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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Jan 21. 2024

층계참에 선 이랑에게

-졸업에 즈음하여 엄마가

프롤로그


임테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뜬 그날, 그는 담배와 라이터를 죄다 모아 버리는 퍼포먼스로 너를 환대했지. 나나 그나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몰랐을 거야. 다만 그 순간, 어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것은 기억이 나. 엄마 혹은 아빠로 호명되는 삶이 무엇인지 삼십 대 중후반의 그들이 어찌 알았겠어. 그저 흔들리며 균형 잡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방법이었겠지. 


1. 번쩍 뜬 눈으로


2006년 4월 3일 16시 30분, 열 시간 가까이 초짜 엄마를 다독이며 마침내 자궁문을 열어젖힌 너. 진통하는 내내 아빠가 틀어 놓은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며 지구별에 당도한 너, 두 손을 움켜쥔 채 크게 눈을 뜨고 엄마의 품에 안긴 너. 번쩍 뜬 눈에 너는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네 눈에 최초로 담긴 세상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곧 망울을 터뜨릴 4월의 배꽃처럼 눈부셨을까. 눈부심을 직면하여 눈에 담고 싶을 만큼 너의 첫 세상은 매혹적이었을까.


2. 심장에 구멍이


오른쪽과 왼쪽 심장 사이 벽에 구멍이, 6개월 정도 지나면 메워질 '수'도 있는 구멍이,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되었지만 청진기 소리로 잡히는 구멍이. 엄마는 병원 로비에 앉아 너를 안은 채로 한동안 넋을 잃었고, 젖을 물리다 너를 안은 채로 오래 울었고, 마음을 가다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소식을 들은 아빠의 가슴은 떨렸고, 떨린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6개월 동안 아빠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너를 바람 목욕을 시켰고, 6개월 후 네 심장의 구멍은 사라졌고. 너는 그 6개월 동안 우리를 너무나 자주 웃게 했고.


3. 감지


두 돌이 안되었을 때,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동생을, 엄마보다 빨리 감지한 너. 식음을 전폐한 너, 웃지 않던 너. 엄마의 배가 불러오자 동생이 태어날 날이 임박했음을 엄마보다 빨리 감지한 너. "내일 낳을 거야." 마침내 그 '내일'이 동생의 생일이 되게 한 너.


4. 원 밖에서


동생에게 엄마 품을 양보하고 어린이집을 다닐 무렵, 너는 좀처럼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어. 한가위를 맞아 어린이집 앞마당에선 강강술래가 시작됐지. 너는 마당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미끄럼틀로 올라가 원을 그리며 뛰는 아이들을 지켜봤어. 엄마는 속이 상했고, '왜 우리 애는 저 원 안으로 들어가지 않나.' 걱정했지. 집으로 돌아와 우연히 내 어린 시절 앨범을 봤어. 사촌들이 삼삼오오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놀이를 하고 있었고, 사진 속의 나는 방 한구석에 앉아 사촌들을 지켜보고 있었어. 나도 너와 같았어. 원 안 보다 원 밖에서 자주 편안함을 느꼈어. 육아의 시기는 자신의 유아기를 재 경험하는 시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 나와 많이 닮은 너를 지켜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오해보다 이해에 가까워질 수 있었어.


5. 자상한 여덟 살 선생님


주야장천 피아노로 고양이 춤을 치더니 해랑이를 옆에 앉히고 가르치기 시작했어. 해랑이가 건반 하나하나를 누를 때마다 "정말 잘하네.", "언니가 안 가르쳐 준 것도 하네."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 의욕이 앞서 가르쳐주기도 전에 건반을 누르려하는 해랑이를 제지하기보다는 몸을 바깥으로 빼며 해랑이 손이 건반에 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여덟 살 선생님을 나는 보았어.


6. 홈스쿨링


초등학교에 가지 않았어. 돌이켜보면 나는 너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네가 가고 싶지 않은 것만큼이나 나도 학교라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학부모 노릇을 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고, 진달래를 따서 화전을 부쳐 먹었고, 감자와 고추와 가지와 오이를 심었고, 아무도 없는 이른 여름 계곡을 독차지했지. 일 년이 지났어. 호기심 많은 해랑이는 유치원에 가겠다고 했고 나와 남겨진 너는 학교가 파한 후 아이들이 모이는 방과후 학교에 관심을 보였어. 내가 운전하는 전기 자전거 뒷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너는 그곳으로 갔지. 나는 네 엉덩이가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도 못할 만큼 어리석었어. 방과후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 학교에 같이 다니자고 너에게 권했어. 너는 1학년을 건너뛰고 2학년 신입생이 되었어. 이제는 내 두려움을 이유로 네 뒤에 숨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 초등학교 건물로 들어가던 네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해.   


7. 던져진 우쿨렐레


고사리를 끊고 집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어. 마당에서 고사리 삶을 물을 끓이고 있는데 네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어. 무척 화가 난 것 같더라. 씩씩대며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듯하더니 이내 되돌아왔어. 가방과 함께 들고 있던 우쿨렐레를 마당 한복판에 집어던지면서 이렇게 말했어. "학교 안 갈 거야!" 나는 그저 네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어. 잠시 숨을 고르다가 내동댕이 쳐진 우쿨렐레를 다시 챙겨 들고 학교로 향했어. 집에 돌아온 너에게 살며시 다가가 물었어. "이랑아, 오늘 아침 같은 상황에서 엄마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너는 말했어. "엄마가 나를 일찍 깨워줬으면 좋겠어. 학교에 늦지 않게."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순간 떠올랐어. 아무도 없는 연습실을 좋아했던 나를. 단원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하고, 환기를 하고, 믹스 커피 한 잔과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지하 연습실로 향하는 동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이곤 했던 이십 대의 나를. 열 살의 너는 내 안에, 이십 대의 나는 네 안에 있었어.


8.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십 대 중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너는 침대에 누워 있었어. 연극 수업 시간에 외워야 할 대본을 얼굴에 덮고 있었지. 여느 때보다 좀 이른 귀가였어. 대사를 외우는 것 같기도 했지만 시야를 가리고 싶어 하는 것도 같았어. 나는 가만히 네 곁에 누웠어. "이랑아, 무슨 일 있어?" 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했어. 그 목소리로 너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수업 시간이 차라리 편해. 쉬는 시간, 애들이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그저 널 가만히 끌어안았어. "아, 이랑이가 외로움을 벌써 알아버렸구나. 평생 함께 가야 할 외로움이라는 녀석과 너무 일찍 친구가 됐구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 근데 이랑아, 조금 더 살아 봐. 조금 더 살아보면 조금 달라지는 것 같긴 해." 외로움에 눈물짓는 너를 목격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 하지만 그때 예감했어. 나와 아주 많이 닮은 너와 더 많은 걸 나누게 되리라는 예감을 했어.  


9. 댄스댄스댄스


중고등통합 5년제 대안학교 졸업을 일 년 앞둔 어느 날, 너는 탱크톱을 입고 무대에 섰어. 정해진 프로그램, 그러니까 필수과목 이외의 활동을 좀처럼 하지 않던 네가 '춤'을 추기 위해 무대에 섰어. 네 손끝은 의미 없이 허공을 헤매지 않았고, 골반은 충분히 튕겨졌고, 가슴은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며 당당함을 격려했고, 다리는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켰어. 나는 네 춤이 좋았어. 적당한 긴장과 흥분을 누리고 있는 네 모습이 보기 좋았어. 너를 아끼는 한 선생님은 우셨어. 4년 만에 네가 드러낸 너의 다른 모습에 기뻐서 눈물을 흘리셨어.   


10. 어렵지만 말했어


자그마한 학교가 엄청나게 흔들리던 시절이었어. 어른들의 잘못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고, 엎드려 울고, 숨죽여 흐느끼던 시절이었어. 더 많이 세심하고, 더 많이 다정해지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시절이었어. 새로운 언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야기가 필요한 시절이었어. 친구들 사이에서 덜 사려 깊은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야.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을 두둔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너를 엄습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너는 이야기했다고 했어. 말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다고, 그런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했어.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은 네가 나는 무척 고마웠어.


11. 나는 엄마가


아마 피해자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이었을 거야. 거실에 누워 '벌거벗은 한국사'를 보다 잠이 든 것 같아. 다음 날 네가 쪽지 한 장을 줬어.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지. "나는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좋지만, 벌거벗은 한국사 보면서, 너드커넥션 음악 들으면서 쉬는 모습도 좋아." 비로소 알았어. 네가 나를 감당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늘 아니라고 말하고, 늘 문제제기 하고, 늘 튀는 엄마를, 자기 보다 다른 학생들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은 엄마를 네가 견뎌내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때 결심했어. 나를 돌보는,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것이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가르침임을 그때 알았어.   


12.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너


네가 그 아이와 통화하는 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어.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걸었어. '이건 저 아이의 게임이다. 내 게임이 아니다' 몇 번인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전화 끊으라고, 아니, 전화기를 낚아 채 별 미친 새끼 다 봤다고, 네가 뭔데 내 딸한테 이 지랄을 하냐고 소리치고 싶었어. 이불을 부여잡고 입술을 깨물며 신음하듯 주문을 외웠어. '이건 저 아이의 게임이다. 내 게임이 아니다.' 통화를 끝내고 네가 내 옆에 누웠을 때 그리고 네가 설핏 잠이 드는 것 같았을 때 그때 비로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너의 게임에 끼어들지 않은 나 자신이 대견해서 울었어. 몇 번인가 말했지만 나는 너처럼 할 수 없었을 거야. 내 자존심을 세우느라 너처럼 나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너는 너를 완전히 드러냄으로써 완전히 사랑해버리더구나. 자서전 발표가 끝난 후 집 앞에 꽃다발이 하나 놓여 있었지.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이랑이에게' 이런 쪽지와 함께. 아무도 미워하지 않은 너. 그래서 모두를 살리는 너. 너를 사랑해.  


에필로그


20여 년 전 마을 족구대회가 있던 날이었어. 아빠가 선수로 뛰는 동안 나는 막걸리를 마시고 빈 막걸리 통을 두드리며 신나게 응원을 했지.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온 그날, 너를 임신했어. 내 온몸에 신명과 흥분과 즐거움이 피처럼 돌 때 네가 나의 몸속으로 찾아온 거지. 그러니 이랑아. 너는 즐거움과 신명의 화신이야. 초등학교 3학년 때, 네가 쓴 학년 마무리 소감에도 비슷한 문장이 있었어. '신나는 일이 생기면 좋겠다!' 얼마 전 내가 '이랑이는 글 쓸 거니?'라고 물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 '아니, 난 더 신나는 일 할 건데?' 네가 신나는 일을 찾아가는 모습, 나도 신나게 지켜볼게. 18년 동안 나의 온기가 되어주어 고마워. 나누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줘서 고마워. 나의 딸이어서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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