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1] Ⅱ. 죽음에 대하여 ⑩
인간의 경우 안락사는 환자의 의지와 외부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적극적/소극적 안락사 △직접적/간접적 안락사 △조력사(의사 조력자살) 등으로 나뉜다. 스위스(주1*)나 벨기에, 네덜란드, 미국 일부 주 등이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안락사는 이 중 적극적, 직접적 안락사에 해당하는 의사 조력자살을 의미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간 환자에게 허용되는 방식은 가장 낮은 단계라 할 수 있는 ‘연명치료 중단’(*주2)이다.
나는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적극적 안락사(조력사)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생관, 죽음관은 저마다 다르고 죽음을 앞두고 처한 상황도 다를 것이다. 오남용 되지 않도록 엄격한 기준과 요건에 부합하는 경우에 한해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동물 안락사(*주3)는 정맥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적극적, 직접적 조력사다. 마취제, 진정제를 투입해 잠에 들게 한 뒤 근육을 이완하는 약물, 대개 T61(*주4)을 주입한다. 의식이 있는 동물에게 진정 단계 없이 바로 안락사 약제를 주입하면 안락사가 아닌 고통사가 될 수 있다. 의사에게 과정과 주사제 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요구하고 아이에게 맞는 방식을 요청해야 한다. 과정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동물은 몇초만에 안정적으로 영원한 잠에 드는 것이 보통이다. 폐에서 빠져나오는 공기로 인한 소리가 새어 나오거나 약한 발작 같은 반사 반응이 있을 수 있지만 고통의 징후는 아니므로 안심해도 된다.
그럼 언제가 동물을 위해 안락사가 필요한 때일까.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지만, 참고할 만한 지표로 앨리스 빌라로보스가 만든 ‘삶의 질 척도(HHHHHMM Scale)’가 있다. 빌라로보스는 수의 종양학자로 동물을 위한 호스피스 ‘퍼스피스(pawspice)’를 제안한 전문가다. 아픈 동물의 상황을 구체적·계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단서를 제공한다. 7개 항목을 0(전혀 그렇지 않다)~10점(매우 그렇다)으로 매겨 총점이 35점이 넘으면, 아직 삶의 질이 괜찮다고 본다. 그 이하라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증(Hurt) : 적절한 통증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호흡을 잘하는가 혹은 산소 공급이 필요한가.
배고픔(Hunger) : 충분히 먹고 있는가. 보호자가 떠먹여야 하거나 피딩 튜브가 필요한가.
수분(Hydration) : 물을 잘 마시는가. 충분히 마시지 않는다면 피하수액을 매일 또는 격일로 할 것.
위생(Hygiene) : 특히 대소변 후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줄 것. 상처를 잘 관리하고 푹신한 자리를 제공할 것.
행복(Hapiness) : 즐거움, 흥미를 표현하고 가족이나 장난감에 반응하는지. 우울해하거나 불안, 지루함, 두려움 등의 상태는 아닌지.
이동성(Mobility) : 도움 없이 서고 움직일 수 있는가. 보호자나 기구의 보조가 필요한가. 발작 또는 비틀거리는 증상이 있는가.(보호자는 이런 경우 대개 안락사를 선호하지만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삶의 질을 괜찮게 유지할 수 있다)
좋은 날이 나쁜 날보다 많은가(More good days than bad) : 보호자와 교감이 더는 어렵다면 끝이 가까운 것이다. 동물이 고통받고 있다면 안락사 결정이 필요하다. 다만 집에서 평화롭게 고통 없이 지내고 있다면 안락사는 괜찮다.
죽음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것은 개체의 죽음이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 단계에는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어떤 의사들은 작정한 듯 단정적이고(3개월 남았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의사들은 정말 애매하게 말한다.(오늘이라도 잘못될 수 있지만 몇 달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토대로 한 평균(*주5) 혹은 가능성이다. 여러 생명에 대한 관찰의 결과로 평균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개별적 존재,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고양이에게는 이 아이만의 시계가 있다.
동물은 말을 하지 않고, 보호자의 선택이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존재다. 아이와 조용하고 따뜻한 시간을 많이 갖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사랑, 고마움, 미안함, 행복감, 슬픔 등 자신의 감정을 미리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마지막은 동물과 반려인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1 : 잘 알려진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를 통해 한국인 3명이 삶을 마감했다. 이 중 한 분의 여정에 동행한 신아연 작가의 책<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 5일> 이 최근 출간됐다. 또한 지난 6월 국회에 '조력 존엄사 합법화 법안'(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돼 논의를 앞두고 있다.
*주2 : 2018년 2월 이른바 ‘존업사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 결정제도)’이 시행됐다. 이에 따라 임종기에 접어든 말기 환자의 생명을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환자나 가족의 의사에 따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안락사와는 거리가 멀고, 가혹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존엄사법으로 불린 것은 이전의 상황이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퇴원을 요구한 가족, 그에 응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의료진이 각 살인, 살인 방조로 실형을 선고받은 ‘보라매병원 사건’이 있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임종기 환자에게 극한의 연명치료를 하는 불행한 관행이 굳어졌다. 그러다 2008년 ‘김할머니 사건’이 존엄사법의 물꼬를 텄다. 노령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길 원했던 가족이 병원을 상대로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재판에서 승소한 것이다.
*주3 : 분명히 해둘 것은 안락사라는 단어가 신중하게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의 앞당겨진 죽음을 안락사로 눙치는 경향이 있다. 곤고한 삶을 산 동물에게 마치 마지막 선물을 베푼 양, 안락사를 시혜적 조치로 생각하는 이들이 그렇다. 구조한 동물들을 도살하고 인도적 안락사를 시행했다고 주장한 동물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를 기억할 것이다. 동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인간들의 오만과 위선에 화가 치민다.
*주4 : T61은 엠부트라마이드(Embutramide), 요오드화메베조니움 (Mebezonium iodide), 테트라카인염산염 (Tetracaine HCL), 디메틸포름아마이드(Dimethylformamide)으로 구성된 주사액이다. 동물 몸무게에 따라 kg에 0.3~0.5ml를 정맥 주사한다. 제조사인 한국MSD가 제공하는 지침에 ‘대상 동물이 의식이 있는 경우 반드시 전마취 처치를 통해 진정 및 마취 상태를 확인한 후 사용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실제로 진정 조치 없이 반려견을 안락사한 동물병원의 사례가 최근 보도되기도 했다.
*주5 : 카플란 마이어 곡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