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이직, 네 번의 탈피

직장인의 적응 잔혹사

by 멜밍

​개발자에게 이직은 훈장이자 숙명이라지만, 13년 동안 네 번의 명함을 바꾸는 과정은 매번 뼈를 깎는 듯한 성장통을 동반했다. 7년의 안주, 2년의 도전, 다시 2년의 방황, 그리고 복귀. 각기 다른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내 몸을 끼워 맞추며 나는 매번 새롭게 태어나야 했다.

​나의 첫 시작은 이른바 'S사'라 불리는 거대 제국이었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그곳의 철저한 매뉴얼과 거대한 시스템에 길들여졌다. 코딩 한 줄보다 보고서 한 장의 형식이 중요할 때도 있었지만, 시스템은 나를 완벽하게 보호했다. 하지만 7년 차가 되던 해,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 거대한 엔진의 아주 작은 부품일 뿐이며, 성벽 밖으로 나가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현재의 기술과 동떨어진 미해.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성장통이었다. 안정이라는 이름의 독을 마시고 있다는 자각이 병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변화를 선택한 곳은 또 다른 대기업 H사였다. 같은 대기업이니 비슷할 거라는 오산은 일주일 만에 깨졌다. S사가 '절차'의 왕국이었다면, H사는 또 다른 방식의 '업무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S사의 경우 한 곳에서 짜여진 틀에 맞춰 일을 하면 되었지만 H사는 SI 기업이어서 그런 것인지 매번 프로젝트를 옮길때매다 사람도 근무처도 달라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오는 피로감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또한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다. 내 실력을 증명하기 전까지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들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두 번의 대기업 경험 후 뛰어든 스타트업은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이곳에는 나를 보호해 줄 시스템도, 참고할 매뉴얼도 없었다. "하면 된다"는 식의 무질서 속에서 나는 개발자이면서 동시에 기획자였고, 운영자였다. 대기업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던 내 몸은 매일 비명을 질렀다. 기술적 성장보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드는 법'을 배우며 나는 가장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마침내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온 지금, 나는 네 번째 성장통을 앓고 있다. 스타트업의 야생성을 버리고 다시 시스템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적응기다. 이제는 안다. 어떤 회사가 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각기 다른 시스템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을 맞추는 것이 직장인에게는 가장 큰 기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네 번의 이직을 거치며 깨달은 것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이전 회사의 성공 방정식이 여기서는 오답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다시 신뢰의 벽을 쌓아 올리는 인내심.


​13년 차 개발자로서 겪은 네 번의 성장통은 나에게 흉터를 남겼지만, 그 흉터들은 이제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지탱해 주는 단단한 굳은살이 되었다. 이 고통스러운 적응의 과정 또한 유통기한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묵묵히 새로운 시스템의 코드를 읽어 내려간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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