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니친니: 안나마덕련나> (安娜瑪德蓮娜, 1997)
무테안경을 낀 남성이 눈을 지그시 가는 채 열심히 달려가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음악을 듣는다. 이내 카메라는 피아노의 내부를 비추고 피아노를 조율하는 남성을 열렬히 담아낸다. <친니친니-안나마덕련나>는 피아노 조율사인 진가부가 우연히 유목인과 막민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시트콤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담아낸다. 작품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되는데, 음악과 관련된 진가부의 직업에서 따와 ‘악장’으로 서사를 구분 짓고자 한다. 제1 악장은 '유목인', 제2악장은 '막민아', 그리고 제3악장은 '유목인과 막민아' 이다. 제3 악장까지 보면 단순하면서도 조금은 뻔한 사랑 이야기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제4악장은 타이틀인 ‘변주’처럼 급하게 분위기를 틀어 관객을 새로운 극중극으로 인도한다.
진가부는 위층에 살고, 매일 미뉴에트를 연주하지만, 실수 없이 완벽하게 치는 날이 없는 이상한 여성 막민아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반면 막민아는 진가부의 집에서 뻔뻔하게 얹혀사는 소설가 지망생 유목인에게 호감을 갖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내 유목인은 살길을 찾겠다며 이내 떠나버리고 만다. 제3 악장까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진가부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제4 악장은 진가부가 써 내려간 소설을 현실과 연결 지으며 빠르게 진행된다. 소설은 진가부의 얼굴을 한 'O'와 막민아의 얼굴을 한 'X'가 역동적인 모험 끝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으로, SF나 판타지를 연상케 하듯 박진감 있게 극적으로 진행된다. 두 주인공은 마침내 사랑에 빠져 해피 엔딩을 맞게 되지만, 현실의 진가부와 막민아는 끝끝내 엇갈린 방향으로 마음을 보낸다.
이러한 극의 전개는 작품의 부제가 ‘안나마덕련나’인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안나 막달레나는 영화 전반에 깔리는 ‘미뉴에트 G장조’를 작곡한 바흐의 두 번째 아내로. 그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바흐는 안나를 위한 소곡집을 만듦으로써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별개로 안나는 살림과 육아로 허덕였고, 넉넉지 않은 바흐의 수입으로 빈곤하게 생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밝은 느낌으로 부드럽게 진행되는 미뉴에트지만, 어쩐지 단조로운 운율이 외롭고 슬프게 들리기도 한다. 영화 또한 전반적인 분위기는 유쾌하면서도 재미있지만, 올곧게 연결되는 사랑의 작대기 하나 없이 아련하게 끝나는 결말에선 관객이 등장인물에 은근한 애틋함을 느끼기도 한다.
‘운에 달렸을 뿐 공평한 건 없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막민아를 찾지만, 누군가는 평생 찾지 못한다.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진가부의 소설 마지막을 장식하는 구절은 사랑을 포함해 우리네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생은 생각보다 등식처럼 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운과 타이밍으로 점철된 순간순간의 선택이 미래의 방향을 급작스럽게 틀거나 예측을 벗어나는 결과를 자주 데려온다. 하지만 이것이 불행한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씁쓸하고 어쩌면 잔인할 수 있는 이런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과 기쁨을 얻을 때 우리는 불안한 내일이 기대감 넘치는 내일로 바뀌는 순간의 희열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페어플레이만 가득한 게 인생이라면 오히려 재미없고 지루할 테니까.
Written by 나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