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가볼 만한 곳
오이지는 종로구에 위치한 퓨전 한식점이다. 그 옆에 바로 호호식당이 있었는데 한식 메뉴가 더 많은 곳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2024년도 끝이 보이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기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은 모두 리더십이 좋아서 내가 뭘 찾지 않아도 음식점도 잘 찾고 손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어디 가자고 하면 OK 하면 되고 다들 그렇게 쿨할 수가 없다.
음식 종류도 많아서 호불호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연인 또는 가족, 친구들이랑 와도 부담 없고 창경궁과 가까워서 가볍게 가을 산책하기도 좋다.
가을치고 요즘 꽤 쌀쌀하지만 이 날은 다행히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아 걷기 좋은 날이었다. 야무지게 다들 점심을 챙겨 먹고 창경궁까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현재의 일을 하기 이전에는 회사 위치가 을지로여서 종로에 갈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마음먹고 가야 된다. 서울은 어딜 가도 번잡하여 1시간 이상 걸리니 고즈넉하게 돌담길을 마주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이제 먼 거리는 차가 편하다.
아직 완전히 물들지 않은 녹색 나무들이 붉은 단풍나무와 얽히 설킨 레이어드 되어 그 나름대로 멋있고 운치 있었다. 궁에 방문객들이 참 많았는데 별궁에 대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고요함과 높고 낮게 드리워진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이 힐링이었다. 창경궁 내에 서양식 온실과 작은 호수가 있고 둘레를 따라 초롱불이 듬성듬성 켜져 있었다. 밤에 보면 더 예쁠 것 같았다.
카페제이라고 해서 이름만 보면 당연히 커피를 판매할 것 같은데 말차, 호지차를 판매하는 곳이다. 말차는 익히 알다시피 녹색 가루이고 호지차는 말차보다 조금 더 갈색으로 진하고 고소한 맛이 느껴지며 한 번 더 볶은 찻잎이다. 약간 보리차 맛이 난다. 차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아는 정보는 이 정도까지 이긴 하나, 여린 잎이라 하여 아주 연한 연두색의 녹차 잎은 순한 맛이고 원두처럼 얼마큼 볶고 말렸느냐에 따라 카페인 함유량이 다르다.
주문한 호지차 라테와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로 유명해진 밤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보통 가을, 겨울에 사람들이 찾는 간식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밤'이다. 밤은 사실 일본에서도 꽤 단골로 들어가는 앙금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전통 화과자 안에 들어가는 주된 재료가 밤, 고구마, 팥이다. 일본에 가면 밤을 스프레드로 하여 판매하는 곳은 보지 못했지만 팥 스프레드는 종종 보인다. 가볍게 토스트 된 식빵 위에 버터, 팥, 잼을 발라서 먹기도 하고 편의점에 가면 팥이 함유된 스낵과 사탕도 판매한다. 그런데 팥은 나도 먹어보니 사탕에 들어갈 때는 그나마 감칠맛이 나고 맛이 느껴지는데 스낵이나 비스킷에 들어가면 맛이 아주 감퇴되어 본연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팥 관련 비스킷이 그리 인기가 좋진 않은 듯하다. 아직까진 그렇다.
공간이 아주 넓진 않았지만 소리 흡윤이 잘되어 사람이 많아도 시끄럽지가 않았다. 보통 카페를 가면 천장이고 벽면 전체적으로 흡윤재 시공이 잘 안 되어 소리가 울리고 굉장히 정신이 없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조용해서 대화하기도 편하고 고요하여 좋았다.
아무래도 주말 학교 앞이라 더 조용한 것 같기도 했다. 평일에는 학생들로 주변 거리가 붐빌 테고 주말이면 한적한 그런 동네 같았다. 주변에 재개발 들어가는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공사하는 곳이 많아 번잡해 보였다. 강동구라는 지역이 꽤 오래된 동네이긴 하나 좀만 구청에서 멀어지면 번화가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걷다 보면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구식 복도형 빌라가 있고 그 역시 재건축에 들어가 아주 멀리서 추억의 빌라 문화를 희미하게 느낄 수 있다. 복도식 아파트형 빌라라니. 그것도 층이 낮아 그나마 아파트라 불리던 신식 건물일 텐데 말이다. 오랜만에 가을에 어울리는 공간을 소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