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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 Nov 05. 2024

직업, 직장, 꿈은 다릅니다.

자존감수업

취업준비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벌써 3번째 취업준비 중인데, (중간중간 도망을 많이 쳤다) 이번 취준 기간이 가장 힘들었다. 갈수록 내가 정한 방향에 확신을 잃어갔고 주변 사람들에게 돌아가며 고민상담을 했다. 그리고 답변에 따라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디자이너, 다시 개발자... 내일의 내가 뭐가 되고 싶어 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


고민하다 늦게 잠든 것에 비해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따스한 전기장판과 이불속에서 고민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8시다. 우리 집 앞에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오전 7시부터 문을 연다. 준비하고 나면 8시 반쯤 도착하겠지.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못 앉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불속에서 뒹굴 거리느니 밖에 나가 뭐든 공부하고 책을 읽던지 하는 게 낫다.


9시가 좀 넘어서 화장실 간 사이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있었다. 다시 걸까 말까 고민했는데 지난달 보이스피싱 전화를 합격전화인 줄 알고 신나게 받았던 게 생각이 나 무시했다. 포트폴리오로 쓸 블로그나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Gatsby 튜토리얼을 따라 하다 배가 고파져서 집에 왔다.


띠롱. 메일이 한통 왔다. 이 시간에는 올 뉴스레터가 없는데... 약간 다른 느낌이 들어 바로 확인해 보니, 인턴십에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 직무가 아니었다. 나는 오늘부터 개발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땐 직업, 직장, 꿈을 분리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칫 이 세 가지 모두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오늘의 한 구절. 윤홍균 교수님의 <자존감 수업>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어렸을 때 나는 직업, 직장, 꿈을 모두 동일하게 생각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꿈을 골라 그와 관련된 직업을 선정하고 그 직업으로 갈 수 있는 직장이면 모두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사회생활의 쓴 맛을 보고 아예 그 꿈을 접어버렸다. 그렇게 직업과 직장, 꿈을 동시에 잃었다.


나는 분명 알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직업, 직장, 꿈은 다르다는 것을. 그러나 긴 터널과도 같은 취준 생활 속에서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 모든 것이 한 방향을 향해서 절실히 바래야만 하나라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심을 잃은 마음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나의 꿈은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마케터도 아닌 다른 목표이다. 그리고 직업은 아직 고르지 못했지만 일단 지금 상황에서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 직장은 당분간 나를 인턴으로 뽑아준 기업이다. 이렇게 분리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니 세 가지 요소 중 직장을 가지게 된 것이 만족스러웠고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직업은 다르지만 이것은 인턴 생활을 하며 준비하면 될 것 같다. 


오늘 하루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비록 인턴이지만) 직장이라는 목표 하나를 이루어낸 것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고뇌하며 써낸 30여 개의 지원서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내가 비록 노련한 사회인도 직장인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직업, 직장, 꿈을 구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직장이, 직업이, 당신의 인생을 대표하지 않는다. 직장 만족도, 직업 만족도, 자기 만족도를 구분하고 자존감을,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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