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42] Ⅱ. 책임에 대하여 ⑦
내사랑 미미,
작고 예쁜 내 아기,
너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구나.
고양이별에서 맞는 첫 생일은 어떻니?
내 곁에서 열여섯 생일을 맞았다면
늘 그랬듯 엄마는 네 납작한 정수리에 작은 고깔을 씌우고
네가 좋아하는 크림치즈 케이크를 앞에 두고
조용조용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 줬을 텐데
살금살금 초를 불어 끄고
너를 답삭 안아 뽀뽀하고 고깔을 벗겨줬을 텐데
지난해 조촐한 파티도 못하고 넘어간 마지막 생일이
무척 속상하구나.
네가 몸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하고,
그런 네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소곤소곤 이야기해주고
고맙고 행복한 마음을 나누며 보냈어야 하는데
사경을 헤매다 기적같이 회복된 네가 너무 대견하면서도
엄마는 전전긍긍 그날을 보냈던 것 같아.
돌아보니 당연한 줄 알았던 너의 아름다움과 건강이
무탈했던 너와 나의 일상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알게 되는 날들이었다.
내 귀염둥이 아가씨,
고양이별에서도 여전히 느긋하고 아름답게 지내고 있겠지?
얼마나 신나고 즐거우면
엄마 꿈에 와주는 것도 잊을 만큼 말이야.
엄마도 씩씩하게 지낸다.
회사에 가고, 자전거를 타고, 식물을 기르고
잘 살고 있단다.
그리고 엄마는 자주 운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를 품에 안고 싶어서
떠난 네가 너무 아까워서
너를 잃은 내가 미워서
그저 문뜩문뜩 울게 되는구나.
사랑하는 내 아기,
정말로 네가 그립다.
귓전에 부딪히는 너의 야옹소리
손끝에 보드랍게 닿는 털 결
맨질맨질 따뜻한 발바닥 공
코를 행복하게 하는 꾸릉한 냄새
그 생생했던 현존을 껴안고
엄마는 지금도 웃고 운단다.
네가 많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 작년 5월이지.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계절이,
눈부신 초여름이
이제 난 시리도록 아프고 싫다.
지난달부터 속에 뭐가 얹힌 것마냥
무얼 해도 썩 즐겁지 않구나.
엉망인 채로 꾸역꾸역 사는 것이 삶인가,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엄마는 사회적으로 더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이 됐지만,
실은 굴 속에서 홀로 사는 기분이야.
사람들에겐 고요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적적함이 괴로울 때가 많아.
이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갈 걸 알았다면
너와의 행복을 아끼지 않았을 텐데
함께 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너를
더 알뜰살뜰 보살폈을 텐데
엄마가 얼마전 출근길에 고양이 친구를 만났어.
손 잡아달라 다가온 녀석을 두고 차를 모는데
퇴근길엔 녀석을 데리고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뭐니.
너의 미모에는 조금도 견주기 어려운 어린 고등어였어
이미 10년이나 지상 최고의 예쁨을 독점했던 나는
고양이 외모운 따위는 다 쓰고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드디어 예정대로 못생긴 고양이를 줍게 됐다고 김칫국을 마셨지.
그런데 퇴근하고 오니 벌써 누가 데려갔다고 해서 꽤나 섭섭했단다.
너의 생일, 별이 된 네게 엄마는 되려 선물을 달라고 졸라 본다.
올해는 엄마가 꼭 네 동생을 만나고 싶어.
어여쁜 고양이와 가족을 꾸리고 사랑하며 살고 싶구나.
엄마는 네 덕분에 사랑을 알게 됐어.
그건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그런 새로운 사랑이야.
지나간 사랑이 그저 좋아하고, 그립고, 갖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것이었다면
이제 내가 아는 사랑은 돌보고, 나를 나누어주는 그런 것이란다.
내가 네가 되는 그런 것.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남은 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그러니 네가 도와주길 간청해.
네 생일에 이렇게 부탁이나 하고 있고 엄마는 여전히 철이 없지?
그래도 미미 너의 마음이 닿는 곳에
내 새로운 사랑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된다.
싱싱한 생고기를 좋아했던 나의 작은 육식동물,
생일을 맞은 너에게 맛있는 걸 해줄 수 있다면 너무너무 좋을 텐데.
엄마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지만
너에게 줄 좋은 고기를 찾아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포장을 뜯는 순간 이미 달려와 야옹야옹 재촉하던 너에게
귀엽게 면박을 주며 생고기를 썰어 주던 그 행복을 엄마는 다시 꿈꾼다.
열여섯 번째 생일 축하해요 내 사랑.
나에게 와줘서 고마워.
고양이별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주 가끔은 엄마 꿈에 와주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202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