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하이보다 어려운 건 둘째 재우기
"대기업 13년 차, 커리어 하이보다 어려운 건 '둘째 재우기'였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아빠 휴가 1주 차의 기록."
대기업으로 복귀 후 1.5년. 숨 가쁘게 달려온 나에게 '1.5개월'이라는 정지 버튼이 눌러졌다. 둘째 출산과 함께 시작된 아빠 휴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다. 사원증을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마주한 1주 차의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다.
휴가 1주 차, 가장 먼저 찾아온 감각은 '해방감'이었다. 월요일 아침, 알람 소리 없이 눈을 떴을 때(사실 아이의 울음소리에 깼지만), 오늘 내가 가야 할 곳이 회의실이 아니라 거실이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감은 짜릿했다.
노트북을 켜는 대신 젖병을 세척하고 아이의 수유 기록 앱을 들여다본다. 내 아침을 지배했던 '출근의 압박'이 사라진 자리에, 오롯이 내 가족의 시간이 들어찼다. 회사가 보장해 준 이 정당한 공백은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주는 최고의 보너스였다.
하지만 즐거움은 잠시, 휴가 1주 차에 깨달은 진실은 육아는 결코 '휴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건 내가 겪어본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난이도가 높고 퇴근이 없는 '극한 알바'에 가깝다.
첫째 아이의 등원 전쟁을 치르고 나면, 곧바로 둘째의 기저귀와 수유 타임이 이어진다. 대기업에서의 업무는 매뉴얼이라도 있고, 문제가 생기면 보고할 상사라도 있지만, 우는 아이에게는 논리도, 데이터도 통하지 않는다. 24시간 풀가동되는 육아 현장에서 나는 13년 차 경력자가 아니라, 그저 어설픈 두번째 경력 사원일 뿐이다. 오후 4시쯤 되면 차라리 야근하던 시절이 몸은 더 편했나 싶을 정도로 허리와 무릎에 신호가 온다.
이 휴가의 묘미는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는 데 있다. 곤히 잠든 둘째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식차트를 보는 평온함이. 그 평화가 깨지는 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듦'이 싫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놓쳐왔던 커리어 하이보다 어려운 건 '둘째 재우기' 찰나를 내 눈으로 직접 담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첫째의 등원, 둘째의 배냇짓 하나하나가 내 13년 커리어보다 더 소중한 데이터로 쌓여간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잠도 자지 못하는 하루를 보내지만, 마음속의 날 선 근육들은 조금씩 이완되고 있음을 느낀다.
성장통은 회사에서만 겪는 게 아니었다. 아이를 달래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고, 내 시간의 주도권을 가족에게 완전히 내어주는 이 과정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유통기한 있는 통증이다. 남은 휴가 기간, 나는 기꺼이 이 행복한 지옥을 즐길 예정이다. 다시 성벽 안으로 돌아갔을 때, 아이의 분유 냄새와 꼬릿한 손냄새 등 나를 버티게 할 가장 강력한 에너지가 될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