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식범이 가장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
남편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한 뒤로 거의 두 시간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두 눈에서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소파가 젖어들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마를 새가 없이 눈물은 하염없이 났다.
내 욕심이었다.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결혼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사람의 말을 믿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너를 믿는다고 얘기했는데 그걸 가장 먼저 공격했다.
잠시 뒤, 어지러움을 느끼며 내가 물었다.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그럼 어떡하자는 거야?"
너무 기가 막혔지만 다시 물었다.
그 후의 대화는 이러했다.
남편 : 이혼하자.
나 : 싫어.
남편 : 싫어? 왜?
나 : 아기 없을 거 알고 결혼했잖아. 내가 왜 이혼을 해? 너 여자 있지?
남편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여자가 있긴 무슨 여자가 있어!
나 :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 내 인생에 이혼은 없어.
남편 : 근데 너는 애를 못 낳잖아. 나는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나 : 그럼 입양하자.
남편 : 아니, 나는 내 아이를 키우고 싶어.
나 : 그건 안돼. 다시 한번 말하는데 여자 문제가 아니라면 이혼은 없어. 이 자리에서 여자가 있다고 말하면 나는 십원 한 장 받지 않고 아무 미련 없이 이혼해 줄게. 어때?
남편 :........... 여자 문제가 아닌데 어떻게 해..
남편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 후 나는 핸드폰을 보여달라고 했고 남편은 완강히 거부했다. 거지 같은 냄새가 또 났다. 온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어지러웠다. 일단 남편은 바람을 쐬겠다며 밖으로 나갔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눈물이 왈칵도 아니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듯 쏟아졌다. 더 나올 눈물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무나도 자상하게 괜찮다고, 오히려 우리에게는 축복이라고, 너는 원래 몸이 약한데 아이까지 가졌다고 생각해 보라고, 난 네가 건강해서 너랑 같이 오래오래 행복한 노부부가 되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근데 그 사람의 입에서 칼날이 춤을 췄다.
저녁이 되어서야 남편은 돌아왔고, 나는 여자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 사이에 소통이든 뭐든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니 부부상담을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바람이 아닌가?'라는 헛된 희망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기다림 끝에 부부상담소를 가게 되었고 총 8회 정도의 부부상담을 받았다.
부부상담을 진행하면 중간에 개별상담을 진행한다. 사정 상 남편이 먼저 하고, 그다음 주에 내가 하게 되었는데 상담사님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oo씨, 원래 상담사는, 특히 부부상담을 하는 상담사는 절대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되는데, 내가 너무 딸 같은 oo씨라 주제넘지만 말씀드려요. 남편이랑 헤어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또 한 번 피가 사라졌다. 왜냐고 되물었다.
"남편은 너무 이기적이고 oo씨를 전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그냥 아이가 갖고 싶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이혼하고 싶다는 말만 해요. 저런 남자랑 살면 너무 힘들어요. 세상에 좋은 남자 얼마든지 많아요(이건 사실이 아니다). 그냥 놓는 것도 방법이에요. oo 씨같이 예쁘고(이건 사실이다) 능력 있는 사람이 왜 이 남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지 이성적으로 판단해 봐요. 그리고 밥 좀 먹어요. 볼 때마다 살이 너무 빠져서 보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미 여자가 있었던 남편은 상담 내내 시종일관 싹수없고 건방진 태도로 상담사님을 대했고, 정상적이지 않을 대답만 골라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상담사 : 와이프(나)가 나중에 아프기라도 해서 일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남편 : 이혼해야죠. 둘이 돈 벌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이런 식의 가정교육 못 받은 티를 뿜어냈다. 콩콩팥팥이다.
세상 남인 상담사님이 듣기에도 안쓰러운 나의 상황. 이혼을 한다면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될 것이다. 그 일만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가 많아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을 내가 결혼을 해서 우리 부모님은 참 좋아하셨고, 무뚝뚝하지만 나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던 남편을 정말 아껴주셨다. 근데 이제 와서 부모님께 말을 하라고? 아이 때문에 이혼한다고? 와.. 그건 내 욕심으로 인한 결과로 우리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전동드릴로 박는 것이었다. 절대 죽을 때까지 이 이유만큼은 안 된다. 만약 그 이유가 불륜이라고 하면 나 혼자 감당하고 죽을 때까지 말하지 말아야지.
그때부터였다.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려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신은 똑바로 차려야 했다. 파도 바로 앞에 모래성을 짓듯, 마음을 굳게 다지면 파도에 쓸려가고 또 지으면 또 쓸려 내려갔다. 밥을 먹으면 다 게워내기 일쑤였다.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으며 버텼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안쓰러워했다. 왠지 뭔가를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아무것도 모르셨을 것이다). 그냥 너무 비참했다. 생판 모르는 동네에서 가장 먼저 단골이 된 곳이 병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또 운동을 하겠다며 오늘은 먼 곳으로 산책을 나가겠다고 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해볼 거라고 생각조차 못한 행동을 이어갔다. 남편의 가방을 뒤졌다. 피임기구가 나왔다. 멍청한 새끼는 내가 뒤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걸 버젓이 넣고 다녔다. 그리고 거기에는 남편의 비뇨기과 진료내역서가 있었다. 처방받은 약을 검색하니 성병환자들이 먹는 약이었다. 아주 지랄도 가지가지한다. 얘네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증거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완벽한 물증이 발견되었다. 이제 사실은 드러났고 나는 조용히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청부살인', '장기매매'... 죽여버리고 싶었다. 결국엔 여자가 있었으면서 '외도를 한 남성'이라는 타이틀이 싫어서? 또는 위자료를 주기 싫어서(아마 이게 이유였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 정말 ‘아기’ 그게 이유였어도 그 이유라고 말했으면 안 되는, 어떻게든 다른 핑계를 댔어야만 했지만 결국 멍청하고도 잔인하기 짝이 없던 그는 우리 사이의 금기어였던 '아기' 얘기를 나에게 했다.
그것도 서로 가장 사랑했던 사이의 사람이. 누군가가 나에게 그 말을 한다면 나 대신 싸워줄 거라 믿었던 사람이 본인이 궁지에 몰리자 필살기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배신감과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면식범이 상대를 더 잔인하게 죽인다고. 육체적 살인의 현장은 아니었지만 그날 그는 나를 수차례 찔러 죽였다. 그냥 칼에 찔렸으면 그거보다는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악한 마음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사지를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다. 계속해서 검색을 하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손이 덜덜 떨렸다. 속은 울렁거렸고 너무 어지러웠으며 구역질이 나왔다. 그런데 소파 밑에서 무언가가 나온다.
이름하여 '귀뚜라미'.
나는 곤충을 정말 정말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포증에 시달려서 예전 해외 유학시절에 바퀴벌레 때문에 이사를 나간 적도 있었다. '귀뚜라미'. 이름도 징그러워 우리가 연애를 할 때 우리끼리 '뚜라미귀'라고 불렀었다. 유독 우리 아파트 현관에 뚜라미귀들이 많았다. 내가 그걸 보면 펄쩍펄쩍 뛰는 걸 아는 남편은 늘 먼저 가서 뚜라미귀가 있는지 살펴봐주고 있으면 멀리 쫓아내거나 죽여줬다. 내가 혼자 있을 때 뚜라미귀가 나올까 봐 늘 걱정을 해주던 사람이었다. 근데 빌어먹을 그게 이 타이밍에 눈치 없이 기어 나왔고, 소파 밑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얼른 작은 방으로 도망가서 방금 전까지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귀뚜라미가 나왔으니 운동 그만하고 빨리 좀 와달라고. 부탁한다고. 너 새끼를 죽이기 전에 나부터 살아야 했기에.
돌아오는 답변은 차가웠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두 년놈의 행복한 시간을 내가 방해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한숨을 푹푹 쉬며 운동 끝나면 갈 테니 방에 숨어있으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핸드폰만 가지고 너무 더운 여름날 작은 방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뚜라미귀의 동태를 살피며... 남편이 돌아오고 소파를 들어내고 귀뚜라미를 잡았다. 그러면서 '이거 하나 혼자 못 잡냐..'라며 구시렁거렸고 난 그걸 들었다.
너 새끼가 나보다 잘난 게 벌레 하나 안 무서워하는 거였다. 근데 그거 하나 해주면서 구시렁거린다는 게, 그리고 이제, 모든 싸가지는 밥 말아먹은 행동의 이유를 알아버린 나에게 그 모습은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생경하고 슬펐다. 아니 그냥 슬프고 슬펐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지금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느 날 갑자기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나에게 말했다.
남편 : 우리 상담 거의 다 끝나가잖아. 근데 달라지는 게 없잖아. 이혼하자. 나 이제 너한테 생활비도 안 줄 거야. 친정으로 가고 싶으면 가. 데려다줄게. 아,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이제 너 아기 못 가지는 거 아셔. 너네 집안 가만두지 않을 거래.
나 : 뭐라고? 지금 너네 엄마라고 했어?
그걸 말했어? 왜?
남편 : 사실이니까.
결혼 전에 나의 상황에 대해 시가에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자기네 부모님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고 아이 문제는 자기 선에서 무조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만약 나중에 집요하게 물어보신다면 본인이 불임이라고 할 거라고.. 그런 믿음을 나에게 줬었다. 근데 이제 와서 내가 이혼을 못하겠다고 하니 본인 엄마에게 쪼르르 전화해 다 일러바쳤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난 여전히 증거를 찾는 것이 두려웠고 기회를 노린다는 명분으로 시간을 질질 끌며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근데 이제는 진짜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 워낙 꼼꼼한 성격의 남편이었기에 들키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갑자기 코너에 몰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뻥카'
뻥카가 통해야 한다. 제발.
*나는 그 후 매일 기도했다. 제발 벌레새끼 좀 그만 무서워하게 해달라고. 나 그날 그 작은 방에서 너무 서러웠던 거 아시지 않냐고. 다소 유치하지만 간절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벌레 공포증은 사라졌다. 나는 현재 1층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여름-가을이 되면 귀뚜라미들이 사업장 안으로 출몰한다. 처음엔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이제는 놀라긴 해도 곧 마음을 다잡고 빗자루로 때려잡는다. 바퀴벌레는 발로 밟아 죽인다. 이제 내 인생에 남편새끼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난 나 혼자 너무 잘 산다. 고맙다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