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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ug 08. 2024

귀찮았던 설거지에서 자유를 느끼다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18

아기를 낳기 전 나는 주로 요리를 담당하고 남편은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이리저리 재료를 조합해 요리를 완성하는 건 재미있는데, 먹고 난 뒤 남은 그릇들은 때론 지저분한 잔해들로 어지럽혀져 있어 설거지하는 것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남편은 가끔 요리를 하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같은 요리를 해도 조금 더 빠르게 완성할 수 있는 내가 음식 준비를 도맡게 되었다. 그리고 뒤이어 설거지도 (주로) 내 담당이 되었다.


우리의 저녁은 보통 이렇게 흘러간다.

1.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사이, 간단한 샤워를 마친 남편이 아기를 씻긴다. 그리고 아기 밥을 먹이며 동시에 우리 밥을 먹는다. (아기의 샤워는 때에 따라 저녁식사 전 후로 이루어진다)

2. 내가 에너지가 넘치는 날엔 아기를 씻겨놓는다. 남편이 돌아와 간단히 씻는 사이 밥을 준비하고 완성되면 아기와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아기가 졸려하면 남편이 아기를 재우러 들어가거나, 더 놀고 싶어 하면 아기와 남편이 노는 사이에 내가 설거지를 시작한다.


설거지를 귀찮아하고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도맡아 설거지를 하게 되다니, 놀랄 일이다.


하루종일 아기와 내내 붙어있다 보니 아기와 잠시 떨어져 하나의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절로 느껴, 자연스레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바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었는데, 요즘은 밥을 먹고 나면 싱크대를 향해 절로 발걸음이 간다. 아기가 있으니 주방에 씻지 않은 그릇들이 쌓여있는 것이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설거지하는 것이 비록 푹 쉬는 건 아니지만, 뽀득뽀득 깨끗해지는 그릇들이 쌓여가면 바깥 먼지로 뒤덮인 내 몸을 씻는 듯 개운해진다. 아기의 젖병과 이유식 식기까지 한꺼번에 다 닦으면 때론 무릎이 뻐근해와서, 양 무릎을 한 번씩 접어 뻐근함을 풀어줘야 한다. 그렇게 모든 설거지를 마치면, 잠시 의자에 앉아 남편이 내려놓은 페퍼민트 티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다.


그렇게 귀찮아하던 설거지에서 자유를 느끼게 되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아기와 함께하는 매일이 행복하고 즐겁지만, 때론 아기와 잠시 거리를 두고 해방(?)되는 시간이 몹시도 필요함을, 몸이 절로 느끼는가 싶다.


'자유' 이야기와는 별개로, 육아로 인해 더 빠릿빠릿하게 변하는 나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기어 다니는 아기 때문에 바닥 청소를 매일 몇 번씩 하게 되는 것도,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하려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이렇게 천천히, 내가 가진 좋지 않은 모습들이 육아를 하며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그런 밤이다.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열여덟 번째 날이다.


오늘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남편이 아기를 씻기고 있었다.

아기와 남편의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그 둘의 모습이 궁금해 화장실로 향했다.


처음엔 씻기가 귀찮은지 '애앵-'소리를 내던 아기가 어느새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친 아기는, 전보다 더 아기 같고 뽀샤시한 모습으로 해맑게 나를 쳐다보았다.


비누칠이 간지러운지 '꺄륵-'하고 웃으며 눈웃음 짓는 아기가, 그리고 아기를 보는 남편의 모습이 예뻐 보여서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했다. 나도 이내 쭈그리고 앉아 아기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 싱크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아, 우리 아기 다 씻었네~? 뽀송뽀송해졌어, 이제 머리 말려볼까?' 하고 얘기하는 아빠에게 아기는 '으앵~' 하고 울음으로 대답한다. 졸음이 가득한 눈을 한 아기는 아빠의 품 안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오늘의 감사일기 글감이 떠올랐다.

이런 소소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설거지를 주제로 감사일기를 써 보았다.


어느새 내일은 벌써 금요일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행복한 나의 금요일! 벌써 에너지가 생기는 듯 하다.


내일은 남편을 위해 아기 목욕을 시켜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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