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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Sep 20. 2022

<집사의 일기7> 안녕 내사랑, 아주 잠시만 안녕

[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33] Ⅱ. 죽음에 대하여 ⑫

미미, 사랑 그 자체였던 나의 고양이 

(2004.6.28~2019.7.28 )


너를 처음 만났던 2009년 그 여름날을 기억해. 아주 덥고 습했고, 금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혔지. 나는 경기도의 한 위성도시로 가서 너의 첫번째 주인으로부터 너를 구하듯 데려왔다.


한 고양이 커뮤니티 입양란을 지켜보던 어느날, 거의 반년만에 다시 올라온 너의 입양글. 그냥 마음이 갔다. 어찌 이리 이쁜 아이를 보내지, 왜 아직 새 주인을 못 찾았을까, 한번 보러나 가자는 마음으로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네가 살던 낯선 도시로 갔다.


너는 다세대 주택 좁은 베란다에 강아지 한마리와 함께 갇혀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열자마자 특유의 낭낭한 목소리로 "냐아~" 하면서 총총 걸어오던 너. 그 순간 너는 내 고양이가 됐어. 그 미지의 야옹 소리를 듣는 순간 너를 당장 데려가겠다고 했으니까. 너의 주인(이어선 안되는 사람)은 얼마전 태어난 사람 아기의 호흡기가 약해서 더이상 동물을 키울 수 없다고 했지. 참 무책임하군, 비난의 마음이 앞섰지만 내색 않고 바로 너를 안고 집으로 내달렸다. 그때 네 나이 꽉 찬 다섯살. 내 첫고양이로 아기 때 데려왔던 복섭 보다 한살 더 많은 터라 신경이 쓰이면서도, 어쨌든 내 나이 마흔쯤에도 너는 함께일 거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를 집사로 간택해준 날 그 막히던 길 차 안에서 너는 세상 태평했고, 집에 오자마자 밥 한그릇을 뚝딱 비웠으며, 새 영역에 대한 탐색의 시간 따위 없이 곧 장난감을 사냥했고, 손이 닿는 순간 크나큰 골골송을 들려주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고양이가 다 있지. 난 일생의 고양이 복을 이제 다 썼구나 한탄하면서, 하루키가 말한 셋 중 하나 꼴로 당첨된다는 '따봉고양이'가 바로 내게 왔구나, 가슴이 터질 듯 했다. 너는 정말 너무 최고, 너무나 너무인 따봉고양이 내 미미.


미미, 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못마땅해 어떤 유니크한 이름을 붙여줄까 며칠 고민했지만 난 곧 너를 계속 미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어. 너는 정말 미미였기 때문에. 너무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그냥 아 미미구나. 내 어린 시절의 인형이고, 공주이고, 정말 그렇구나 너는 미미일 수밖에 없는 미미구나 했다. 아름다울미 아름다울미 美美.


데려올 때 3kg 남짓 했던 너는 내가 만든 생식을 너무나 잘 먹어서 금세 4kg 넘는 뚠뚠이가 됐지. 이 사랑으로 똘똘 뭉친 귀염둥이를 어찌 베란다에 6개월이나 가뒀을까, 이 먹성 좋은 아이를 어째서 그리 마르게 했을까, 전주인에게 화가 나면서도 고마웠다. 너란 일생일대의 선물이 어쨌든 내게 와 주었으니까.


내게 온 이듬해엔 함께 미국에 가서 1년을 살았지. 나의 엄마가 미미는 먼 나라에 비행기도 타고 가는 출세한 고양이라고 질투하듯 말했고. 나는 너의 출세길을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했지. 이동장과 합산한 동물의 무게가 5kg이 넘어가면 비행기 좌석이 아니라 수화물칸에 타야 한다니 말이야. 출국을 앞두고 이른 새벽 밥 달라는 냐옹 소리에 귀를 막고, 낮에는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도록 부지런히 장난감을 흔들던 그때가 돌아보니 너무 꿈같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모닝냐옹 서비스'라 부르던, 게으른 집사를 깨우기 위한 너의 잔망스러운 행동들. 이른 아침 베개를 앞발로 박박 긁다가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내 머리카락을 긁고, 그래도 버티면 내 코나 턱을 깨물고 "흐르릉" 소리를 내며 급히 도망하던, 그 말도 안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닝냐옹 서비스 때문에 엄마는 더 게을렀던 것을 아니. 이 녀석은 어쩜 이리 창의적으로, 또 일관되게 귀여울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의 조카 녀석이 유독 너만은 좋아해 나는 너를 미끼로 그 녀석을 우리 집에 불러들이곤 했지. "넌 할머니네 고양이는 무서워 하면서 미미는 왜 좋아?"라고 물으니 여섯살 사내아이가 조용히 "미미는 귀한 고양이 같아"라고 했어. 정말 맞아. 천둥벌거숭이도 눈치 챌 만큼 너는 귀하고 특별한 고양이였단다.


무릎 대신 어깨를 좋아했던 내 고양이. 늦은 밤 귀가하면 '어서 나를 어깨 위로 올려라, 그리고 날 어루만지고 두드려라' 냥냥 시위했던 너. 참 행복한 날들이다. 그러던 네가 지난해부터 내 무릎에 스스로 앉곤 했는데 모종의 신호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은 무섭게 흘러 이제 우리가 함께 한지 꼭 10년, 아니 겨우 10년이 됐다. 별 탈 없이 너무도 건강했던 네가 2년전 신부전 진단을 받고, 나는 울며불며 했지만 잠시 뿐이었던 것 같아. 무척 후회가 된다. 그때부터 살얼음판 걷듯 너를 돌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허락된 시간이 짧을 줄 꿈에도 몰랐던 엄마는 그 귀한 시간을 내 인생을 사는데만 집중했구나.


네가 없는 세상을 한번이라도 떠올렸다면 나는 더 철두철미했을텐데. 너무 괜찮아 보였고, 한결같이 아름다웠던 네 탓도 조금은 있다고 변명해본다. 아니다. 언제나 말없이 사뿐사뿐한 너의 걸음걸이처럼, 무서운 병들이 조용히 네게 내려앉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전부 나의 탓이다.


한차례 고비가 왔던 지난달, 내 소원은 너의 만 15살 생일을 챙기는 것 뿐이었다. 수의사는 오늘 당장 잘못 돼도 이상할 게 없다고 했지만, 너는 그 말을 비웃고 기적이 뭔지 보여줬다. 막혔던 담관이 스스로 뻥 뚫렸고, 6월28일 당당히 열다섯번째 생일을 맞았지. 아픈 채로 맞는 생일날 엄마는 네가 너무 대견하고 행복에 겨워 몰래 눈물을 훔쳤다. 너를 끌어안고 밥을 줄 수 있어서, 너를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어서, 품에 두고 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서, 너의 대소변을 치울 수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어리석게도 끝이 없어서 결국엔 내가 널 너무 괴롭힌 셈이 됐다 아가야. 나는 늘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해야만 하는 시간이 오면 산뜻한 끝을 맞겠다 다짐했는데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너의 시옷자 입술이 밥때마다 엉망이 되고, 때로 구역질 하듯 겨우 음식물을 삼키는 너에게 나는 희망을 강요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약과 맛없는 밥 때문에 내가 다가가면 너의 눈에 두려움이 비치곤 했는데. 내가 절절히 읊조렸던 희망이란 단어는 네가 없는 나의 삶, 그 절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어거지로 갖다 붙인 말이었는지 모른다. 하루에도 수십번, 자다가도 놀란 듯 일어나 두손을 모아 입안 무언가를 게워내는 이상행동을 하는 너를 보면서, 그래서 곱디 고왔던 입술 털이 뭉텅 빠지고, 내가 숭배하던 네 찹쌀떡의 털이 하루하루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고양이다움과 너의 의지에 대해 숙고하기를 외면했다.


너의 사랑스러운 배엔 무섭게 복수가 차올랐다. 물난리통에 아무리 물을 퍼내도 자꾸 잠기기만 하는 가난한 동네 낮은 집처럼 끝도 없이 물이 차더구나. 첫눈처럼 소리 없던 너의 발은 이제 느리고 무거워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를 못살게 굴며 병마와 전의를 불태우던 엄마는 이제야 나의 욕심과 미련함을 원망한다.


내가 더 노력하고, 그래서 네가 힘을 내면 조금은 좋아질 것이고, 그래서 다시 스스로 밥을 먹고, 새벽녘 내 머리맡으로 가뿐히 뛰어 올라 나를 깨물고, 그런 뒤 줄행랑을 치고, 낮에는 장난감을 잡기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고, 맛있는 간식을 더 달라 냥냥 요구하고,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행복할 거라고 굳게 믿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다 나의 욕심이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내가 잘못했다 아가야. 엄마가 너의 온기 없이 살아갈 날들이 너무 두려워 너를 괴롭혔다. 세상 유일한 너의 보호자로 최선을 다해 너를 돌보는 것 만큼, 너의 상황과 의지를 존중해 그것을 놓아야 할 때를 결정하는 것도 오롯이 내몫인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꼭 붙어 집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구나. 조금 더 빨리 네게 그런 날들을 선물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미미야, 널 아는 모두가 너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평생 사랑만 받은 아이처럼 구김살 하나 없이 너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그 모습은 사랑 그 자체였단다.


노묘 반열에 올라서도 식지 않는 사냥에 대한 열정, 하지만 썩 훌륭한 사냥꾼이지는 못해 번번이 낚시에 실패하는 너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엄마는 늘 행복에 겨웠다. 부르면 언제나 대답을 하고, 내 아무말에 꼬박꼬박 응대를 해줬던 착한 고양이. 작은 손길에도 그릉그릉 노래를 하고, 보석같은 눈엔 항상 반짝반짝 총기와 호기심이 넘치던, 삶이 곧 기쁨이던 너.


도통 질릴 수 없이 귀여운 앞발과 비단같이 부드러운 털, 쾌활하게 뻗은 수염,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하는 부드러운 발바닥 공, 꾸릿한 발냄새도 사랑스러워 절로 뽀뽀를 하게 되는 나의 고양이 미미야. 너로 인해 셀 수 없는 날을 웃었다. 너에게서 흘러넘치는 기쁨과 사랑으로 엄마는 겨우 살았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일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한 10년은 네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엄마가 널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것은 너도 알지? 어릴 적 상처를 잊을 만큼 충분히 행복했던 시간이었기를. 완벽했던 너에 비해 엄마는 많이 부족했지만, 그것은 엄마가, 고양이에 비하면 몹시 열등한 겨우 인간일 뿐이라 어쩔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해다오. 엄마는 그저 너무나 행복했다.


가장 고양이다웠던 고양이, 나의 완벽한 고양이,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 삶에 감사한다. 널 사랑해서 너무나 행복했다. 처음 온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 모든 날 너는 내게 사랑이고 아름다움이었고 행복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네가 내게 준 모든 것... 사랑이 무엇인지, 귀함은 어떤 것인지, 밝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기쁨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우주를 책임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내게 알려준 하나뿐인, 너무 많은 나의 고양이 미미야. 그에 비하면 엄마가 네게 해준 것은 하찮다.


엄마는 씩씩하게 살아갈 거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양이의 축복받은 집사로, 영원한 너의 엄마로. 너를 추억하고 너를 다시 만날 언젠가를 기다리는 힘으로 말이다. 감히 잘 이라는 부사를 써도 좋다. 너와 나는 다시 만날테니 엄마는 남은 삶 동안 조금만 슬퍼하겠다. 아침부터 어두운 밤까지 혼자 나를 기다렸을 네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제 나는 매일매일 알 수 있겠지. 깊은 밤이 돼도 너는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미치게 허무하고 슬픈 날이 있겠지만 다 지나가겠지. 엄마는 괜찮단다.


사랑한다 미미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를 사랑한다. 미치도록 사랑한다 내 아가. 네가 내게 온 그 기적같은 여름과 마찬가지로, 네가 고양이별로 돌아가는 이 여름을 엄마는 언제고 기억할거야. 여름에 왔다 여름에 간 나의 고양이, 계절처럼 터질 듯 행복으로 넘쳐 흘렀던 나의 고양이. 내사랑, 나의 우주 아주 잠시만 안녕. 


우주 최고로 행복한 집사였던 엄마가.

201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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