름 속의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내게 사랑스럽게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나는 깊은 슬픔이 편히 쉬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믿습니다

나는 우리의 달콤한 희망의 노래를 믿습니다

여기... 내 손을 뻗습니다!!

나는 황홀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리움의 불이 

내 핏줄에 타오릅니다!

그런데... 그대가 허공의 구름처럼 지나가네요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어느 먼 지평선으로!...     

La canzone dei ricordi: II. "Cantava 'l ruscello la gaia 

2.

아니... 꿈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어루만짐에 굴복하고 항복합니다

나는 생각에 잠긴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금빛 구름 속의 당신을 봅니다!     

당신은 내게 사랑스럽게 미소 짓습니다

그리고 나는 깊은 슬픔이 편히 쉬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나는 그 달콤한 유혹을 믿습니다

나는 우리의 달콤한 희망의 노래를 믿습니다     

여기... 내 손을 뻗습니다!

나는 황홀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리움의 불이

내 핏줄에 타오릅니다!     

그런데... 그대가 허공의 구름처럼 지나가네요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어느 먼 지평선으로...

무한히!...     

시냇물이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나무들은 4월의 축제를 노래했습니다     

아 봄, 찬란한 계절이여

아, 아름답고 온화한 날씨여!     

반딧불이가 하늘 위를 밝혔습니다

모든 꽃을 훑고 초원을 헤맸습니다     

아 봄이여, 웃음의 나날이여

오, 아름다운 사랑의 시절이여!     

산들바람이 오솔길을 간질였습니다

사랑으로 얽힌 덤불     

아... 진실한 숲의 평화여

아... 달콤한 신비여!     

내 창백한 얼굴 위에

내 밤색 머리 위에

희고 그윽한

성스러운 구름처럼

산사나무 꽃잎이 비처럼 떨어졌습니다     

시냇물이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가지 새로 낭랑한 음성이 퍼져나갔습니다     

아 봄, 이른 계절이여

쏜살같은 나날이여!     

La canzone dei ricordi: No. 3. Fior di ginestra

3.

- 금작화여

나는 제자이고 그대는 스승입니다     

그대 얼굴을 보면서 나는 모든 것을 배웁니다

그대는 스승이고 나는 학생입니다     

감미로운 세레나데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우울한 세레나데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 얼굴에서

잊는 법을 배웠나요?     

- 사랑스러운 제비꽃이여

모든 것 가운데 비참한 것은 고독한 영혼뿐입니다

그 길에는 사랑도 희망도 빛나지 않습니다     

오, 아름다운 그대, 함께 여행할까요?     

감미로운 세레나데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우울한 세레나데의 가사는 이랬습니다     

- 오, 아름다운 그대, 함께 여행할까요?

그런데 지금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알다시피 전 외로워요! 

그래서 웁니다, 웁니다, 웁니다!     

La canzone dei ricordi, Op. 68b: IV. "Sul mar la navicella"

4.

바다 위 조각배

검은 조개껍데기처럼

가볍고 날래게 달아났습니다

고요한 저녁을 향해

마치 욕망의 날개가

밀어낸 듯했고

영혼은 끝없는 망각에

사로잡힌 듯했습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물총새

조용하게 흩어지는 미풍

나른한 노래를 읊조리는

파도 속 환상적인 사이렌     

하지만 이보다 더 강력하게

머리 위 별들이 신비한 빛으로 빛났습니다

조각배는 달아났습니다

바다 너머 멀리 멀리...     

La Canzone Dei Ricordi: No. 5. Un vago mormorio mi giunge

5.

허무한 중얼거림이 내게 닿습니다. 조용히

나는 귀를 기울입니다, 달콤한 희망이

두근거리는 맘속에 솟아오릅니다     

아, 마치 이미 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바람에 실려 온 중얼거림은

사랑이 아닌 가지의 속삭임입니다!!     

한순간의 속임수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나는 다시 울 겁니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니

내 감각이 깨어나 요동칩니다

그이 손의 따스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좋았던 날들처럼     

그런데 내 머릿결을 스치는 것은

사랑이 아닌 바람의 어루만짐입니다!

순간의 속임수는 지나갔습니다

다시 한번 나는 웁니다!     

La canzone dei ricordi: VI. "Al folto bosco"

6.

울창한 숲, 고요한 그늘

우리가 사랑의 찬송을 불렀던 곳으로

내 영혼은 언제나 돌아갑니다, 슬프고

그립고, 고통스러워하며     

아... 더 진실하게

어쩌면 나뭇잎이 내 한숨의 메아리를 간직한 모양입니다

어쩌면 가지 사이에

내 환상의 마지막 음이 숨어 있는지도!     

오, 달콤한 밤이여! 오, 창백하고 신비로운 별들이여!!

향기로운 바람! 매혹적인 장미!!     

그대가 내 영혼을 흔들었어요

신비롭고 새로운 욕망의 혼돈 속에     

은은한 달빛 어린 고요하고 황홀한 새벽녘에

그대는 나를 울리고, 나를 사랑하게 했습니다!     

깊고 신비로운 눈빛으로 나를 굴복시켰습니다

슬픈 눈동자의 마법은 누가 지었나요?     

그대의 뜨거운 불꽃이 여전히 내 가슴속에 흔들립니다

여전히 그대에 귀 기울입니다, 나른한 한숨, 따뜻한 말투!     

아, 그대, 하얀 새벽 달빛의 주문으로

그대는 나를 울렸고, 나를 사랑하게 했습니다...

깊고 신비로운 눈빛으로 나를 사랑하게 했습니다!     

 La Canzone dei Ricordi: VII. "No, svaniti non sono i sogni"

7.

아니... 꿈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슬픔에 굴하고 포기합니다

나는 생각에 잠긴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금빛 구름 속에 있는 듯한 그대를 봅니다!     

그런데 그대는 허공을 지나갑니다

사라집니다... 먼 지평선으로... 

무한히...     

Bruna Castagna, Soprano. NBC Symphony Orchestra. Arturo Toscanini, Conductor

사후 잊힌 마르투치를 되살린 사람은 그보다 열한 살 아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였다. 1931년 볼로냐에서 열린 마르투치 20주기(실제로는 22주기) 연주회에서 토스카니니는 이틀 동안 그의 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리허설까지 잘 마쳤지만, 공연은 무산되었다. 무솔리니의 사돈인 코스탄초 차노를 비롯한 파시스트 고위 관료가 참석한 당일 토스카니니가 파시스트 찬가인 ‘청춘 Giovinezza’의 연주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원들에게 끌려 나가 구타당했고, 격분한 무솔리니는 그의 전화를 도청하고 여권을 압수했다. 국제적인 구명으로 여권은 돌려받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를 떠나게 된다. 마르투치는 미국에서 마르투치의 관현악 대부분을 꾸준히 소개했고, 1941년 3월 29일 연주회에서 메조소프라노 브루나 카스타냐와 <추억의 노래>를 방송했다.

주세페 데 니티스의 <해변의 여인>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레나 풀리처 레더러>

리카르도 무티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와 녹음한 음반은 19세기 이탈리아 화단의 주역이던 주세페 데 니티스가 그린 <해변의 여인 Donna in riva al mare>를 표지로 썼다.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와 브리지트 발레가 추억의 여인으로 소개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제레나 풀리처 레더러 초상화는 음악과 딱히 연관 짓기 어렵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표지는 키아라스텔라 오노라티가 부른 피아노 반주 음반이다. 마르투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나온 이 음반은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가 1896년에 그린 <꿈들 Sogni>을 표지에 썼고, 마르투치가 연주하던 스타인웨이로 반주했다. 그러나 누군가 좀더 이 음악을 주목받게 할 운명의 성악가라면 필리프 데 라슬로가 그린 알리체 바르디의 초상을 추억해야 할 것이다.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꿈들 Sogni>과 필리프 데 라슬로의 <알리체 바르디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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