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태양의 나라로

by 온수에 빠진 얼음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기로 했으니 고민할 것들이 마구 생겨났다.

무기력하고 비참하던 삶에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눈에 띄게 활력이 생겨났다.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먼저, 국내에서 활동하고 싶진 않았다. 겨울을 가진 한국의 사계절이 싫었다.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라면 건기와 우기만 있는 열대 나라로 가고 싶었다. 그 심각한 정신 상태에서도 호불호는 확실한 내가 참 우스웠다.


그리고 어떻게 강사가 되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두 가지 정도로 방법을 정리했다.


강사 양성 교육과정을 등록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강사가 된다.

다이빙 샵에서 근무하며, 실전 경험을 많이 쌓은 강사가 된다.


후자가 뭔가 실력 있어 보이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 행세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단점은 열정 페이가 필수라던지 인간적인 대접은 못 받을 수 있겠다는 촉은 왔지만 도제 시스템에서 그 정도는 필수 조건 아니겠나 싶었다. 감내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몹시 심각한 정신 상태에 있었으므로, 생각의 결도 정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고민하지 않았다.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다.

아, 난 정말 짱이야.


(+ 물론 이 방법이 무조건 잘 못 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 상황에서는 이 선택이 무모한 선택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망상이 체계화될수록 믿음은 강해졌고, 의심 없는 믿음은 인간을 실행하게 만들었다.

적도 부근의 나라에서 운영되는 다이빙 샵에 이력서를 마구 넣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저를 채용해 주세요. 신체(만) 건강합니다.


어느 날, 응답이 왔다.

여기는 체험 다이빙 위주로 운영하는 샵인데요. 언제부터 근무 가능하세요?


눈이 빛나는 아이를 누가 말릴 수 있었으랴.

사표를 제출했고, 즉각 수리되었다.


정확한 국가명과 지역 위치를 밝히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아직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이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만큼, 일생에 한 번이라는 보상심리가 없다면 엄두도 못 낼 만큼 극악의 접근성을 가졌다. 당연히 자유여행객이 많이 찾지 않아 그곳에 대한 정보가 턱 없이 부족했다.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문제 되진 않았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겠지. 어차피 외국 생활은 불편한 거니까.

정보가 부족한 제3의 국가란 타이틀은, 알 수 없는 기대감과 흥분에 사로잡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매일 바다로 가서 다이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근무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펀 다이빙도 다닐 수 있고, 다이빙 스킬을 배우기에는 여기만 한 곳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자체 수영장도 보유하고 있어 마음껏 사용하시라고 했다. 2인 숙소를 제공하고, 현지에서 생활 가능한 정도의 급여도 준다고 했다.


다만, 여기서는 스쿠터로 이동을 많이 해서 스쿠터를 운전할 수 없다면 불편할 것이라는 친절한 조언도 덧붙였다. 다행히 대학 새내기 시절에 무면허로 스쿠터를 타고 다녔으니 저는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의 겸손함에 대해 거기서는 빨리 오시라는 기대감을 내비쳤고, 따라서 내 마음은 하늘로 떠올랐다. 나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를 그곳에서는 필요로 했고, 여기야말로 내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닌가. 가야 할 길로 가고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고, 28인치 캐리어를 두 개를 샀다.

비행기+육로 버스+배를 타고 편도 32시간을 이동하기에는 짐이 다소 많았지만, 나는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평생 행복하게 살 거니까. 당시에는 이 짐의 무게가 내 업의 무게라는 걸 알 리가 없었다.

정신이 약한 만큼 체력이 좋았으므로 내 몸무게에 육박하는 짐도 여자의 몸으로도 거뜬히 지고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던 날은 하염없이 비가 왔다.

픽업 온 샵 매니저가 말했다.

이사할 때 비가 온다는 건, 오랫동안 잘 산다는 거라던데요?



+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그곳을 검색해보니 3년 전 정보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듯 합니다. 2019년 하반기 기준으로 지난 3년 동안 온갖 여행 미디어과 SNS 상에 여행 콘텐츠가 발달하게 됐는데, 아직도 그럴싸한 정보가 부족하다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