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29] Ⅱ. 죽음에 대하여 ⑨
일상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의료인 중에도 가까이에서 임종의 과정과 순간을 지켜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따라서 막연히 임종의 고통을 두려워하기보다 전문가, 경험자들의 전언을 통해 객관적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종을 지켜보는 일도 출산을 지켜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둘 다 식별 가능한 단계를 거쳐 예상되는 결말로 나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명한 조산사라면 잘 알고 있듯이 출산은, 그리고 죽음은 외부의 개입 없이도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다. 실제로 보통의 출산이 보통의 임종보다 더 힘들고 위험하지만, 사람들은 임종 앞에 고통과 인간 존엄의 붕괴를 떠올린다. 그런 임종은 드문데도 말이다. -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p.14
영국의 완화의료 전문의 캐스린 매닉스의 책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은 30년간 저자가 의료현장에서 경험한 죽음을 소개하는 책이다. 임종에 관한 지식과 함께 죽음을 앞둔 이들이나 보호자들에게 지침이 될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의학은 ‘패턴’을 발견하는 학문이며, 임종에도 패턴이 있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막 완화의료 의사로 첫발을 뗐을 때 만난, 노련한 자문의(영국 의사등급 체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의)가 임종 과정의 통증을 두려워하는 환자에게 임종의 패턴을 설명하는 대목을 옮긴다. 베테랑 의사가 환자에게 평소 느끼는 통증의 정도를 묻고, 투약 기록을 확인한 뒤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지금까지 별다른 통증이 없었다면 이제 와서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당연히 통증 완화가 취해질 것입니다. 저희를 믿으시죠?"
"네, 믿어요."
그가 말을 잇는다. "흥미로운 것은 각양각색의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삶의 끝이 다가올 때 경험하는 바가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저는 그것을 수없이 보았답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을 목격하는지 알려드릴까요? (...) 첫 번째 신호는 피로감입니다. 병으로 기력이 쇠하는 것이죠. 이미 경험하셨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그의 손을 잡는다.
"환자는 갈수록 더 피곤함을 느끼고 지칩니다.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잠이 더 많이 필요해지지요. 낮잠을 자면 피곤이 좀 가시지요? 그렇다면 당신도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고 있는 거예요.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갈수록 피로가 심해져서 점점 더 오래 잠을 자게 될 테죠. 깨어 있는 시간은 줄어들 거예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더 오래 잠을 자고, 때로는 아주 깊이 잠들어서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의식이 없다는 얘기죠.‘
(...)
"우리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이 늘고 깨어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잠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식이 없는 상태일 때도 있죠. 하지만 깨어난 후 잠을 푹 잔 것 같다고 말하곤 해요. 의식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죠. 마침내 삶의 끝에 이르면 늘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후 호흡 패턴이 변하기 시작하죠. 때로는 깊고 느리게, 때로는 얕고 빠르게, 그렇게 아주 완만하게 호흡이 느려지다가 마침내 조용히 멈춥니다.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큰 고통이 찾아오지 않아요. 의식이 꺼진다는 느낌도 없어요. 공포에 질리지도 않아요. 그저 아주 평화롭답니다."
(...)
“중요한 건 보통의 수면과는 다르다는 점이에요. 낮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얼마 후 낮잠에서 깰 만큼 기운이 있다는 얘기거든요. 의식 불명은 잠과 달라요. 의식을 잃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니까요.”
(...)
“이 대화는 우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선물일 거예요. 실제로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드물지요. 대부분은 고통 속에서 추한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할 것이라 상상하고요. 우리가 본 임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그리고 가족들이 끔찍한 죽음을 목격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려주면 좋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의 지식은 늘고 두려움은 줄어들게 되지요. 하지만 여기에 익숙해지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아요” -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p.29~31
저자는 이후 30년간 다양한 환자들의 임종 과정을 겪으며 이 설명이 정확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실제 반려동물의 임종을 지키며 그 순간을 기록한 보호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동물에게도 이런 임종의 패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식의 저하, 체인 스토크스 호흡(Cheyne-Stokes respiration 주기성 호흡), 가래 끓는 소리 등 ‘패턴’에 해당되는 임종 증상이 나타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 작은 고양이도 그랬다. 마지막 순간 직전, 나는 아이가 숨을 쉬지 못해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자책했다. 후에 알게 된 것은 임종을 앞두고 전형적인 체인 스토크 호흡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깊고 빠른 호흡과 무호흡이 번갈아 나타나는 이상 호흡으로, 뇌의 호흡 중추 기능이 약해져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의식이 저하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임종에 드는 단계였는데, 이런 지식이 없으니 고통의 징후로 오해하며 괴로워했다. 나아가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에 부적절하게 개입할 우려도 있었다.
물론 동물마다 겪는 질병과 경과에 따라 임종 시 통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평온한 임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통증관리다. 통증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임종기 환자의 삶의 질(혹은 죽음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통증은 세심한 주의와 관심으로 관리돼야 한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라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진단과 치료(*주1)가 아니라 삶의 질을 최우선에 둔 통증관리, 완화적 돌봄이다.
통증은 진통제와 보조제, 스테로이드, 외과적 처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절할 수 있다. 동물을 위한 대체의학, 동종의학도 발전하고 있다. 많은 보호자들이 마지막까지 간절하게 아이의 소생을 꿈꾸며 치료를 위한 투약과 처치를 계속하는데 임종을 준비하는 동물에게 불필요하며 때로는 가혹하기까지 한 처사다. 내가 가장 후회되는 게 그 부분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을 다 하는 것 미덕이라 생각하며 치료와 투약에 집착했다. ‘먹어야 힘을 낼 텐데, 기력을 보존해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하면서 어떻게든 먹이려 했다. 후에 ‘먹지 않아서 죽는 게 아니고, 죽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란 문장(*주2)을 보고 나는 오래 마음 아파했다.
말기 환자라면 병의 증상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통증을 다스리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관리적 돌봄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다만 통증 조절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인간 환자의 경우도 자신의 참여는 물론이고 의료진과 보호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어야 가능하다. 몸의 통증뿐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 정서를 표현하면서 통증을 다스린다. 동물은 인간과 달리 말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고양이는 종의 행동 습성상 더 어렵다.
당혹스럽게도 통증의 행동 신호 가운데 하나는 통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극기(stoicism)는 많은 종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고양이에게 뚜렷이 나타난다. 극기는 생존하는데 확실히 필요하다. 아프다는 사실을 포식자에게 알리지 말 것. 들키면 표적이 되므로. -<마지막 산책> p.195
따라서 보호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질환이 야기할 수 있는 여러 통증에 대비하고, 실제 아이의 행동변화나 표정, 정서 등에서 추측되는 통증의 양상에 대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육체는 엄연한 실존이다. 호되게 아프고 나면 나란 인간은 곧 내 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육체 앞에선 누구든 한없이 초라해진다. 인간은 육체라는 실존의 진실이 덩그러니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다.
몸을 가진 존재로서 동물의 임종 역시 본질적으로 같을 것이다. 임종기 동물을 돌보는 보호자에게 양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목표가 무조건적인 생명의 연장이 되어선 안 된다. 좋은 죽음의 필요조건을 하나만 꼽으라면, 죽음을 앞둔 시간들이 최소한 고통에 얼룩진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시간이 편안하려면 아이의 통증과 예상되는 경과를 파악해 적극적으로 통증을 완화해주려는 노력은 필수다. 필요하다면 처방을 통해 마약류 진통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안정을 찾는데 실패한다면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힘든, 마지막 출구를 생각할 때가 온 것이다.
*주1 : 환자실에서 삽관을 한 채 인공호흡에 의지해 수많은 약물을 주입받으며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삶의 질을 논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연명한다.
*주2 : <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p.70 롤란드 슐츠, 스노우폭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