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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Oct 10. 2024

한글날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한글날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한글날이 공휴일인지 아닌지가 중요했다. 공휴일은 주중에 덤으로 서울 집에 갈 수 있는 고마운 날이었다. 지방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교수들뿐 아니라 학생들도 타 지역 출신이 많았다. 낯선 지역에 온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캠퍼스에 오래 머물며 따뜻하고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학교는 기대했다. 동료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이사 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족이 같이 움직이기 힘든 동료들은 나처럼 주말부부로 사는 경우도 많았다.


은퇴한 요즘은 매일이 휴일이다. 그제, 어제처럼 휴일인 오늘, 한글날이 공휴일인지를 따지는 대신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생각해 본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1446년으로부터 578년이 지났다. 아득하게 먼 옛날 일 같기도 하고 유구한 역사의 흐름에 비추면   옛날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달 학술대회에서 듣게 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떠올려 보았다. 




한 달 전인 지난 9월, 폴란드의 서쪽 도시 포즈난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호주 멜버른대학의 조셉 로 비안코(Joseph Lo Bianco) 교수의 기조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비안코 교수는 언어계획, 이중언어 교육, 문해학 전문가로 말레이시아, 미얀마, 태국 등 동남아시아의 언어 갈등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온 분이다. 비안코 교수가 강연 도중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언급했다. 귀가 쫑긋 섰다. 태국 마히돌대학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가 개발한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이 "중요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타는 쾌거를 이루었다고 소개했다.

 2016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받은 태국 마히돌대학의 프렘스리랏 교수 (비안코 교수의 PPT 발표 자료)

중요한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멀리 폴란드 포즈난에 와서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반갑고 가슴이 뿌듯해졌다. 특히 앞에 붙은 "중요한"이라는 수식어가 내 관심을 끌었. 어떤 프로그램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탔는지 궁금해져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태국의 남쪽, 말레이시아와 국경 근처에 있는 빠따니 지역에 이슬람교를 믿는 말레이계 태국 사람들이 살고 있다. 불교 국가 태국에서 이슬람교도로 사는 이들 소수 민족의 삶은 녹록지 않다. 빠따니 사람들은 대다수의 태국 사람들과 종교가 다를 뿐 아니라 언어도 다르다. 태국어가 아닌 빠따니 말레이어가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공식어 태국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제도권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갈등과 충돌에 휩싸이게 된다.


프렘스리랏 교수 연구팀은 빠따니 말레이어를 쓰는 소수 민족과 태국어를 사용하는 다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언어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빠따니 말레이어와 태국어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초등학교에서 시행하였다. 지역 정체성과 자부심을 느끼게 함으로써 민족적 화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중요한" 세종대왕 문해상을 타게 된 것이다.

태국의 남쪽, 말레이시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빠따니 (출처: 구글 지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알리고 전 세계 문해 증진을 위하여 1989년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제정되었다. '세계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인 9월 8일을 기념하여 국제 사회의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매년 상금 2만 달러, 수상 증서와 메달을 수여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주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지원하당당한 나라다.


2024년 올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수상자는 서부 아프리카의 가나,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 중앙아메리카의 파나마 등 세 나라에 속한 단체가 선정됐다.


가나의 교육평등개발재단은 도서관이 없는 외딴 지역에 벽이 없는 모바일 도서관(Libraries without walls) 제공하여 독서에 흥미를 갖게 된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였다. 오스트리아의 빈 교사교육대학은 복스미(voXmi)라는 교육 네트워크를 운영하여 언어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주민 아이들의 문해력을 향상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파나마의 프로에드 재단은 소외된 빈곤 지역 학생들의 문해력을 증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문 교육 제공 및 북클럽(Book clubs) 운영을 하여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가나(위 왼쪽), 오스트리아(위 오른쪽), 파나마(아래) (출처: 유네스코)


한글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상한 세 나라의 관계자들을 우리나라에 초청해 한국 문화를 소개한다고 한다. 문맹 타파라는 한글 창제 정신이 글로벌 문해력 향상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확장된 것을 아시면 세종대왕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578돌을 맞은 한글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문해력 향상과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상징이 되었다.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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