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Aug 17. 2023

지각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과 사위

팔짝팔짝 뛰며 딸과 사위를 환영하는 손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 하루 전 날


딸 부부가 예정하고 떠난 6박에서 이제 달랑 하룻밤만 남았다. 깜깜한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면서 앞집도 자고 옆집도 자니 우리도 이제 잘 시간이라고 손녀에게 말하며 창문 커튼을 내렸다. 검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며 오늘 하룻밤만   내일 아침에 아빠, 엄마가 돌아와 있을 거라고 손녀에게 삭였. 27개월 된 손녀가 과연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엄마, 아빠가 돌아온다는 내 말을 예쁜 입을 오물거리며 그대로 따라 하는 걸 봐서 손녀는 알아들은 것도 같다.  부부가 손녀를 재울 때 하는 대로 책장 위칸에 있는 기를 향해 "오케이 구글, 화이트노이즈 레인드롭스"라고  말했다. 비 내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손녀를 최애 인형 원숭이와 함께 침대에 이고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딸 부부가 아침 6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는 카톡이 왔다. 우버를 타고 마운틴뷰 집에 도착한 딸과 사위 둘 다 건강해 보인다. 피부가 흰 사위는 얼굴과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고, 물과 수영을 좋아하는 딸은 까매졌다. 무사히 다녀온 딸과 사위를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따뜻하게 안아줬다.


손녀가 아침잠에서 깨어나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랑 아빠를 보았다. 빨간 올인원 잠옷에 빨강, 핑크 하트가 그려진 흰색 바지를 입은 손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매트리스 위에서 팔짝팔짝  뛰고 또 뛰고 또 뛴다. 조막만 한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이다. 입이 양 쪽 귀에 렸다. 저렇게 좋을까?  주만의 가족 상봉이 몇 년 만에 만난 듯 눈물겹다.


아침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라 잠도 못 잤을 텐데 딸과 사위는 손녀를 프리스쿨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오늘까지 휴가라니 손녀를 데려다주고 와서 눈을 붙이면 되겠다 싶었다.


프리스쿨 앱 손녀가 교실에 잘 들어갔다는 메시지가 떴다. 딸이 우리 부부도 앱에 등록시켜 학교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얼마 있지 않아 아침 간식을 다 먹었다는 글이 올라다. 점심에는 "ㅇㅇ는  먹니다.  미트볼 수프는 ㅇㅇ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ㅇㅇ is a good eater, and a meatball soup is one of her favorites.)라는 문자도 날아온다. 낮잠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잤는지, 무슨 활동을 했는지도 올려준다. 먹는 사진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동영상 가끔씩 보내준다. 마지막으로 프리스쿨을 몇 시에 떠났는지 알려주는 것으로 하루 메시지가 끝난다.


딸 부부는 프리스쿨에서 보내는 메시지 덕분에 멀리 마우이섬에서도 손녀의 하루 활동을 꿰뚫고 있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우리가 아이를 기르던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려면 많이 가고 번거로울 텐데... 선생님들 노고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딸 부부도 돌아왔으니 오늘은 칼트레인(Caltrain)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코 현대미술관(SFMOMA) 다녀오려고 했다. 내일 수요일은 미술관 휴무일이라 오늘 화요일밖에는 시간이 없다. 우리가 목요일에 한국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칼트레인(Caltrain) 노선 (출처: 구글맵)

칼트레인은 캘리포니아 주 열차로 샌프란시스코와 길로이 사이를 운행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마운틴뷰에서도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칼트레인을 탈 수 있.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는 보통 우버를 타거나 딸 차를 빌렸는데 이번에는  없이 가볍게 가는 거니 기차를 타보자고 했다. 거리는 58km, 칼트레인으로 56분 걸린다. 요금은 $8.25. 시니어 할인은 $3.75. 너무 싸다. 우버로 딸네 집에서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는 40분쯤 걸리고 요금은 팁 포함해서 $70 가까이 나온다. 한국에서 전철과 기차를 즐겨 타는 편이라 여기서도 기차 나들이 보고 싶었다. 지난 3월에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가까운 밀브레에서 마지막 2박을 머물다가 한국으로 떠났는데 그때 사놓고 다 쓰지 않은 바트(BART) 전철표도 있다.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한국으로 떠나기도 전에 벌써 시차적응에 돌입했는지 어젯밤에는 한숨도 못 자고 꼴딱 밤을 새웠다. 감기몸살 기운도 있어 몸이 나른하처진다. 미국 오기 전부터 시큰거렸던 허리도 아직 그대로다. 남편은 긴 비행을 앞두고 무리하지 않는 좋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집에서 쉬는  좋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


시팟 샤부샤부 식당

샌프란시스코에 가지 않고 집에 있을 거라하니 딸은 점심을 이웃 동네 서니베일에 가서 지난 주말에 줄이 길어 먹지 못 한 샤부샤부를 먹자고 다. 오늘은 주중이라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거라고 했다. 딸이 말'팟'(Seapot) 검색해 보니 요즘 코로나 시대에 맞는 식당이. 매운맛, 미소된장, 허브, 크림 등 네 개 육수 중 하나를 고르면 각자 앞에 마련된 개인별 화구 위 냄비에 육수를 부어준다. 초밥 식당처럼 식탁 옆에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는 해산물, 야채, 버섯, 만두, 국수, 어묵 등을 각자가 개인 냄비에 넣어 먹으면 된다고 한다. 


설빙 카페
<Sunday Funday in Koreatown> (Aram Kim, 2021)

후식으로는 서니베일 동쪽에 위치한 타클라라가서 팥빙수를 먹자고 다. 우유눈꽃 빙수로 유명한 '설빙'이 타클라라에 있단다. 요즘 손녀가 즐겨 읽는 <코리아타운에서 신나는 일요일> 동화책에 꼬마 주인공 유미가 아빠랑 팥빙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손녀는 자기도 팥빙수를 아주 좋아하며 아빠, 엄마랑 같이 팥빙수를 먹으러 갔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지금 프리스쿨에 있어 손녀가 같이 가지 못해 아쉽. 그래도 집에서 조금만 운전하고 나오면 팥빙수를 비롯해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인마트도 갈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80년대에 우리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근처에 한국 음식점이 하나도 없었다. 새삼 한국의 발전된 위상이 느껴져 뿌듯함이 올라온.


쨍하게 파란 하늘과 창가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신 아침에 딸, 사위는 손녀를 프리스쿨에 데려다주고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어젯밤 자고 일어난 남편까지 잠이 들었다. 밤을 꼴딱 새운 나만 잠을 못 자고 있다. 대신 나는 핸드폰 화면에 눈을 두고 있다. 서울 집에 있는 컴퓨터의 넓은 화면이 편하지만,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작은 핸드폰 화면과 자판도 괜찮다. 조용히 글을 읽고 쓸 시간을 제공해 주는 세 사람이 고맙다. 모두 푹 자기를 바란다. 잠에서 깨면 '' 샤부샤부 먹으러 서니베일에 갈 것이다. 그리고 팥빙수를 먹으러 타클라라있는 '설빙'까지 갈 것이다.

마운틴뷰, 서니베일, 샌타클라라 (구글맵)


꼭 가기를 바랐던 신혼여행을 딸과 사위가 무사히 다녀왔으니 우리 임무를 완수한 셈이다.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제대로 못 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딸에 대한 짠함이 이제  빠져나간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우이섬 여행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2023. 8. 1)


작가의 이전글 지각 신혼여행을 떠나는 딸과 사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