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환자 하루 살기
불안장애 환자인 나는 아무 계획도 없이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퇴사라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IT 업계에서? 는 아니지만 그래도 S사, H사의 IT조직에서 생활을 했던 나는 10년 차 개발자였다. 나름의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조직에서 근무를 했었던 나였다. 요즈음 IT업계의 몸값들이 올라 그 흐름에 흔들려 금융사라는 곳으로 이직을 했던 나는 1주일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이직의 실패한 케이스이다. 돈을 좇아 이직을 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을까?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닐까?
첫 번째 이유는 환경이다.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발자보다는 컨설턴트 출신들이었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보였다. 컨설턴트들과 함께 컨설턴트 업무를 수행했어야 했다. 내가 소개받았던 업무 역할과는 완전히 달랐다. 면접 당시 개발 조직이 있다고 들었으나 개발자들은 거의 없을뿐더러 내가 생각했던 조직과는 너무 달랐다. 프런트/백엔드 엔지니어의 역할분담이 아닌 비즈니스 업무 역할로 나뉘어있다. 그 말이 무엇이냐 하면 프런트도 해야 되고 백엔드도 해야 된다는 뜻이다. 결국 그 끝은 어중간한 개발자의 미래의 모습일뿐더러 이는 내가 과거에 7년을 경험했기에 그 미래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과거 7년 동안 다녔던 회사의 옆 건물이라는 것이다. 불안장애 환자로서 경험했던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환경이었던 탓일까 출근길, 점심시간, 그리고 퇴근길까지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닐까? 친한 동료들은 불러내서 차도 한잔 마시고 할 수 있겠지만 부서장이나 팀장 같은 경우에는 마주치기가 늘 부담스러웠다. 늘어나는 연봉만큼 이만큼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세 번째 이유는 조직이 상당히 올드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임원분이랑 면담을 했었는데 첫마디가 '내가 회사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줬었으면 좋겠다', '오버해서 분위기를 업 시켜줬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셨다. 무슨 뜻인 지 모르겠지만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 자리 배정을 받고 그 자리에 앉는 순간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주위 대부분의 동료분들의 연차가 기본 15년 차 이상은 됐었다. 10년 차인 나도 적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장 어렸었던 것이다. IT 업을 근본으로 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이처럼 회사가 나이가 들 수 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나의 불안도 하나씩 늘어갔다. 다음 계획 없이 퇴사하는 것도 처음이었을뿐더러 컨설턴트 업무를 해보지 않은 나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이 싹트면서 나는 다시 불안장애 환자의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입사한 지 1주일 만에 퇴사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 회사를 다닐 이유는 없었을까? 왜 없었겠는가. 나에게는 육아휴직 중인 아내와 그리고 10개월이 된 딸이 있는데 말이다. 아빠의 역할로서 경제적인 부담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그렇기에 퇴사에 대해서 수없이 고민했다. 근데 이 회사를 다녀야 할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것뿐. 나의 경제생활은 앞으로도 20년은 더해야 되는데 지금 여기에 만족할 수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나중에 이 경제적인 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퇴사라는 선택을 했다.
퇴사에 대한 후회라는 감정은 들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는 하루하루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도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보려한다. 나는 불안장애 환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