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늘 본죽, 회식은 죄송합니다
둘째 출산휴가, 그 달콤한 1.5개월을 얻기 전, 내 몸은 3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멈추지 않는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장염, A형 독감, 또 장염,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위염까지. 13년 직장 생활 중 이렇게 처절하게 아파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 몸은 나에게 '이제 좀 쉬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2025년 추석 명절을 끝으로 시작은 장염이었다. 3주간 화장실과 씨름하며 보내자 겨우 정신을 차릴 무렵, 이번엔 A형 독감이 덮쳤다. 열은 펄펄 끓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셨다. 겨우 독감에서 회복하려나 싶었는데,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장염이 재발했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고통의 끝에는 만성 위염이 자리 잡고 있다.
3개월간 수액을 몇 번이나 맞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대기업으로 돌아와 눈치 없이 '당일 휴가'를 몇 번 쓸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스타트업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사치였을 테니까. 하지만 병원 침대에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밀린 업무와 팀원들에게 미안함이 떠나지 않았다.
몸이 아픈 직장인에게 가장 큰 난관은 아이러니하게도 '식사'였다. 3개월 내내 나의 점심 메뉴는 오직 하나, 근처 본죽이었다. 매일같이 같은 메뉴를 고르며 "오늘은 소화가 좀 더 잘 될 것 같은 것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저녁 회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술은커녕 제대로 된 음식도 넘기기 힘든 몸으로 어찌 웃고 떠들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라는 말은 나의 시그니처 멘트가 되어버렸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할뿐 그나마 걱정해주는 팀장님과 팀원들.
결국 위내시경을 받았다. 결과는 '심한 위염', 그리고 식도염. 의사 선생님은 원인불명의 위염과 식도염. 불규칙한 식습관이 원인이라며, '좀 쉬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13년 차 직장인에게 '쉬라'는 말은 현실성이 없는 판타지에 가까웠다. 둘째 출산까지 남은 기간은 겨우 몇 일. 그 기간 동안 나는 아파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못하고 버텨야만 했다. 만삭의 아내를 두고 아프기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이 보내는 경고장을 애써 외면하고 출근길에 올랐던 매일 아침. 버스 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가' 자문했다. 가족을 위해서?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 아니면 그저 '익숙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도 몇일 앞둔 아빠휴가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제 곧 시작될 아빠 휴가는 나에게 단순한 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3개월간 내 몸이 간절히 요구했던 '필연적인 멈춤'이었다.
성장통은 단순히 정신적인 고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이렇게 육체적인 고통으로 찾아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겨우 휴가 문턱에 선 지금, 나는 이 휴가가 끝나면 조금 더 현명하게 나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직장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아픔들이 내 몸에 남긴 유통기한 없는 교훈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