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41] Ⅱ. 책임에 대하여 ⑥
낯선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렸을 때,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헛기침마냥 안으로 삼켜지는 무거운 숨.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신중하게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잠시 숨이 가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엉이 눈을 한 고양이 한 마리가 짧동한 호리병 같이 앉아 있다. 흔치 않은 파스텔 카오스 털코트, 미미의 그것과 똑 닮은 털옷을 입고 새초롬 동그랗게 앉은 고양이. 낯선 사람을 골똘히 응시하는 눈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너무 좋아서 당장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지만,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아 깊게 숨을 삼켰다. 너무나, 너무나 닮았구나 나의 아가와...
미미의 여동생 토미. 한날한시에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고양이 토미. 2004년 6월 28일 여름날 블루 컬러 엑죠틱 숏헤어 째째론과 레드 컬러 만도라가 낳은 세 자매 중 막내 아가씨. 그러니까 둘째였던 미미에 곧이어 세상에 온 녀석.
나의 미미와 아주 똑같은 뒤태를 갖고 있는 고양이. 이 녀석들은 울음소리마저 닮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고양이마다 얼마나 다른 목소리를 가졌는지. 탁한 듯 뾰족한, 그리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부엉이처럼 '아욱 아욱' 구슬픈 소리를 내는 것마저 똑같다.
미미가 살아있다면 앉아 있을 모습 그대로 옹동하게 앉아 나를 본다. 조용하고 골똘하게 나를 쳐다보는 토미. 보들보들 털이 빽빽하고, 구슬 같은 호박눈이 반짝이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토미. 내 손길을 기분 좋게 받아주는 토미. 미미 보다 얼굴이 조금 작지만 꼬리는 너구리마냥 통통하게 부푼, 귀여운 작은 고양이. 나의 아가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의 시간을 살고 있는 고양이 토미.
그리고, 미미가 될 수도 있었던 토미. 그러니까 내 아가였을지 모르는 토미. 토미 집사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외모가 엑죠틱 숏헤어 스탠더드에 가장 부합했던 첫째(깨몽)는 이미 분양이 끝난 상태였다. 미미와 토미 둘이 남았고, 집사님 동생이 캐터리에 가기 전, 사진을 보고 점찍었던 것은 미미였다.
그런데 캐터리에 들어서자 토미가 와서 집사님 다리에 얼굴을 부볐다고 한다. 그래서 '어랏 이 녀석이구나' 하고 토미를 데려왔다는 거다. 그러니까 만약 토미가 타고난 진취적인 기질로 지금의 집사님을 간택하지 않았다면, 미미가 집사님댁 고양이가 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토미 이 아이는 16년 전 그날 한 번의 적극적 부빔이 아니었다면 미미, 내 인생의 고양이로 여전히 내 옆에 있었을 고양이라는 얘기다.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더 긴 시간을 지나 이렇게 특별한 녀석을 만나게 되다니. 만날 집사와 고양이는 이렇게 만나게 되어있는 것일까. 역시 인생에 우연이란 없고, 우리는 모두 어떤 알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 것일까. 네가 미미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구나. 미미와 토미가, 두 녀석들과 내가, 토미의 집사님이... 미미가 고양이별에서 책장을 두드리며 내게 보냈던 신호가 인터스텔라 어디를 거쳐 이제야 내게 도착했다. 멍청한 엄마는 네가 보내온 신호를 이제야 조금 안다.
아이가 떠난 후 처음으로 완전히, 정말로 행복한 감정을 선물 받았다. 미미와 투샷 찍기를 좋아했던 내가 토미와 함께 나란히 찍은 사진을 보면, 이렇게 좋은 얼굴로 빙긋 웃으며 사진을 찍은 것이 얼마만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미미를 알았던 누군가 흘끗 봤다면 살아생전 나의 아가와 찍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둘은 닮았다. 두 아이를 마주하는 나의 표정도 그렇다.
그러나 행복의 크기만큼 슬픔이 따라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미미의 부재가 너무 크게 다가와서 며칠을 앓듯이 지냈다. 아이가 없는 일상이 너무 공허해서, 떠난 나의 고양이가 너무 아깝고 아까워서,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라서, 어떻게 너 없이 나는 살 수 있나, 이렇게 하루하루 잘 살고 있나. 어리둥절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가, 또 토미를 떠올리며 마음이 활짝 펴졌다가.
토미를 만나고 온 이튿날 태어나 처음으로 돈 주고 인형을 샀다. 보드라운 달게 자는 모습의 흰 곰인형. 아이가 자주 올라가 자던 피아노 건반 위에, 아이가 좋아하던 방석을 깔고 인형을 뒀다. 아이 유골 옆이다.
아이에게 인사를 건넬 때 인형을 쓰다듬는다. 처음엔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행동의 작위성이 못마땅했는데 아이에게 인사할 때마다 보드라운 인형을 만지는 게 좋아졌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이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내 안에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것이 묘한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내 안에 이렇게 많구나, 나는 참 별 것 아닌 인간이구나, 그런데 그래도 괜찮다 싶은 마음이 든다.
내사랑 미미를 보내고 많은 변화가 따라왔다.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어떤 것은 자연스럽게 됐고, 어떤 것은 결심이 필요했다. 나는 더 이상 술을 먹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과 교류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번잡한 거리로 나가 누군가를 만나거나 감흥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지는 않다. 긴 우울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터널을 지나며 생각이 깊어지고 사랑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확신을 조금씩 배운다. 믿음은 집착이 아니라 해방의 형태로 오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에 대한 집착이 크게 없어졌다. 물론 지금 죽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죽을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을, 삶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
삶을 정돈하는 계기도 됐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연고 없는 지방 소도시에서 고요하게 살고 있다. 대인관계에서 전반적으로 더 부드럽고 친절해졌다. 드물게는 아주 냉정하고 지독할 때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앞발. 미미는 크림색이 많아 인절미라 불렀던 그것이 토미는 감자떡으로 불리고 있었다. 블루 컬러가 많아서 잘 쪄낸 투명한 감자떡 같았기 때문이다. 감자떡을 잠시 조물 거리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내사랑, 사랑해 미미야 토미야. 서로를 지켜주렴. 고맙다 내 털복숭이 아가들.
내일은, 미미와 토미의 열여섯번째 생일이다. 토미는 지구에서, 미미는 고양이별에서 생일을 맞는다. 아가들, 생일 축하해. 내게 와줘서 정말이지 고맙다. 그만 울고, 조만간 다시 토미를 보러 가야겠다. 사랑해 고양이들.
2020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