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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ids Aug 14. 2022

홍콩 거리를 거닐며 마주한 사랑의 순간

영화<크로싱 헤네시> (Crossing Hennessy, 2010)

아라이(장학우 분)과 아이렌(탕웨이 분)은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어른들은 둘의 관계가 진전되길 기대하는 눈치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아이렌은 징역을 살고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 날을 기다리고, 아라이는 헤어졌던 옛 여인과 다시 만나 끊어졌던 인연을 이어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종종 거리에서, 차찬탱에서 마주친다. 수수한 듯 화려한 홍콩의 '헤네시로드'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그 일상을 공유한다. 서로 즐겨 읽는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연인과의 관계로 인해 받는 감정들을 서로 풀기도 하며 정을 쌓는다. 일상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헤네시로드는 영화에서 매력적인 전경으로 등장하며 이들의 일상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한편,  항상 아라이의 꿈은 화면이 흔들리는 효과와 함께 등장한다. 이러한 효과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대화하는 꿈 장면이 현실이 아닌 ‘꿈’임을 구분짓고 있다. 꿈에서 아라이는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화면 효과와는 다르게 아버지로부터 조언을 얻으며 안정을 얻는다. 일을 더 열심히 하라며 닦달하고 결혼을 재촉하는 현실에서의 어머니와 달리 꿈에서의 아버지는 아라이를 위로하거나 격려한다. 아라이는 그런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고, 그래서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즉, 그에게 '꿈'은 현실 도피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있는 믿음을 확인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러 번 삽입된 '꿈'에서 아버지만 등장하다가 마지막에 당도하는 꿈에 이르러서 아이렌이 등장한 것은 아라이와 아이렌의 관계가 서서히 진전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차찬탱에서 만난 인도인은 ‘꿈’이라는 공간의 또 다른 변주이다. 아라이와 아이렌이 처음 차찬탱에 갔을 때 자신이 인도인이라 소개하는 종업원은 여기서는 에그 타르트를 꼭 주문해야 한다고 강권한다. 그의 제안에 어처구니없어 하던 둘은 다시금 그곳을 방문했을 때 인도인 종업원의 안부를 묻는다. 주문을 받던 종업원은 자신이 이곳에서 일한 지 28년이 되었지만 인도인은 없었다며 귀신에 홀린 게 아니냐며 그를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하지만 인도인 종업원을 아라이 혼자만 본 것이 아니다. 아이렌이 그의 증인이 되어주면서 인도인은 서로 공유하고 있는 ‘신뢰’라는 감정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만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곧 나를 믿어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를 가지기에 소중하다. 영화 내내 그의 환영을 쫓던 아라이의 행동은 곧 사랑에 상처 받고 아파하는 아이렌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영화 내내 알쏭달쏭했던 인도인은 둘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나면서 귀신이 아님을 밝힌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신기루가 아닌, 단단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라이는 어머니의 결혼식에서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아이렌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비 오는 거리를 헤쳐 지나가며 항상 둘이 마주치던 차찬탱에 도착한 후 만난 아이렌은 어김없이 그곳에서 추리소설을 읽고 있다. 평균적으로 추리소설은 약 67쪽까지 읽으면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다며 책의 중후반을 펼쳐 놓은 아이렌에게 아라이는 범인이 누구인 것 같냐고 묻는다. 오랜 시간 동안 결실을 보기 위해 헌신한 사랑도,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던 미련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도 아닌 ‘그녀를 웃게 할 수 있다’는 짐작만으로 종종 사랑은 시작된다.



Written by 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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