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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Jul 30. 2024

불륜의 현장

세상 어디에도 없을 기가 막힌 불륜막장스릴러

우리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15분경이었다. 근데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잘 들리지가 않았다. 사람 소리는 아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로봇청소기가 혼자 돌아가고 있는 소리였다.

'왜 이 시간에 로봇청소기를 돌리지?'

우리의 신혼가전이었던 로봇청소기는 어플로 실행시킬 수 있었기에 남편이 여기에 있다는 건 확실하지 않다. 일단 문을 열었다. 중문을 열자마자 지독한 향수냄새가 코를 찔렀다. 언니와 동시에 외쳤다.

"아 냄새!"

그리고 집을 둘러보았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침대는 엉망이었고 침대 머리맡에 쓰다 버린 휴지와 그 안에 돌돌 말린 피임용품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아직 그걸 보지 못한 반대쪽에 있던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언니의 눈은 확실히 돌아있었다.


"야!!!!! 이거 니거야??????????????????"

지금 나도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덜덜 떨면서 가까이 갔다. 내가 속옷을 넣던 내 옷장에 상간녀의 속옷이 있었다. "아니. 내 거 아니야." 터지기 직전의 커다란 물풍선을 삼킨 것처럼 속이 울렁울렁거렸다. 아니 출렁거렸다. 몸속에서 하얀 피의 파도가 치고 있었다. 우리 언니는 원래 숫자 욕을 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매일 하는 말이 "아니 사람이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그렇게 상스럽게 숫자 욕을 할 수가 있어? 난 이해가 안 돼." 했던 고상한 여자다. 근데 내가 언니에게 피임용품을 보여주었고, 침대 위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비치타월도 발견했다. 그건 우리가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에 가서 산 것이었다. 언니는 그걸 보자마자 성보라에 다시 빙의했다. 무려 한 문장에 숫자 욕을 세 번 넣었다. 단어의 사이 사이 적재적소에 아주 알맞게. 난 왜 그 상황이 순간 웃겼는지 모르겠다. 아, 그래.. 너무 웃펐다. 아마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언니는 그렇게 분노의 쌍욕을 날리고는 온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부술 기세로 열고 다녔다. 강아지도 들어갈 수 없을 법한 공간까지 언니는 문짝을 거의 뜯어가며 샅샅이 뒤졌다.

"이 xx들 여기 아직 있는 거 아니야???!!!!!????" 하면서 베란다 문, 방문을 다 열었는데 나는 사람이 그렇게 문을 세게 여는 것을 처음 봤다. 문이 너무 세게 열려서 다시 닫히는 걸 봤다. 언니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언니가 나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얘들아 여기 있지 말고 제발 나갔어야한다...'


 집안에 우리 둘 빼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몸속 장기가 다 후들후들거렸고 나는 악을 쓰고 발을 동동 구르며 "ooo 이 xx새끼 내가 죽여버릴 거야!!!!!!!!!! 내가 꼭 죽여버릴 거야!!!!!!!!!!!!!!"라며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너무 화가 나고 비참했다.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한순간에 최고치를 찍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뒤로 넘어간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나는 거의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친여자처럼 집을 샅샅이 뒤졌고 욕실에 칫솔 두 개가 나란히 꽂혀있었다. 가관이다. 그렇게 울면서도 나는 그알 애청자로서 지퍼백을 찾아 집게로 피임용품등 휴지, 칫솔을 다 각각 담았다. 위생관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년놈들은 생리 중임에도 그 짓거리를 했다. 내가 산 휴지통에 본인 생리대를 잔뜩 넣고 가셨다. 더러워서 돌아가시겠다.


일단 너무 어지러워서 소파에 앉았다. 배를 한대 세게 맞은 것 같은 통증이 이어졌고 손발은 계속 덜덜 떨렸다. 이 xx들이 언제 다시 집에 들어올지 몰랐다. 그러다 눈에 띈 하나! 멍청이가 차키 두 개 중에 하나를 집에 놓고 갔다. 오호라. 나는 그걸 얼른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언니와 나는 바로 나가서 일단 약국으로 향했다. 청심원을 달라고 했고, 받자마자 원샷을 했다. 삼십 분 정도 차에서 기다리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오기 불과 몇 분 전에 집에서 나갔음이 분명하다(칫솔이 젖어있었다). 그럼 언제쯤 돌아올까?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남편이 돌아올 때 상간녀와 같이 돌아오면 나는 현관에 들어가는 모습의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불륜의 증거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는 남편이 차를 주차장에 세우면 블랙박스의 메모리 카드를 꺼내오기로 했다. 상간녀에 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단 하나, 언제 올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때는 10월이었다. 나는 맨투맨 하나만 입고 갔고, 언니는 집업 같은 걸 입었지만 얇았다.


 때아닌 잠복이 시작되었다. 언니가 갑자기 다시 잠깐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부엌에서 식칼을 챙겼다. 나는 너무 놀라서 이걸 왜 꺼내냐고 했는데 언니는 방어용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과도를 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야 잘들어. 죽이라는 게 아니야, 찌르라는 게 아니야. 걔 체대생이고 전직 군인이야. 우리보다 키도 훨씬 크고 힘도 세. 걔가 만약에 블랙박스 메모리카드 없어진 거 알고 우리한테 덤비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때를 위해서야. 쓰는 건 아니야. 방어용이야." - 아니었던 거 같다. 내가 아는 우리 언니는 두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게 맞다. 그렇다 원래 그녀는.


 어쨌든 가만 생각해 보니 언니 말이 맞았다. 그래서 나는 또 TV에서 본 대로, 혹시 모르니 칼 손잡이 부분을 휴지로 두껍게 말자고 했다. 그래야 우리 손을 보호할 수 있다(맞는지는 모른다). 그렇게 언니는 집업 주머니에 식칼을, 나는 집에서 주워 입은 패딩 주머니에 과도를 넣었다.


우리가 항상 행복하게 요리할 때, 과일 먹을 때 쓰던 칼을... 3n살에도 과일을 잘 깎지 못하는 나였는데도 너는 조심성이 없으니 칼은 위험하다며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과일만이라도 본인이 맨날 깎아주겠다고 했던 그 칼.. 칼 디자인이 참 예쁘다고 서로의 안목에 감탄했던 이 칼을, 분노와 두려움에 떨며 남편에게서 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 헛구역질이 났고, 너무 춥고 외롭고 슬픈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견디기에는 너무 버거웠던 그 시간.. 그렇게 장장 9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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