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촉은 과학이다
나는 맛이나 냄새를 말로 표현하는 것에 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여름밤 냄새', '겨울아침의 냄새' 이런 거 말고.
이를테면 ‘바닷가에서 신나게 놀고 씻고 나왔을 때의 피곤한 팔에서 나는 냄새', ‘초콜릿을 먹고 나서 느껴지는 플라스틱의 맛' 등등.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반문한다.
사람들 : "그걸 먹어봤어?"
나 : "겠냐?"
참으로 답답하다.
지금껏 살면서 맡은 강렬한 냄새 중 대표적인 게 있다면 내가 크게 다쳤을 때 나는 아픔의 비린내가 있겠다. 어릴 때 2층주택에 산 적이 있었다. 조심성이 없는 나는 항상 여기저기서 잘 넘어지고 깨지기 일쑤였다.
하루는 엄마가 "계단 조심해!"라고 말하자마자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 시각적으로는 회색의 계단이 눈앞을 마구 지나갔고, 냄새는 먼지가 가득 쌓인 뽀얀 콘크리트(?)와 함께 피비린내 비슷한 차가운 냄새가 났다.
그 후로도 종종 크게 넘어지거나, 놀이터에서 뺑뺑이를 돌리다가 날아갔을 때 등 위험한 순간에는 여지없이 그 냄새가 났다. 불쾌했다.
내 인생 두 번째의 불쾌한 냄새를 맡은 건, 결혼 후 만 3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바로 '불륜의 냄새'.
결혼을 하자마자 전역을 한 남편은 사기업에 잠시 다니다 너무 힘들다며 돌연 퇴사를 했고, 다시 군무원이 되겠다며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게 보였고,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던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게 너무 답답했다. 남편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응원해줬다. 남편이니까. 다행히 백수 생활은 길지 않았다.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운이 좋게도(?) 무시험으로 경력이 있는 전직 군인들을 위한 군무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떴다. 군대문화가 싫어서 전역을 감행했던 남편은 다시 제 발로 무덤으로 들어갔다. 군수 쪽 경험이 많았던 관계로 보급품을 담당하는(?) 7급 군무원이 되었다. 암튼 남편은 경기도에 위치한 부대에서 이제 더 이상 '대위'가 아닌 '주무관'으로 불렸다. 다소 생소한 이름. 그래도 나는 그의 직업군인으로서의 힘듦과 고역을 공감했기에 그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이제 좀 괜찮겠지?
어림도 없었다. 이번에도 문제가 그쪽에서 발생했다. 남편이 일을 또 그만두고 싶어 했다.
같은 일을 하는데 군인보다 급여도 적고 일은 일대로 해야 하는 군무원이 너무 싫다고 했다. 근데 이 사실은 분명히 본인도 알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군생활을 하면서 근거리에서 군무원들을 보았을 테니... 군무원이 되기 전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군무원이 부럽다고 했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럼 군인을 계속하든가...'
물론 툭하면 야근을 하긴 했지만 세상에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너무 버겁다고 느끼면 직속상관에게 토로해서 직책을 바꾸든 다른 부서로 옮기든 방법을 찾아냈다. 그런데 남편은 바깥에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다가 집에만 오면 나에게 그 힘듦을 다 토해냈다. 본인이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동네 정신과에 갔다. 결과는 너무나도 정상. 당연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그렇게 잘 자고 잘 먹을 수는 없다.
의사 선생님은 남편이 스트레스에 너무 취약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봐도 그랬다. 작은 스트레스만 생겨도 포기해 버리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
결국 남편은 처방전을 잘 써준다는.. 의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의사에게 찾아가 징징거렸고, 원하던 진단서를 받아내 휴직계를 냈다. 휴직 기간 동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고, 나도 여러 번 대화를 통해 설득을 했다. 너무 힘들면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가짜)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으니 눈앞에 대고 큰소리로 나 못하겠다고 하라고 했다. 남편은 묵묵히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할 인물이었다. 그걸 지켜보는 나는 속이 뒤집어졌다.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 군인이었다니,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니...' 나는 내가 체격조건과 체력만 좋았다면 적어도 군인으로서 별은 바라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 다시 현실로! 이제 남은 것은 현재 살고 있는 내 고향 도시에서 남편의 부대가 조금 더 가까운 도시로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사업을 할 생각이었다. 남편의 출퇴근 거리가 짧아지면 덜 힘들겠지...
부대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맡게 되었다.
'불륜의 냄새' - 피가 하얘지면서 어렸을 때 화면조정하던 흰색과 검정 점이 막 섞이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처럼 눈앞이 그렇게 보이며 나는... 하얗고 찐득한 피비린내.
평소 '집-부대-집'만 오가고 집에 와서는 밥을 먹고 핸드폰은 내버려 둔 채 게임을 하거나 넷플릭스로 나랑 전쟁영화를 섭렵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참고로 우리는 연애할 때부터 한 번도 서로의 핸드폰을 본 적이 없다. 비밀번호를 서로에게 알려주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만큼 신뢰가 두터웠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에도 친구에게 전화가 오든 가족에게 전화가 오든 남편은 항상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참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지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난리부르스를 쳤다. '아니, 부대 일만으로도 죽겠다고 곡소리를 내놓고 운동을 하러 나간다고?' 그리고 그렇게 본인이 계획 세운 것을 잘 이뤄내는 인내심도 추진력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운동을 꽤 길게 오래 했다. 냄새가 났다. 개거지 같은 피냄새. 운동을 하러 나간다는 사람이 향수를 뿌린다. 그것도 내가 사준 향수. 본인은 일머리가 좋아 남들보다 일을 일찍 끝낸다고 연애할 때 떠벌떠벌 거리던 그는 갑자기 아침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며, 혹은 가서 코딩 공부를 한다는 별 말 같지도 않은 믿어주려야 믿을 수가 없는 핑계를 대며 새벽 여섯 시에 출근을 했다.
그리고는 밤 10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와서는 옷만 갈아입고 나가서 12시까지 운동을 했다.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은 바람을 피우고 싶으면 머리를 쓰라는 것이다. 한 여름에 2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온다는 남편은 들어올 때 항상 뽀송뽀송했다.
'제발 머리라는 것을 써라 멍청아.'
이 멍청이가 더 이상 국군(아군) 지휘관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누군가와 카톡을 나누는 것을 목격했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고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멍청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 자리에서 이혼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인정하는 것이 겁이 났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결혼생활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쉽지 않은 결혼생활이지만 똥덩어리를 키득거리며 함께 굴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혼자서 무거운 똥덩어리를 울면서 굴리는 가여운 쇠똥구리가 되어있었다. 아니길 바랐다. 내가 잘못 의심하고 있길 바랐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여자의 촉은 무시무시하다. 그때부터 나는 뭘 먹지도,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다. 남편의 핸드폰만 노려보고 있었다. 저걸 훔쳐서 도망가야 하나 잘 때 손가락을 들어서 지문을 인식해야 하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만 가져오면 되는데, 출근할 때 미행을 해봐도 되는데... 평소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 등 범죄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섭렵한 나는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말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나의 일이 되니 늘 생각하기도 전에 행동으로 옮기던 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확인하게 되면 내가 무너질 거 같았다.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살은 어마무시하게 빠졌다. 누가 그랬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고, 최고의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라고. 정답이다. 그렇게 내가 남편을 지켜본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심호흡을 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요즘 왜 이렇게 집에 잘 안 들어오려고 하는지, 뭐가 문제냐고 물어봤다. 남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남편 : 나 아기를 갖고 싶어.
나 :............................. 어?
* 참고로 난 불임환자다. 이십 대 초반에 알게 된 사실이고, 남편과의 연애 초기에 남편이 성급히 결혼얘기를 꺼낼 때, 만 번은 고민하다 털어놓았다.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확률이 1%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내 인생에 아이는 없다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남편(그때 당시의 남자친구)은 내 손을 잡으며 그걸 말하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냐고, 본인은 아이를 예뻐하지도 않고 흙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서 나의 자식에게 그 수저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정말 아이가 없어도 괜찮겠냐고. 그러면 항상 본인을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3년을 더 연애하고 결혼했고, 나의 부모님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도 아빠가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물었다(부탁했다). 아이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확실하냐고, 그 말은 앞으로 살면서 나에게 아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처 주지 말라는 우리 아빠의 질문을 가장한 눈물겨운 부탁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씩씩한 군인이었던 남자친구는 조리 있게 이러이러해서 본인도 아이 생각이 없다고, 본인은 원래도 내가 이상이 없었다고 해도 결혼하면 남자인 자기가 수술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혹시나 아기가 생길까봐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대답했고 우리 가족 모두는 그 말을 믿었다. 너무 고맙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근데 아이를 갖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