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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 Jun 14. 2016

꿈의 역사 #3

청년의 하늘

주변의 모든 것이 변했다. 태어나고 자라며 지내던 정든 곳을 떠나온 이곳은 모든 것이 낯설다. 내 걸음걸이 마저도 어색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고 생각했건만, 고향과 이역만리의 이 곳은 참 다르다. 내가 머물기로 한 곳을 들어서면서 본 간판에는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나 같았을까. 일단 살아봐야 알겠지. 살아내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대학에서의 자유로움은 혼란스럽기도 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다. 하고 싶은 걸 하면 그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으며 학점 따위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할 즈음 마주한 스타트업에서의 인턴과 같은 회사에서 이어간 첫 직장 생활은 내 삶과 생각을 큰 폭으로 흔들었다. 


학창 시절, 주중 아침에 아버지 얼굴을 보는 것은 힘들었다. 심지어 내가 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고3 시절에도 내가 일어나서 식탁에 앉을 새벽 6시 무렵에 이미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고 계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남들보다 부지런히, 열심히 살면 나도 이런 가정을 꾸리며 살 수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내가 서울의 나름 괜찮은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조금 더 그런 모습에 가까워 졌다고 믿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내 맘 속에 꿈 아닌 꿈으로 자리 잡았던,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것, 그것을 현실로 이루어 내기 위해 대학 졸업은 이제 마지막 관문이라고 느껴졌다.


실질적으로 대학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4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들은 모두 환상처럼 느껴졌다. 4학년 마지막 학기의 종강을 2개월 앞두고 시작한 스타트업 인턴 생활에서 처음 사회를 맨 살로 느끼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난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순수하고 할 수도, 어리석었다고도 할 수 있다. 사회에 나가면 당연히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을 뿐이다.


세상살이의 치열함, 그 중에서도 한국의 치열함, 한국의 치열함 중에서도 IT기업, 그 중에서도 스타트업. 어리숙한 청년에게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적자생존이며 부적자는 도태되는 사회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보다 심한 좌절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도망치고 싶었다. 하늘 아래 머리를 누이고 몸을 가리울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떠난 까닭일까.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섦에도 불구하고 하늘만큼은 그대로이다 싶다. 어쩌면 하늘만큼은 그대로이길 바랐을 것이다. 입때껏 고된 시절은 그저 하늘을 보면서 잠깐의 위로를 받았던 탓이다. 고등학교 입학 때, 혹은 그 이전 부터 낮보다는 밤하늘이 익숙했다. 달이며 별이며 구름이며 목을 길게 내밀고 걸린 가로등의 어스름한 풍경이 그렇게 아늑했다. 지금, 이역만리에서 만나는 다른 모습의 하늘일지언정 그 감상은 여전하다.


머리를 누이고 몸을 가리울 땅을 찾아 원래 딛고 선 땅을 떠났더랬다. 그러나 하늘아래 바뀐 것은 없음을 느끼고야 만다. 그저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저 하늘을 봤을 뿐인데, 슬며시 위안을 받아버렸다. 하늘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아버린다.


청년의 하늘은 그렇게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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