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장지구> (天若有情, 1990)
극 중 주인공 아화는 소위 말하는 ‘하류 인생’을 살고 있다. 오토바이를 즐기며 불량배들과 경주를 벌이거나 시내로 나가 한바탕 난동을 피우고 오는 것이 일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외골수답게 큰 형님의 보석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상 소탕 작전을 벌이던 중이었으나 경찰의 눈에 띄게 되고 지나가던 죠죠를 인질로 잡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아화와 죠죠는 미묘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이내 사랑에 빠진다.
부잣집 자제인 죠죠와 한낱 깡패에 불과한 아화의 사랑은 상반된 사회적 위치가 주는 캐릭터 간의 차이와 역경과 반대가 가득하다는 점에서 매력을 더한다. 주변의 방해를 피해 몰래 만나거나, 고난을 이겨내고 결국 맞닿는 사랑은 서사를 쫄깃하게 하고 관객을 극 속으로 끌어당긴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된 사랑이 관계를 특별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불변의 법칙인 셈이다. 물론 아화의 직업과 캐릭터성을 고려했을 때 죠죠를 비롯해 주변 사람에게 다소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는 죠죠와 일상을 함께하며 부드러워지는 아화의 태도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수도 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하며 사소한 장난을 치는 등 서로가 서로의 하루에 녹아드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죠죠와 아화의 관계도 점점 가까워진다. 관객은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몰입하며 사랑이 끝까지 지속되기를 염원하게 된다. 하지만 관객은 예전부터 관찰해 온 여러 클리셰를 보며 이미 죠죠와 아화가 연결되지 못할 사이였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의 반대를 꺾지 못한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의 도피를 결심한다. 흰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탄 채 성당으로 질주하는 이들의 모습은 단순한 명장면을 넘어 누아르 로맨스 장르를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이들의 끝없는 안전과 행복을 바랐던 관객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화는 영원한 사랑을 기도로 맹세하는 죠죠를 뒤로한 채 마지막 복수를 하러 떠난다. 아버지와도 같았던 의형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서다. 영화 중 후반부쯤부터 시한부를 예견했던 아화로서는 죠죠에게 비참한 끝을 보여주기보다 의리를 지키고 죽는 편이 조금 더 명예롭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맨발로 텅 빈 도로를 뛰어다니며 울부짖는 죠죠의 모습이 관객에게 더욱 아련하게 가 닿는다. 순백을 상징하는 흰 턱시도에는 유혈이 낭자하고, 흰 드레스는 죠죠가 거리를 거니는 동안 더러워진다.
뻔하고 유치해도 이루지 못한 사랑이 오래 기억되고 아련하게 마음에 남는 법이던가. 부모님의 완강한 결정으로 죠죠는 아화의 끝을 모른 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게 되겠지만 평생 잊지 못할 절절한 사랑으로 그에게 오래 기억될 테다. 이는 관객의 심리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슬프고 애절한 관계가 눈에 더 밟히는 만큼 이내 이뤄지지 못한 두 사람의 애틋한 관계성은 과거를 넘어 현재에도 끝없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지금, <천장지구>의 플롯은 다소 진부하고 예측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잊히지 않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때로는 단순하게 영화의 만듦새나 완성도만이 작품의 흥망성쇠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지금의 관객은 그 시절의 홍콩이 가진 투박하면서도 순수한 낭만을 잊지 못한다. 리메이크로는 절대 재현될 수 없는,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볼 때만 느낄 수 있는 이상한 향수가 <천장지구>에 묻어 있다.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는 죠죠와 아화가 아무 역경 없이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Written by 나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