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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Aug 06. 2024

20년이 넘은 나의 테디베어를 너에게 줄게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16

12살의 한 소녀가 수많은 테디베어 앞에서 서성인다.

'엄마아빠가 제일 마음에 드는 걸 하나만 고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인형을 고를까?'

초록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테디베어를 고른 소녀는 그 후에도, 마음에 쏙 드는 테디베어를 한편에 놓고 볼 때마다 기분이 충만했다. '내가 고른 테디베어가 제일 예쁜 것 같아!' 하며, 매일매일 행복한 기분이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며 자연스레 테디베어와 점점 멀어졌고 그 존재마저도 희석되어 갔다.


12살의 그 소녀는 (조금 뻔하지만) 바로 '나'이다.

존재마저 잊고 있었던 나의 소중했던 테디베어에게, 출산을 한 뒤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절대 눈에 띄지 않았던, 본가 선반에 놓여있는 테디베어가, 아기를 낳고 나니 내 레이더망에 바로 걸려들었다.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나의 테디베어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깨끗하게 빨래를 한 뒤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다.


아기의 품에 쏙 안겨주니 역시나 테디베어를 혀로 먼저 맛보는 우리 아기. 지금껏 혀로 느낀 감촉들과는 색다른지 얼굴을 찌푸린다.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이상한가? 그럼 이제 더 이상 혀로 갖다 대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찰나 두 번째 탐색을 시도해 보는 아기. 이번에도 이상한 느낌인가 보다. 얼굴을 또 한껏 찡그린다. 탐색이 얼추 끝났는지 테디베어를 한 손에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구경해 보는 아기에게, '엄마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곰인형이야~' 하고 설명을 해줬다.


내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인형을 내 딸에게 물려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액세서리나 가방 등을 잘 쓰다가 우리 딸이 컸을 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만 해봤지,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물건을 물려줄 줄이야! 선반 위에 고스란히 앉아 있던 테디베어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마치 테디베어 박물관 기프트샵에서 마음에 쏙 드는 테디베어를 골랐을 때의 그 기분과 꽤나 비슷했을 것이다.


12살의 어린 나와 우리 아기를 만나게 해 준 고마운 테디베어.


나의 테디베어가 아기의 애착인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내일도 아기와 인형놀이를 해봐야겠다.

무려 20년이 넘은 소중한 나의 테디베어!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열여섯 번째 날이다.


아기가 털이 복슬복슬한 테디베어를 입으로 자꾸 가져가서, 아기에게 닿지 않는 소파 옆 선반 위에 두었는데 어느새 많이 컸는지 손을 뻗어 테디베어를 휙 낚아챘다. 입으로 또 가져갈까 싶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켰더니, 다행히 손으로 몇 번 흔들다가 테디베어를 놓아주었다.


'구강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인형을 제 목적에 맞게 가지고 놀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져보며, 아기가 훗날 테디베어를 옆에 두고 낮잠 자는 귀여운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종알종알 엄마와 수다를 떨 수 있을 나이가 되면, 이 테디베어가 가진 소중한 이야기를 꼭 들려줘야겠다.

이야기를 듣고 아기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테디베어처럼 마음이 복슬복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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