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촌놈, 원주정착기
내가 서울을 떠난 이유
3년 전, 서울을 떠나 원주로 도피해왔다. 그 당시는 연고가 없는 지역에 혼자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서울에서 겪었던 이별의 슬픔과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이기지 못했었다. 감정이 아니더라도 급격히 오른 서울의 집값이나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비슷한 평균연봉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를 챙기기가 어려울게 뻔하다는 수학적인 계산도 있었다.
실연 후에 좀처럼 방구석에서 움직이지 않던 내가 숨을 좀 트이려고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속초, 양양 그리고 원주, 제천, 충주 등을 오가며 떠돌아다녔다. 공복을 느끼지 못해 특별히 끼니를 잘 챙겨먹은 것도 아니고 그냥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애초에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 정착을 하려던 계획으로의 출발은 아니었으나 단짝이던 친구의 부재로 생긴 흔적이 곳곳에 남은 서울이란 내게 견딜 수 없을만큼의 큰 영역이었다. 그래서 가는 도시마다 집 값을 알아보고 몇 개의 월세방을 둘러보며 거처가 될 만한 곳인지를 고민했다.
원주역에 내렸다. 지금의 (구)원주역에 내리니 한산하고 오래된 상가들이 즐비한 곳에서 아늑한 시골향이 났는데 조금 걷다보니 큼지막한 보건소와 중앙시장 등이 보이며 이내 한산은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로 도시의 영역이 가까웠음을 실감했다.
원주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가 남아 있었다. 선택적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정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인구밀도만큼이나 건물 간의 간격과 사람 사이의 밀도가 숨막히게 좁았던 서울과는 다르게 막힌 숨을 트이기에 좋은 여건이었다. 막상 비교하자니 너무 저렴했던 집값과 월세. 그렇다고 주변에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동마다 스타벅스가 있는 지역이면 없는게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원주로의 이주가 내 마음에 굳혀졌다. 서울을 떠나기 전 지방도시의 인구수와 세대 비율 등을 조사했었다. 아무래도 인구가 너무 적다면 인프라가 적을 것이고 너무 많다면 서울과 다름없는 분주함이 기다릴 것 같았다. 그런 내 기준에 원주는 정말이지 최고의 조건이었다.(2023년 7월 현재 원주 인구는 36만7백정도, 점점 늘고 있다)
서울의 역세권 평균 월세는 평당 10만원을 웃돈다. 부산에서 상경한 친구는 신당역 근처 6평정도의 원룸에 자리를 잡았는데 관리비 포함 거의 60만원을 고정비로 지출한다. 지난 몇 년 사이 오르긴 했지만 늘 그렇게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곤 했다. 그렇다고 전세도 만만하지 않다. 최근 결혼한 친한 동생 내외는 2억을 가지고도 전세방을 구하느라 몇 달을 알아봤다고 하고 막상 이사한 집을 가보니 작은 거실이 딸린 방2칸의 빌라였다.
서울에서만 가능한 전문직이나 기술직이 아닌 이상에야 근로자의 평균 수입은 200~250정도. 지방보다야 일자리가 많다고 하는데 서울을 떠나기전에 구직을 해보려고 노력했을 때나 원주에 와서 자리를 잡느라 직장을 고민할 때나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부담은 같았다. 직장 수에 사람 수를 비율로 따지면 비슷한 수준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평균 수준의 수입을 갖는다면 같은 비용이면 훨씬 더 윤택한 집에서 거주하며 높아진 삶의 수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내 계산이었으며 그것은 내가 원주로 이사오면서 사실이 되었다.
서울촌놈, 원주민되다.
처음 살게 된 집은 건물을 나가면 이렇게 집 앞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이국적인 외국 마을 같아서 참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래서인지 원주에 사는 사람들도 사진만 보면 이런 곳이 있냐고 묻곤 했다. 그래서 매 계절, 나는 이곳을 사진으로 남겨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