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내려오는 곳, 하롱베이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5시간 정도 이동해야만 그 유명한 하롱베이에 닿을 수 있다. 개인 여행객이 가기에는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보통을 일일투어를 많이 이용한다. 너무 긴 이동시간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하롱베이를 가는 것을 고민했으나 그래도 이왕 온 김에 가는 것이 나중에 후회가 없을 듯하여 호텔 앞 관광사무소에 들러 투어를 신청했다. 현지인이 하는 업체여서 내가 신청한 투어에 한국인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투어에 참석한 사람 중 한국인은 나밖에 없었다. 아니, 동양인 자체가 별로 없었다. 거의 서양인이거나 인도인들이었고 나와 같은 외모의 동양인은 20대 남자 한명 정도였는데 그 사람은 홍콩사람이었다. 작은 버스에 몸을 싣고모르는 외국인들과 어깨를 맞대며 다섯시간을 달리자 하롱베이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하롱베이의 이름은 용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 용이 떨어뜨리고 간 여의주들이 하롱베이의 기암괴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보통 투어는 작은 크루즈를 타고 곳곳의 기암괴석들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도 그 풍경이 신비로워서 왜 이 곳이 유명해졌는지 알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아름다운 관광지인 이 곳, 하롱베이에도 중국에 대한 항전의 역사가 담겨있다. 중국 원나라의 해군이 베트남을 정복하고자 대규모 수군을 이끌고 왔으나 베트남인들이 하롱베이의 신비로운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전술과 화공을 이용하여 승리했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에서도 지형지물을 이용한 이 게릴라 전술이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을 보면 베트남인이 게릴라전에 특화되어 있는 건지 아니면 베트남의 신비로운 자연이 그 것을 가능하게 했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수적으로 열세인 나라의 군대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개인으로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이나 해당 관광지에 대하여 조금 더 심도있는 안내가 필요할 때 우리는 현지 투어를 신청한다. 베트남의 하노이는 워낙 관광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보니 거리 골목마다 현지 투어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가격도 천차 만별이라 여행자들을 선택의 늪에 빠지게도 하지만 말이다. 국적이 다른 외국인들과 어울려 여행을 하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말 한 두 마디를 건네다 보면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친구가 된다. 가이드의 넘치는 입담도 여행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우리 가이드는 여자 가이드였는데 자기가 미혼이라면서 투어 일행 중 미혼 남자들은 일정이 끝난 후 자기랑 저녁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원한다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도 했다. 순간 흠칫했는데 이어진 말에 웃음이 터진다. 단. 자기는 부모님하고 같이 살아서 자기 아버지랑 같은 방에서 자야 된다고. 같은 관광객들 중에도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기껏해서 다섯시간이나 걸려 하롱베이에 왔더니 하롱베이 보다 두배는 더 아름다운 곳이 하노이 근처에 또 있다며 거기를 가보란다. 난빈이라는 곳인데 자기한테 조용히 말하면 싸게 해준단다. 같이 여행한 인도인 관광객이 그런 이야기는 오늘 결제하기 전 말해줬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왕복 10시간에 가까운 이동시간에도 하롱베이에 대한 기억이 좋은 것은 이러한 추억들 덕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