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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May 01. 2022

무작정 퇴사 후, 그 1주일

#매주 일요일, 불안장애 환자의 1주간 일기

 퇴사라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무작정 계획 없이 퇴사한 것은 처음이다. ESTJ 나의 성격상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에 놀라울 따름이다. 계획에 따라 삶을 살아왔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 불안에 떨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무엇을 믿고 퇴사라는 결정을 했을까? 무작정 계획 없는 퇴사는 결국 나에게 불안을 가져왔다. 그렇다고 지금 퇴사한 것에 대해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직한 회사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이직하기 전 회사에 대한 후회는 조금은 남는다랄까. 그러나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 회사 또한 10년 후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으니 잘한 결정이라며


 무작정 퇴사 그 1주일의 시간은 두 단어로 표현이 된다.

 불안, 그리고 조급함

 

 퇴사한 지 1주일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의 머릿속은 온통 걱정뿐이었다. 급여가 없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책임져야 할 아내와 딸, 이 행복이 나 때문에 끝이 나버리는 것은 아닐지, 우리 가족의 행복이 여기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장애 환자인 나에게 이러한 걱정들은 자연스럽게 불안으로 다가왔다. 고작 1주일이라는 시간.. 아니 퇴사하자마자 이틀 뒤부터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나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그토록 싫었고 눈 뜨기 싫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부터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상황들을 많이 겪어보았기도 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걱정스러운 얼굴을 숨기지 못한 체 불안에 떨며 생활하게 되었고 쉴 틈 없이 웃음 가득한 우리 집에 웃음은 점점 사라지고 어둠이 드리워졌다. 지쳐가는 나의 아내에게도 미안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만이 커져가듯이 나의 불안 또한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내 감정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우리 가족의 웃음이 사라져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하루에도 수없이 아내에게 되풀이했다. 그런 말에도 짜증 날 법하지만 '괜찮아. 지금까지 네 덕분에 행복했잖아' 라며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나의 아내의 말에 순간 나의 불안이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어느 날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아내의 절친이 나를 위로해주겠다며 남편과 함께 우리 집에 찾아왔다. 퇴사한 지 이틀 만에 새로운 직장을 찾겠다며 이력서를 넣고 있는 나의 모습에  '조금 더 쉬고 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라며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조급하면 또다시 섣부른 판단을 하게 될 것이고 좋은 회사를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리고 친구의 남편 또한 1년의 휴식을 했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고 있기에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지금 할 것은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재충전할 때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 시간만큼은 정말 몇 날 며칠 동안 불안에 떨었던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조급함의 불이 꺼진 듯했다.


 그렇다고 나의 35년 살아온 성격이 쉽게 변할까? 다음날 아침 나는 또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 날짜도 빠르게 잡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한 번도 화내지 않던 아내가 소리쳤다. '이렇게 조급해하고 불안하라고 퇴사를 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다. 제발 좀 더 쉬고 건강도 찾고 여유도 갖고 단단해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크게 소리친 아내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격도 급하고 일도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처리하지 못하면 퇴근을 해도 개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해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 이틀 만에 이 일들을 해결할 수 없다. 재취업? 취업 후의 걱정들? 다 시간이 제법 들어가야만 해결되는 것들뿐이다. 그렇게 나의 쓸데없는 조급함이 나를 점점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나는 오늘부터 천천히 걸어가기로.

 걱정과 함께 그리고 불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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