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0] Ⅱ. 죽음에 대하여 ⑩
주치의가 안락사 이야기를 꺼낸 것은 미미가 별이 되기 두 달쯤 전이다. 안락사는 생애 말기 동물의 고통을 덜기 위해 권장되는 죽음의 방식이다. 청결한 느낌을 주는, 주의 깊게 조합된 안락사(安樂死·euthanasia)라는 단어에 인도주의적 뉘앙스, 좋은 것이란 신호가 담겨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인도적(人道的) 차원의 안락사가 인간에게는 마땅히 허용되지 않는다. 생명이란 한번 박탈되면 되돌릴 수 없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기 너무나 쉽기 때문일 것이다.
안락사 권유를 받은 뒤로부터 미미는 두 달을 더 살았다.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린 시간, 우리는 온통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 드물지만 음식을 달게 삼킨 날이, 때때로 인간과 즐거운 교감을 나누는 충분히 괜찮은 시간들이 아이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이에게 ‘좋은 죽음’의 기회를 빼앗은 이기적인 보호자는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자주 시달렸다. 안락사야말로 말기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는 좋은 선택, 존엄한 죽음의 종착지라는 인상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개입 없는 죽음과 죽어감의 과정은 ‘고통의 자갈밭’이란 인식이 단단히 박혀있다. 안락사를 동물에게만 허용할 것이 아니라 일부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인간에게 허하라는 요구가 적지 않은 것을 봐도 그렇다.
물론 말기 환묘가 받는 스트레스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속적인 통증으로 곤란을 겪는 가운데 불쾌한 일이 계속된다. 입맛이 없는데 보호자는 억지로 먹이려 들고, 갑자기 쑥 들어오는 알약을 몇 번이나 삼켜야 한다. 하루 한번 또는 그 이상 바늘에 찔리며 수액을 맞고, 기력이 없어 원하는 때 모래 화장실로 향할 수 없는 것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고양이들의 화장실 매너, 모래 사랑은 각별하다. 미미는 묘생에 단 한 번도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랬던 깔끔쟁이가 투병 기간 구석에 숨어 소변을 보는 일이 종종 있었다. 모래 화장실을 찾는 본능을 압도할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인지 또는 신체 기능의 문제로 의식하지 못한 채 소변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도 안락사를 선택지에 올리지 않은 것은 아이를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헛된 욕심이 컸고, 내 반려동물일지언정 생명체의 목숨을 내 손으로 통제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고민도 무거웠다.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며칠 전에야 상황을 받아들이고 힘들게 안락사를 결심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임종 순간에도 아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공간은 역시 집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심각한 통증을 앓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후 미련스럽게 집착했던 내원과 투약, 처치를 중단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죽음을 맞기 전까지, 지금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 일지를 가장 앞에 두고 아이를 돌봤다. 수시로 자리를 정돈하며 통증의 징후를 살피고, 유동식 위주로 간단한 식사를 주고 배변과 정리를 도와줬다. 조심히 안아 잠깐씩 창밖을 보여주거나 사는 동안 관계 나눈 이들을 불러 인사하는 시간도 가졌다. 말기 환자를 돌보는 이런 방식이 일종의 ‘호스피스’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아이는 한결 편안해하고 나 역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그제야 조금 더 빨리 아이의 나침반을 인정하고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 돌봐줘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호스피스는 환자를 포기하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춰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통증관리부터 정서적 도움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목표는 ‘치유’가 아니라 ‘완화’다. 최근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빨리 시작한 환자들이 오히려 생존기간이 길다는 연구결과가 제법 있다.
호스피스의 훌륭한 후보가 될 만한 수많은 동물이 누릴 삶이 여전히 많이 남았음에도 동물이 다른 방법으로 늙어가고 죽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주인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안락사된다. - <마지막 산책> p.274
동물의 자연사를 촉구하는 문장이 아니다. 생의 말기에도 괜찮은 삶의 가능성, 마지막 삶의 질을 높일 호스피스 돌봄이라는 선택지를 모르는 보호자들의 너무 빠른 선택을 경계한 것이다. 제시카 피어스는 ‘호스피스 조력 안락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생의 말기 동물을 편안하게 돌보다 마지막 순간 고통을 줄이는 선택을 하라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