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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ug 07. 2024

뜨겁고 강렬한 너와의 첫여름날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17

생각해 보면 내게 남은 여름날은 얼마나 될까 싶다.

무병장수한다고 해도 8-90번까지는 절대로 남을 수 없다는 걸 문득 깨닫고 나니, 지금 만나고 있는 여름에게 조금 더 애틋해진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만나는 여름은 보통, 고작 100번도 채 되지 않으니 이 계절을 사랑해보려 한다.


뜨겁고 습한 데다가 비까지 자주 와서 불쾌지수가 몹시 높은 올해의 여름이지만,

나는 이번 여름을 조금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


인생 첫여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기 덕분이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만큼 진하게 광합성을 한 초록 잎들이 세상 가득 물들어있는 이 여름. 여름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풍경들을 아기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없어서 우리는 더위 속으로 과감히 들어선다.



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들리는 '맴- 맴- 맴-----' 매미 떼의 돌림노래.

'아가야 매미가 맴맴~ 하네?' 하며 볼거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겨본다. 연두색 초록색 짙은 초록색 등, 같은 초록 계열이지만 같은 색과 모양이 하나 없는 다양한 잎들을 천천히 보여주다 보면 아기는 자연스레 손을 뻗는다. '그래, 엄마가 손 닦아주면 되니까 만져봐!' 하고 손을 대주면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듯 잎을 살며시 만져본다.


시선을 멀리 두면 푸른 하늘과 너무나 선명한 예쁜 구름도 볼 수 있어, 아기에게 '우아 아기야, 저기 몽글몽글 구름이랑 파란 하늘도 보인다!' 하고 말을 걸어보지만 어딘가에 시선이 꽂혀 주로 묵묵부답이다.



아기의 얼굴은 붉어져가고 내 이마와 등에서는 또르르, 땀이 흐른다.

그리고는 금세 송골송골 아기의 이마에도 땀이 맺힌다. 양산을 깜빡한 나는 손차양을 만들어 햇볕을 가려보지만 손등만 뜨거울 뿐이다.


더우면 칭얼거리며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붉은 얼굴을 하고는 초록이 만연한 세상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귀여운 우리 아기. 아기를 위해 처음으로, 선풍기와 부채를 양보해 본다.


뜨거운 여름을 함께 맛본 뒤, 아주 시원한 집으로 들어서면 천국이 따로 없다.

우리 둘의 땀은 시원한 공기에 금세 식었지만, 간단하게 휙 샤워를 하고 또 다른 맛의 여름을 즐겨본다.


집안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닫아놓고,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채워보는 여름의 맛.

시원한 공기 속에서 미리 조각내어 정리해 둔 수박을 꺼내 아기 한 입, 나도 한 입 먹으며 달콤한 여름의 맛도 즐겨본다.


이렇게 올해 여름은 뜨거움과 시원함이 둘 다 좋은, 특별한 여름이다.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열일곱 번째 날이다.


오늘도 아기와 함께 뜨거운 여름 속으로 들어섰다.

쨍한 햇살 아래에 피어난 배롱나무의 진한 핑크색 꽃이 너무 찬란하게 예뻐서 아기에게 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해줬다.


덥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한 분수 앞에서 물줄기가 샘솟는 경쾌한 장면도 함께 보고, 매미가 강렬히 울어대는 소리도 함께 들었다. 집으로 들어서는 길에는 강렬히 울고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매미를 길바닥에서 마주해 몹시 깜짝 놀랐는데, (나는 엄마니까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침착하게 놀란 이유를 설명해 줬다.


참 다양하고 재미있는 여름날이다.


가을에 태어난 아기는 겨울, 그리고 봄을 함께 보내고 첫여름을 맞았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는 듯 하니, 엄마가 해준 다양한 여름의 이야기들을 귀담아듣고 있겠지 하고 조금 기대해 본다.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고 또 봄이 되고, 이렇게 계절이 반복되면서 하나씩 쌓일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와 추억들이 기대된다. 호기심 천국 어린이가 될 무렵이 되면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온 세상을 탐색해 나가겠지?


'어른이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많은 엄마, 그리고 호기심 많은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점점 호기심이 많아지는 아빠와 함께 온 세상을 재미있게 탐색해 보자 아가야.'


'너무도 뜨거운 여름날이지만, 올해의 여름은 아가 덕분에 그 어느 여름날보다 특별하고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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