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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헌 Sep 03. 2024

9월 시작, 내 옆에 있는 두려움에게

아침 4시. 창문을 열었다. 매미가 떠난 자리에 찌르레기가 소리 높여 울고 있었다. 가로등 조명너머로 옆 아파트 동과 하늘이 들어왔다. 책상위 스탠드를 켰다. 9월을 시작하는 첫째 주 월요일. 대학원 1학차가 시작되었다. 직장을 떠나 일하지 않는 삶의 1년을 보내고 학교를 첫번째 둥지로 선택했다. 시작이 주는 설레임은 기분좋은 긴장을 주었다. 지하철에서 학교까지 15분쯤 걸었다. 오후 2시 수업이라 여유가 있어 4층 도서관부터 찾았다. 직장에 나가는 대신 이제 논문주제를 잡고 연구방법을 배우면서 깊이 들어가야 하는 시간의 문턱에 들어왔다. 새로운 도전앞에는 어김없이 ‘잘 해낼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동반된다.     

 

14시 성격심리학. 강의실에는 열 다섯명 되는 학생이 있었다. 첫 날이라 오리엔테이션으로 교수님께서 교과 목표, 강의 방법, 주교재, 평가, 발표, 중간 및 기말시험에 대한 개요를 설명해 주셨다. 이어서 1인 또는 2인 1조로 논문 연구계획서 작성을 위한 발표 조를 구성하고 수업이 마무리 되었다. 스스로 좋아서하는 공부라고 해도 졸업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우리는 다시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단거리 트랙의 출발선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오후 4시에 학교상담센터로 이동하여 월요일 특강을 들었다.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상황별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질문의 기술에 대한 수업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과 믿음을 깊이 탐구하도록 하여 참된 지식을 깨닫도록 한 소크라테스의 질문법(Socratic questiong)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특정 상황에서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하고 새로운 인식을 얻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나처럼 논문작성의 두려움을 가진 내담자를 설정해 두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오프닝 질문) “논문작성에서 가장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심상인지를 작업하는 질문) 논문을 쓸 때 부정적인 이미지나 감정을 탐구하고 수정하는 질문으로 “논문을 쓰고 있는 장면에서 가장 두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경험을 통해 인지를 수정하는 질문) “과거 직장에서 어려운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어떻게 느끼셨나요?”, (빈 의자 기법을 진행하는 질문) “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논문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상상해보세요. 그 두려움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나요?”, (수용전념치료에서의 질문)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기보다 그 두려움을 안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신역동 치료에서의 질문) 과거 경험과 무의식적 갈등을 탐구하도록 돕는 질문으로 “논문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당신의 내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회기 종결을 위한 질문) “오늘 배운 것을 논문작성 과정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요”, (해결중심 치료에서의 질문)“논문이 잘 진행되고 있는 날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고 대답을 하는 사이 어느 새 그 감정에서 떨어져나와 두려움의 실체를 조금 더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마치 맞닥뜨린 문제의 발생과 소멸의 일련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집에 와 저녁을 먹고 이미지 제너레이터로 논문합격심사를 통과한 2년뒤 장면을 그림을 출력하여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 당겨진 미래의 그 날 아침을 생각하니 오늘 무엇을 해야할지 묻지 않아도 되었다.     


5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남편과 경의선 숲길로 들어갔다. 둘 다 학생이 되면서 여섯시 반에 뛰던 것을 조금 당겼다. 남편은 눈수술로 한달동안 운동을 할 수 없어 걸어서 따라오기로 하고 나 혼자 뛰었다. 아침 6시 반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들어왔다.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이라 조명이 켜져 있었다. 조명아래 나를 따라온 그림자와 같이 뛰었다. 캡 모자와 헤드셋, 레깅스, 소매가 없는 상의. 반가웠다. 조금 차가워진 초가을 바람, 검붉은 초록 나무들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 나무들의 그림자, 고요함. 빨간 신호등 건널목에 이르렀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빨간색이 더 빨갛게 들어왔고 횡단보도의 긴 가로줄이 더 길게 보였다. 늘 지나가는 건물 2층에 불이 켜져 있었고 클라이밍 센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제 스스로 던진 질문들중 새로운 시작과 동반된 “두려움”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4학기를 마치고 두려움이 사라진 뒤 어떤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지 그려보았다. 오늘의 달리기처럼 매일 조금씩 하면 되지 않을까? 큰 게획이 아직 없어도,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이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고 뛰는 것이다. 뛰다보면 종아리와 허벅지가 마치 스프링보드가 된 것처럼 가볍게 튀어오르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형체가 보이지 않을 때는 나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것을 다시 주문처럼 상기시켰다. 오늘은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순서를 매기고, 상황과 맥락을 훑으면서 따라가는 것. 단 자신에 대해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단순함으로 가보기로 했다. 9월, 군더더기 없는 생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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