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천천히 더할 나위 없이 천천히
목요일에 풀장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둘째가 아팠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 마음도 아프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불편하다. 짜증도 난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엄마라는 게 이거밖에 안되나, 자책하는 쪽으로 길을 잡고 나면 그때부턴 정말 망한다. 자책이라는 경보음이 울리기 전에 선을 그어야 한다. 엄마는 역할이고 나도 사람이다. 모성애처럼 지독하게 자본주의적,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워워 그만하자. 오늘의 메인 테마는 그게 아니니까.
20년을 웃도는 경력의 가사노동자이고 보니, 나에게도 요령이라는 게 생겼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대신 아픈 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일단'수용한다. 예전엔 이것도 어려웠다. 아픈 애를 두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제는 기쁜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기꺼이' 아이와 병원에 가고 아이를 살핀다. 이게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가. 그렇다면 내 글은 여기까지만 읽어주길 바란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 아이는 차도를 보였고 학교에 갔다. 금요일은 하루 종일 몸을 써서 일해야 하는 날이다. 오랜만에 다시 하는 일이라 휴식이 필수다. 퇴근 후 일단 드러누었다. 30분 쪽잠을 자고 나서도 풀장에 갈 마음이 나면 그때 참석 댓글을 달아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일어나고 있었다. 댓글을 달고 장비를 챙기고 일사천리에 풀장으로 갈 준비를 끝냈다.
고속도로는 뚫렸지만 저녁 도심 퇴근길은 만차였다. 저녁 다이빙이 처음이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출발할 때 10분 늦게 참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으나 조바심이 났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풀장을 향해 뛰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다이버들에게 다가가 목례를 했다. 아주 늦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녁 풀장에도 사람이 많았다. 수영장엔 조명이 켜져 있었고 낮에 보는 광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안면이 있는 다이버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색했다. 누구랑 버디를 해야 할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막막했다. 교육이 아닌 개인 연습 혹은 펀다이빙을 하러 온 강사분들이 있어 그들의 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프리다이빙이 참 가지 가지 하게 한다.
월요일에 캔디볼을 잡았지만 뭔가 역시 부족했다. 눈을 반짝이며 침착하게 코칭해 주신 J강사 덕분에 좀 더 줄 가까이 입수할 수 있었고 턴 동작 또한 부드러워졌다. 늘 고민이었던 입수 자세 또한 J강사의 조언을 적극 수용해서 한 단계 스킵, 산소와 에너지를 아끼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입수 과정이 단순해지니 줄에 붙는 것, 터닝을 편안하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오다가다 내 다이빙 모습을 지켜보던 G강사가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G강사는 말투와 행동이 거친 편이라 거리를 두고 싶은 이었는데, 관계 맺기를 자기 방식대로 하고 자기만의 유머 감각을 남발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J강사의 권유로 펀다이빙도 했다. 하지만 나는 펀다이빙이 '펀'하지 않고 어렵다. 더 '편'해져야 '펀'해질 것 같다. 다이빙 중간중간 부이에 매달려 J강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일명 빡센트레이닝이라 불리는 '몰차노브 트레이닝'을 신청했다고 하니, 반가워하신다. 자신도 몰차트레이닝 받고 강사 됐다고. (나는 강사 할 마음이 없는데 몰차트레이닝은 왜 신청한 건가) 분명히 실력이 쑥쑥 늘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펀다를 조금 더 하고 전체 출수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출수했다. 무리하지 않기로 한 나와의 약속은 지켜져야 하니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 운전인데도 어쩐지 눈이 덜 침침한 것 같다. 목도 뻐근하지 않은 것 같다. 퇴근 직후보다 덜 피곤한 것 같다. 정말 물에 약 탔나. 내일은 7시간짜리 세미나가 있는 날. 어쩐지 두렵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