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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Oct 29. 2024

아직도 방황 중인 서른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어느새 2024년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은 뭐 이리 빠른지… 벽에 붙은 2024 달력은 꼭 엊그제 산 것 같은데 말이다. 올해 1월 1일을 맞이하면서 코로나에 걸렸었다. 약속도 취소하고 며칠을 내내 자다 깨 다만 반복하다 겨우 나았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내가 서른이 된 해였기 때문에 서른 병인가 하고 혼자 킥킥 거리기도 했다.


취업도 하고 번듯한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던 상반기와는 달리, 하반기에는 내년 상반기를 노려야 하나 싶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이제는 직업에 대한 집착을 놓아주었다.


책상 옆에 자리 잡은 2024년 달력


직업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뭐냐고 물으면 프리랜서라고 답했다. 아는 게 디자인뿐이라 어른들이 캐물으면 프리랜서 디자이너라고 디테일하게 대답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었다. 돈은 벌어야겠고 직장에 들어가기는 싫었으니, 답은 프리랜서였다. 그런데 왜 취업준비를 했냐면… 옛날옛날에…



일찍이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싶었던 나는, 고등학교 때 디자인을 배우면서 실제 외주 작업도 해보았다. 딱 3건뿐이지만. 내 손으로 10만 원이라는 돈을 벌고 정말 기뻤다. 능력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감을 지속적으로 따 내는 건 쉽지 않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한 디자인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1년 동안 다니면서 우울증을 얻었다. 구멍가게만 한 회사에서 처음엔 사수라도 있었지 반년은 사수도 없이 20살이 메인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수당 없는 야근도 했다. 700만 원을 모았지만 더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치듯 대학을 갔다.


컴공 나왔으니 취업은 알아서 잘되겠지, 일단 회사를 들어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꾸만 최종 면접에서 미끄러졌고 정신줄 잡기가 힘들었다. 다시 다른 분야의 디자인으로 직무를 바꾸었다. 웹 디자인에 익숙했던 나에게 모바일 환경은 영 어색했기 때문에 거금 들여 교육을 들었다. 배우면서도 감흥이 없었는데 포트폴리오 만들자니 죽을 맛이었다. 죽을 맛으로 만든 포트폴리오는 서류 통과도 힘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한계를 정해두었을까?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돈은 벌 수 있는 거 아닌가? 꼭 직업이 중요할까? 개발도 디자인도 나에게 큰 뜻이 있지는 않았다. 배웠으니까, 전공했으니까, 그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를 가두고 산 것 같아 허무했다. 나에게 분명 다른 기회도 왔었는데.



서른 살이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팀장소리 듣는 친구도 있고 결혼을 해서 애가 유치원 간 친구도 있다. 힘들게 막내 생활하던 친구는 후배가 생겼다. 나만 여전히 방황 중인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의 나의 방황이 헛수고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슬펐다. 나름대로 살아보고자 노력한 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치를 잃은 것 같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목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겪어야 할 방황도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오히려 웃으며 전진하라.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대는, 더 진실하고 농밀한 존재가 될 것이다.”



오늘의 한 구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괴테의 말이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김종원의 세계철학전집 중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를 읽어보시라 권해드린다. 인문학자인 저자가 스토리와 필사 문장을 소개해준다. 어렵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에게 너무나 선물 같은 말이었다. 나의 방황이 특별히 불행한 것이 아니고 노력의 흔적이라고. 그리고 이 고난을 이겨내고 나면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직업 없이 방황 중이다. 그러나 이 방황은 내가 가열하게 노력한 증거이자 목표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증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한계를 벗어나 생각하니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방황하더라도 그럴수록 훌훌 털고 웃으며 전진할 것이다.


방황 중인 사람들에게 괴테의 말이 나에게 그랬듯이 선물처럼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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