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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튤립 Jul 31. 2024

내 밥보다 더 중요한 너의 밥

100일간의 육아 감사일기 #10

나의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당연스럽게 챙기게 되는 타인의 끼니가 있다.

그건 바로 우리 아기의 밥.


이유식을 시작하게 되면서는,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은 주방에 서서 분주하게 두세 시간을 내리 보내게 되었다. 아기가 먹는 밥과 고기 그리고 채소들을 손질하고 익히고 배분해 놓기 위함인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정에 다 끝내고 나면 '아이고 다리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당근 양파 시금치 브로콜리 파프리카 단호박 애호박 가지 버섯 소고기 닭고기 등등 건강한 식재료를 주방 위에 펼쳐놓고 [세척-> 찜 -> 다지기 -> 소분해 얼려놓기] 순의 과정을 거치면 완성이다.

이렇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일주일에서 일주일 반 정도를 먹을 수 있고, 중간중간 부족한 것을 만드는 식으로 아기의 음식을 준비한다.


흔히 큐브 이유식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소분하여 얼려놓은 재료들을 밥과 함께 데워 매 끼니마다 내어주는 형태이다. 한 번에 죽을 끓이면 더 간편할 것 같기도 하지만, 다양한 채소를 간편하게 원하는 조합대로 먹일 수 있어서 현재까지 이렇게 만들어주고 있다.


아침에는 내 배가 몹시도 주리지만 아기가 밥을 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할 때면, 갑자기 나의 고픈 배보다 아기의 상태에 더 신경이 쓰여 냉동실에 있는 각종 큐브들로 재빠르게 오늘의 조식메뉴를 조합하기 시작한다. 힘을 내서 하루를 시작하라는 의미를 담아 소고기를 메인으로 두고 이런저런 채소를 함께 넣어 해동을 시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이유식을 줄 수 없기에 입으로 후우 하고 식히려고 하면, 의자에 앉아있는 아기의 인내심이 극에 달해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도 할 때가 있다. 겨우 식은 따뜻한 이유식을 입에 넣으면 작았던 입이 대번에 활짝 커지고, 숟가락에 있던 이유식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그리고는 바로 또 달라며 입을 쩍 벌리는데 그 모습이 참 신기하고 귀엽기 그지없다. 성인이 보기에도 꽤나 적지 않은 양을 다 꿀꺽꿀꺽 먹어주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밥을 먹으면서 늘 손가락도 입에 함께 넣어버리는 바람에 손, 얼굴, 머리카락엔 이유식이 덕지덕지 붙어있지만 밥만 잘 먹어준다면야 그런 지저분함(?) 정도는 충분히 용서해 줄 수 있다.


아기가 밥을 다 먹고 나면 나는 그제야 잠시 정신을 차리고 우유에 콜드브루 원액을 넣어 시원한 라테로 주린 배를 채워준다. 그리고 더 여유가 되면 내가 좋아하는 낫또를 하나 쉭쉭 저어 먹는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아기가 나보다 훨씬 영양가 있고 건강하게 먹네~? 내가 저렇게 먹으면 진짜 더 건강해지겠다!' 하고 말이다.


아기 밥 챙겨주는 건 당연한데, 왜 내 밥 챙기는 건 그렇게도 귀찮은 일인 걸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출산 후 자연스레 생기는 모성애란 이런 것일까 싶다.


내 밥보다 너의 밥이 더 중요한 것.




오늘은 육아 감사일기 열 번째 날이다.


이유식이 똑 떨어져서 만들어야 하는 날이 왔는데, 마침 엄마가 집에 오신다고 해서 기뻤다.

옆에서 엄마와 아기가 노는 소리를 음악 삼아 각종 재료들을 손질하는 과정 속에서 안온함을 느꼈다.

내 귀에는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한 공간에 삼대가 함께하는 그 순간이 무척 편안해서 그랬나 보다.


아기의 이유식을 다 만들고 나서, 셋이 함께 놀다가 엄마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하셨다.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잘 챙겨 먹지 않는 나를 타박하며 다이어트는 그만하라는 말씀(내겐 잔소리)을 덧붙이신다. '다이어트를 하는 건 내 마음이야! 내 몸은 내가 관리해~'라고 답하며, 나도 절대 굶진 않고 챙겨 먹긴 한다고 한 마디를 더해보았다.


나는 아기의 밥을 걱정하고, 엄마는 나의 밥을 걱정한다.

나는 엄마의 밥을 걱정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이것이 내리사랑인가 싶다.

(다행히 엄마는 건강한 음식으로 끼니 거르지 않고 잘 챙겨드시긴 해서 사실 큰 걱정은 없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챙겨드셔주시길!)


그간 엄마가 차려주신 수 없이 많은 밥상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내가 한 요리를 대접할 때가 있다. 엄마의 입맛에 맞았으면 하는 마음에 '맛있어? 어때?' 하고 수 차례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사실 너무나 당연하다.


요즘엔 엄마 밥을 자주 먹을 수 없으니, 가끔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면 그 익숙한 맛이 꿀맛이다.


오늘 엄마가 오랜만에 해주신 엄마표 고추장 감자찌개와 감자채 전이 내 입맛에 딱이어서, 운동을 가기 한 시간 반 전인데 과식을 하고 말았다. 역시 내 입엔 엄마 밥만 한 것이 없다.


조만간 엄마아빠께 음식을 해드려야겠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맛있는 음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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