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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Kumar Kim Jun 24. 2020

고구분투 상사맨 인도 생활기

인도에서의 개기일식과 부고 소식

아침 일찍 휴대폰에 일식 관련 메시지들이 왔기에 무슨 일이지? 하고 찾아보니 오늘 2020년 마지막으로 개기일식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자 친구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사이에 개기일식이 있으니 그 시간 바깥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라고 하였다.

무슨 의미인지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개기일식이 있는 동안 터부시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태양을 응시하거나 바깥에 나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어차피 락다운이라 바깥에 못 나갈 텐데"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개기일식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나른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요일을 보내는데 인도 고객사로부터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친하게 지내던 고객사의 사장님이 오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메시지였다.

우리 회사로부터 철강 제품을 몇백 톤 가량 수입하였는데 코로나로 결제 및 선적 관련 이슈가 생겨 본사와 조금 잡음이 있던 업체였다.

하지만, 회사 사장님의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고 우리 회사의 상황을 잘 설명하여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도  우리 회사의 결제를 가장 먼저 해주었던 고마운 고객사였다.

"코로나가 끝나면 찾아뵙고 결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찾아봬야지!" 하고 생각했던 고객사였는데

사장 아들로부터 갑작스럽게 받은 메시지에 잠시 동안 가만히 서서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깊게 심호흡하고, 몇 차례 찬물로 얼굴을 씻은 뒤, 애도의 답장을 보냈는데 이상하게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가라앉지 않아 추모하는 글을 쓰고자 책상에 앉았다.

2018년 초, 첸나이에 사무소를 설립하기 전 출장으로 매달 1-2주씩 첸나이에 방문했었다.

세계에서 2번째로 긴 마리나 비치를 따라 위로 올라가면 첸나이 항구가 있고, 그 근처에 철강 유통상들이 많은데,

그중 자주 가던 업체 한 곳과 성약 직전 단계라 마지막 가격 협상을 하고자 방문했다.

하지만, 인도 로컬 철강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있던 터라 본인 회사 이름으로 수입하는 것이 힘들다 답변하여, 결국 성약까지는 못하는 건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본인의 친구 회사를 통해 철강을 수입하겠다고 답변하며 잠시 기다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짜이 두세 잔을 마시며 1시간가량을 기다리니 인상 좋은 노신사가 찾아왔다.

이미 오후 3-4시가 된 시간인데 '굿모닝!' 하며 악수를 청하셔서 '굿 에프터눈 썰'하고 손을 맞잡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가격, 사이즈, 납기, 결제조건을 다시 확인하고 미팅이 끝나려는데 본인 회사가 바로 이 근처라고 함께 가자고 청하시기에 알겠다고 응하고 그의 차를 얻어 타 그의 사무실로 갔다.

불과 1-2k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사무실이었는데 혼자 갔으면 찾지 못했을 곳에 있었다.

속으로 "사장님과 같이 와서 다행이다, 오늘 간다고 하길 잘했구나" 생각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장님 자리 앞에 앉아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티(Tea) 한잔할래?"라고 물으셨다.

짜이를 마시겠다고 답하니, 아까 옆 업체에서 짜이를 마시지 않았냐고 묻기에, "회사마다 짜이 맛이 달라서 짜이 잘하는 회사에 더 자주 간다고" 답하고 "하루에 5잔 이상 짜이를 마신 적도 있고, 사장님 회사의 짜이 맛이 궁금하니 한 잔 더 마셔도 좋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하니 " 유아 하프 인디언(You are a Half Indian)"이라고 웃으시며 짜이 1잔을 주문하셨다.

사장님은 짜이를 드시지 않냐고? 물었더니 당뇨가 있어 본인은 일반 차를 마시겠다고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에게 따듯한 물을 부탁하셨다. 그리고 그때 사장님 아들을 만났고 명함을 교환하여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인연이 있던 친구였다.

과거 뭄바이의 한 대학원에 '패밀리 비즈니스' 관련 특강이 있어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친구가 동 대학원 출신이었고 대학원 프로그램으로 한국도 방문한 적이 있다며 '부산'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였다.

나도 '부산' 출신이라며 맞장구치고, 사무실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학과 교수님이 쓴 책에도 등장하는 남인도 유수의 철강 사업가 집안이었다.

그렇게 사장님 아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고객사를 넘어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전국 봉쇄 기간 동안, 맥주를 구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고객사(위 내용과 관계없는) 중 한 곳이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사무실로 맥주 1박스를 구해다 준 적이 있었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감사함을 표시했는데 친구가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어디서 맥주를 구했냐며 본인도 몇 병 필요하다고 하기에 우리 집에 오라고 하였고, 맥주를 몇 병 나눠줬었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에 결제해줘서 고맙다, 코로나 끝나고 같이 맥주 찐하게 한 잔 하자, 사장님은 잘 지내시는지 물었고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고 하여 전국 봉쇄가 끝나면 사장님 찾아뵙고 인사드리겠다 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오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났지만 각별했던 굽타 사장님,

사장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을 하늘도 알고 있는지, 오늘은 개기일식으로 낮에 잠시 동안 해가 졌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40년간 만지시던 철강을 잠시 손에서 놓으시고, 생전에 당뇨로 못 드시던 짜이 한 잔 손에 쥐고 달콤한 인도 디저트들을 먹으시며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 아들과 제가 훗날 뵐 수 있을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휴식 취하고 계신 곳 찾아뵙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철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를 앉혀놓고 친절히 설명해 주시고 주위의 철강 업체 사장님들도 소개해주시고  마지막으로, 사장님 아드님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즈니스'에서 '신뢰'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 것인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You were always patient with my lack of English and knowledge on steel.

You meant more to me than just a business partner.

During 2 years in Chennai, we became good friends.

You were generous, warm and wise and you were always ready to help me.

I will miss you. In deepest sympa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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