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행사 상품이 너무 탐났어요-복면가왕 출연기
나는 태어나서 경품에 당첨되어 본 적이 없다.
뭐든지 내 노력이 들어가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왔지 꽁으로 이득을 본 경험은 없다.
회사 입사한 첫 해 연말 행사 경품 추첨 시간은 너무나 괴로웠다.
내가 될 리가없는 데 너무나 매력적인 상품들은 심장을 뛰게 했으며, 추첨이 진행될 때마다 나는 나의 비천한 당첨 운을 확인할 뿐이었다. TV, 스타일러, 해외 여행권 등 당첨만 된다면 다음 한 해 회사에 더 충성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2년 차 연말 행사에 '복면가왕'을 진행한다는 전사 메일이 왔다.
참여해서 순위에 들면, 분명 좋은 상품을 줄 것 같았다. 추첨으로는 절대 받을 수 없을테 니,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TV까지는 아니어도 (왜냐하면 내가 1등을 하지는 않을 테니..?) 스타일러? 핸드폰?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별명을 뭐라고 지을까 하다가 '키키'로 정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그 '키키'였다.
긴 망토를 두르고 가면을 쓰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말 행사 당일,
"'키키'를 무대 앞으로 모십니다~ " 라는 멘트와 함께 나는 조심스럽게 무대로 발을 내디뎠다.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발을 두 세 걸음 내디을까?
관중석 저 멀리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XXX다!!(내 이름 석자가 귀에 꽂힌다)"
소장님이었다.
나는 단지 무대 위로 걸은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을까.
소장님의 외침을 듣고 내가 마치 그 XXX가 내가 아닌 척, 그냥 태연하게 무대 중앙으로 마저 걸어 나왔다면 어쩌면 사람들이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주춤주춤 다시 무대 뒤편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다가 아차 싶어 다시 무대로 나아가 준비한 노래를 불렀지만, 이미 사람들은 모두 내가 누구인지 안 이후였다.
아마도 이제 키키가 누구인지도 안 사람들이 웃음을 선사해 준 내 모습에 표를 준 것인지, 나는 토너먼트에서 오르고 올라 준비한 3곡을 모두 불렀고 최후의 3인에 선정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내 심장은 경품 추첨 때 마냥 쿵쾅댔다.
'어떤 상품일까?! 최후의 3인이면 1등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상품이겠지?'
한껏 기대했다. 역시나 1등은 정말 노래를 잘한 후배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등수를 나누지는 않고 바로 상품을 주는데, 나는 상품에 너무나 실망하고 말았다.
온수매트라니...
스타일러스를 기대한 나에게 온수매트는 조금 뭐랄까, 최신 아이폰을 기대했는데 갤럭시 보급형 핸드폰을 받은 아이의 마음이랄까?
*나중에 소장님이 나를 바로 알아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공부하시고 생활하셨던 소장님은 내가 좋아하는 '마녀배달부 키키'를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평소에도 나를 보면서 내가 '키키'와 닮았다고 생각해 오셨고, 그래서 그냥 정말 무의식적으로 복면가왕에 '키키'가 등장했을 때 나라는 걸 아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