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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Jul 26. 2024

다시 거지같은 집으로

짐정리&마음정리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마주하다

1. 남편이 아이를 원해서 원만한 합의를 통해 헤어지기로 했다.

2. 남편이 바람을 폈다.


집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고민했다. 어떤 것이  덜 충격적 일지..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었다.

나는 결국 가족들을 모아놓고 1번을 선택해서 말했다.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다. 그 울음은 내가 세상에서 들어 본 가장 큰 울음이었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귀가 터질 거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나는 미리 준비한 청심원을 마셨다.


 언니는 빡침의 상징인 이마 혈관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엄마는 눈이 돌아있었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비겁한 놈."이라고 한 마디를 딱 했다. 나는 그 차가운 방바닥의 나무 무늬를 손톱으로 몇 번이고 만지고 쓰다듬고 비비며 그 침묵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무사히 돌아온 나를 위해 기도를 하자고 했다. 너무 생뚱맞았지만 여기서에 아빠에게 태클을 걸기에는 진짜 미친놈이 될까 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님. 누구보다 소중한 딸이..."가 끝이었다. 아빠는 우느라 더 이상 기도를 이어가지 못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저거보다는 기도가 길지 않았나?’ 아무튼 슬픔을 희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문득 이 기도는 세상 가장 짧은 기도로 기네스북에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가족들을 만나서 다 얘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후련했다. 그리고 조금 슬퍼졌다. 아, 이제 우리 관계는 돌이킬 수 없구나. 남편이 바람을 핀 건 절대 얘기하지 말아야지.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을 꼴딱 새우고 바로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다정한 의사 선생님 앞에서 휴지를 몇 장을 썼는지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셨고 얼마나 힘들겠냐고 남편은 참 나쁜 사람이라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별말이 아닌데 참 위로가 되었고 그렇게 그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나의 마음주치의로 존재하고 계시다. 그 후 나는 가족들에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이야기했고, 반응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써 모른 척했다. 너무 미안하지만 가족의 마음을 챙길, 그걸 돌아볼 여유가 나에게는 정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밤, 오늘이 마지막 밤이 되기를 기도했다.

이거 하나는 들어주셔야하지 않냐고.

그런데 이 질긴 목숨, 매일매일 눈이 떠졌고 지옥같은 하루를 또 살아내야 했다.


 눈이 떠졌으니 이제 남은 짐을 가지러 가야 한다. 근데 그 집에서 나는 냄새가 있었는데, 그것만 맡아도(이미 내가 일부 가지고 온 옷가지에서도 나고 있었다) 토할 거 같았다.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나던 냄새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고 세상 인간 대문자 T인 친언니가 빨리 따라오라고 했다. 언니와 둘이서 가는 길... 말없이 도착했고 우리는 얼른 필요한 옷들과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계획성이 상당한 언니는 그 와중에 계절 별로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게 너무 소름 끼치고 놀랍다. 지독한 여자.. 남편과 나는 단둘이 살았고 방이 세 개였기에 한 방을 아예 옷방으로 썼다. 그래서 행거를 전체적으로 설치해 놓고 사계절 옷을 다 꺼내놓고 살았다. 참 편했다. 그래서 옷정리도 비교적 빨리 끝날 수 있었다. 근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니 몰래 찔끔찔끔 울 수 있는 울음이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울어버리자.


"아... 나 너무 슬퍼." 하면서 내가 갑자기 방 밖으로 나가 소파에 누워서 펑펑 울어재꼈다. 나중에 그러는데 언니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강한 언니는 내가 누워서 엉엉 울고 있는 와중에도, 본인 눈시울이 붉어졌음에도 계속 나에게 질문했다.

"이거 입는 거야!!?!??!! 이 거지 같은 옷!!", "야 이거 버려, 이런 색깔 너무 많아.", "넌 미쳤나 보다 보라색 니트가 몇 장이야 도대체!!?" 라며 오히려 더 화를 냈다. 난 알았다. 평소의 언니라면 "당장 일어서서 옷정리 해!! 내가 혼자 하고 있잖아! 그리고 이건 니 옷이잖아!!!!" 할 여자였다. 혹시 응답하라 1988의 성보라를 아시는가? 그 사람이 바로 내 언니다. 근데 언니도 많이 슬펐나 보다. 여리디 여린 덕선이가 우는 것은 슬프고 안쓰럽다. 그런데 강하디 강한 보라의 눈물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그날 이후로 언니는 몸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슬프고 미안하다. 언니가 없었더라면 절대 혼자 할 수 없었을 일들을(다행히 언니는 힘이 장사다) 마치고, 아직도 한가득 남은 짐을 뒤로하고 지금 챙길 수 있는 것만 차에 다 싣고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모였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당을 예약해 놓고 밥이 나온 후에 아빠가 또 생일 기도를 해줬다. 난 얼른 먼저 짧은 기도를 했다. ‘제발 아빠가 안 울게 해 주소서’.

이윽고 아빠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 아버지.."로 이전보다 더 짧은 기도가 기네스북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세상 불효녀가 여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식사 내내 억지로 밝은 척을 했지만 다 티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친정에 돌아오고 한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언니와 나는 마지막 짐을 정리하러 남편이 출근했을 시간에(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그 집에 갔다.

오늘은 나머지 필요한 가구나 소품들을 가져오자며.. 얼른 끝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이 거지 같은 집으로는 다시 오지 말자고 다짐하며 현관문 앞에 섰다.


어…?

집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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