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산, 반계리 은행나무, 박경리 문학공원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햇살은 온기를 나누려는 듯 따갑게 쏟아진다. 붉은 빛 짙어진 산이 병풍을 두른 강원도 원주에는 자연의 품에서 빛나는 문화 예술 명소들이 있다. 넉넉한 품을 지닌 자연과 예술 명소를 찾아 가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원주시 지정면에 있는 뮤지엄산(Museum SAN)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다. 그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 홋카이도의 ‘물의 교회’ 등 독특하고 창의적인 건축물을 내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뮤지엄산은 노출콘크리트, 빛, 물을 조화롭게 사용해 자연을 건축물에 담아내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겨있다.
뮤지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플라워가든을 만난다. 여름이면 정원에 붉은 패랭이꽃들이 지천으로 깔린다. 꽃밭 너머로 안토니 카로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자연과 어우러진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하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 길에서 상쾌한 공기가 뿜어나온다.
맑은 숨을 들이쉬며 걷다 보면 뮤지엄 외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빨간 조형물 ‘아치웨이(Archway)’가 길을 열어준다. 그 사이로 보이는 단정한 건물은 고요한 물에 반영돼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워터가든은 빛과 물을 이용한 건축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워터가든과 이어진 본관은 네 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돼 있고, 종이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용된다.
내부에 전시된 작품 관람도 의미 있지만 자연을 건물 품 안에 들이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찾아보는 것도 숨은 재미다. 종이박물관에서 청조갤러리로 향하는 길목에는 콘크리트 벽을 두른 삼각형의 작은 공간이 있다. 삼각코트 안에 들어가 고개를 들어본다. 벽으로 막힌 건물에서 삼각 모양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건축가는 이 장소를 무(無)의 공간이자 사람(人)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단절된 고요한 공간에서 하늘을 열어 대지와 하늘을 사람으로 잇고자 했다는 건축가의 마음이 드러난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볼 수 있는 특별전시관, 백남준 홀도 인상적이다. 약 9m 높이의 원형 공간 천장에는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유리창이 나 있다. 동그란 빛은 돌벽에 반사돼 어두운 방 안을 환히 비춘다. 바닥이 투명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작품은 빛을 받아 생동감 있다.
건물 밖으로 나가면 뮤지엄의 마지막 정원 스톤가든이 나온다.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만든 정원은 돌을 쌓아 우리나라의 9개 산을 구현했다. 평평한 돌바닥에는 단아한 곡선이 아름다운 스톤마운드와 키 큰 소나무들이 솟아 있다. 해외 작가의 조각품이 더해진 정원은 근사하다. 스톤가든을 지나면 제임스 터렐관에서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신기한 작품이 펼쳐진다. 건조한 콘크리트 건축물은 공간에 예술을 덧대고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빛을 머금어 시시각각 다른 매력을 뽐낸다.
은행나무는 수많은 그루가 줄지어 물들 때 멋이 난다. 원주 반계리에는 그런 은행나무들이 떼로 몰려와도 비교되지 않는, 존재감 넘치는 전설의 은행나무가 홀로 서 있다. 멀리서도 황금빛 수형이 보일 만큼 거대한 반계리 은행나무는 높이가 32m, 둘레가 16.27m나 된다. 촘촘하게 잎사귀가 달린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나무는 더 웅장하다. 은행나무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1964년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할 당시 8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했다. 예전에 반계리에 살던 사람이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오랜 옛날 어떤 대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물을 마신 후 들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장엄한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모습 자체가 신비로워서였을까. 마을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에 커다란 흰 뱀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이를 신성시해 아무도 손대지 못했다고 한다. 가을에 이 은행나무가 황금빛을 뿜어내면 다음 해 풍년이 든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은행나무 앞에 가까이 서면 그 모습을 눈에 다 담을 수 없다. 나무 하나 빙 돌아보는데 숲을 둘러보는 기분이다. 황금빛 나무 아래 널따란 땅도 노랗다. 은행나무 하나 보기 위해 마을 좁은 길을 따라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감히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라 꼽을 만큼 찬란한 반계리 은행나무에서 가을의 절정을 맛본다.
흥업면으로 가면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살던 집을 공원으로 만든 박경리문학공원이 있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 18년간 살았다. 텃밭에서 채소 농사를 지으며 ‘토지’의 제4부와 제5부를 집필해 완성했다.
‘토지’는 26년 긴 시간에 걸쳐 완성된 5부 20권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갑오개혁 이후인 1897년 한가위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경남 하동 평사리,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서 광활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경리문학공원에는 ‘토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 국어사전, 손수 옷을 지은 재봉틀, 귀하게 간직한 달항아리, 직접 조각한 여인상, 손수 지어 즐겨 입던 옷, 농사지을 때 쓰던 호미와 장갑 등 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박경리문학의 집’이 있다. 선생의 작품세계와 삶의 자취를 엿보고 나서면 그대로 보존된 집필실과 뜰이 있는 옛집으로 이어진다. 선생은 마당에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정붙이고 살았다. 마당에는 즐겨 앉던 바위에 고양이와 함께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의 동상이 있다. 선생이 뿌리를 내려놓은 듯 지금도 알이 굵은 배추가 자란다.
소설의 배경지였던 평사리마당은 ‘토지’ 속의 주 무대인 평사리를 형상화했다. 마을 앞을 굽이치는 섬진강 물줄기, 선착장, 둑길 등을 소박하게 꾸며 놓았다. 옛집 뒤쪽에는 ‘홍이동산’이라는 언덕이 있다. ‘토지’의 어린 주인공인 ‘홍이’에서 이름을 따온 동산은 평사리 마을 뒷동산을 의미한다. 홍이동산에서 비탈을 따라 내려가면 평사리에서 신작로와 철길을 거쳐 간도 용정으로 떠나던 여정을 그려낸 용두레벌이 나온다.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까지 3,000여 리의 무대가 3,000여 평 작은 공원에 펼쳐진다.
어깨 부빌 거리도 없고, 기대어볼 만한 언덕도 없었다던 추운 원주에서의 삶. 그러나 서울 갔다 오는 날 서원도로 들어서면 고향길 돌아온 듯 마냥 마음이 놓였다던 박경리 선생은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남몰래 시를 썼다. 선생이 정붙인 ‘옛날의 그 집’ 마당에는 가을빛 짙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이내 후두둑 붉은 낙엽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