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Aug 10. 2023

지각 신혼여행을 떠나는 딸과 사위

손녀를 돌봐준 첫날


오늘 아침 6시 반 딸과 사위는 집 앞에 도착한 우버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떠났다. 결혼 삼 년 만에 떠나는 지각 신혼여행이다. 여행지는 하와이에서 두 번째로 큰 마우이섬.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마우이섬에 있는 카훌루이 공항까지 5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한창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때 아파트 뒷마당에서 둘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못 가 마음 한 구석이 짠했는데, 늦게나마 신혼여행을 떠나는 들뜬 딸과 사위의 모습을 보니 두둥실 내 마음도 다.

코로나로 신혼여행을 못 떠난 딸과 사위
https://brunch.co.kr/@hskimku/37


일주일 전 남편과 나는 샌프란시스코 남쪽 실리콘밸리에 있는 딸네 집에 도착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딸 부부를 대신해 27개월 된 손녀를 봐주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는 코로나 때문에 미국 방문이 어려웠다. 백일 즈음엔 절차는 복잡했지만 방문이 가능해졌다. 출국 하루 전날 발급한 음성 확인 결과가 필요하다고 해서 영문 증명서를 신속하게 주는 병원을 인터넷에서 수소문했다.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Tdap 예방접종 주사도 맞았다. 복잡한 절차를 뚫고 품에 안은 손녀의 웃는 모습이 얼마나 똘망하고 예쁘던지. 엄마가 된 딸의 모습은 또 얼마나 의젓하고 대견해 보이던지.


돌 때는 코로나가 누그러져 방문이 수월했다. 한국에서 가져 한복을 예쁘게 입혀 돌잡이도 할 수 있었다.

당근마켓에서 구입한 돌 한복과 돌잡이 용품
https://brunch.co.kr/@hskimku/28


두 돌 때는 며느리 출산 예정일과 날짜가 비슷해 손녀 생일날보다 두 달 여 일찍 방문했다. 네 번째인 이번 방문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도, 우버 타고 공항에서 딸네 집에 가는 길도 내 동네처럼 친숙하고 익숙했다.


딸과 사위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보통 한 사람은 1층 부엌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2층에서 손녀를 본다고 한다. 손녀를 보는 차례가 오면 딸은 영상통화로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손녀를 보여주었다. 대면, 대면으로 자주 봐서인지 손녀는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를 낯설어하지 않는.


지금까지 우리 부부는 능숙하게 손발 맞춰가며 손녀를 돌보는 딸 부부를 감탄스럽게 지켜보는 관객이었다. 물론 손 내밀면 아채듯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었다. 딸, 사위가 마우이섬에 가 있는 이번 일주일 동안 우리는 도우미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손녀를 돌봐야 한다.


손녀랑  더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같은 직장에 다니는 딸과 사위가 출퇴근길에 손녀를 프리스쿨에 데려가고 데려오던 일을 우리가 맡았다. 프리스쿨은 집에서 걸어가면 1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는 길도 간단하다. 유모차 손녀를 태우고 직선으로 똑바로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바로 프리스쿨이 보인다.


 부부가 둘이서 같이 식사준비를  동안 우리는 손녀놀았다. 식사를 하면서 손녀의 식성과 식사 습관도 눈여겨 살폈다. 매일 목욕도 시켜 주었다. 손녀가 좋아하는 거품목욕도 하고 비눗방울 불기도 하고 손님놀이도 다. 손녀가 차주전자를 기울여  찻잔에 물을 따라주 나는 고맙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시는 척하며 맛있다고 엄지척을 다. 역할을 바꿔 내가 손녀가 들고 있는 찻잔에 물을 부으손녀도 똑같이 고맙다고 한다. 먹는 척을 하며 맛있다고 눈을 반짝인다.


손녀가 갑자기 '파리'라고 외쳤. 파리?? 화장실에 놓인 아기용 변기(potty )에 앉혀 달라는 말이었다. 화장실에 비치된 책 중에서 손녀가 책을 고르면 변기에 앉은 손녀에게 읽어준다. 요즘은 <코리아타운에서 신나는 일요일>(Sunday Funday in Koreatown, Aram Kim, 2021)이란 동화책에 꽂혔다. 어린 주인공 유미가 일요일마다 하는 신나는 일들이 이번 일요일엔 웬일인지 다 어긋나지만 좋아하지 않일들도 해보니 신난다는 내용이다.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손녀가 신기하고 귀엽다.


나름 친해지려고 노력은 했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일주일이나 엄마, 아빠와 떨어지는 손녀가 우리랑 잘 지낼지 걱정이 앞선다.


딸도 걱정이 되는지 손녀와 관련해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을 항목별로 꼼꼼하게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곤 하나씩 설명을 했다. 손녀가 열이 나면 체온 재는 법부터 주어야 할 약, 혹시 큰일이 생겼을 때 취해야 할 응급처치, 응급실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7일 동안 먹을 음식도 가볍게 그냥 냉장고에서 꺼내 줄 수 있는 치즈, 햄, 요거트, 주스, 과일부터 간단하게  수 있는 에어프라이 요리, 좀 더 손이 가는 요리로 분류해서 알려줬다. 재료들이 냉장고 어디에 있는지도 세하게 알려주었다. 또 우리가 먹을 음식은 앱에서 주문할 수 있다며, 앱 사용에 익숙지 않은 내게 태블릿으로 음식 주문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예행연습도 시켰다.


프리스쿨 갈 때 옷은 손녀에게 물어본 후 입히면 된다고 했다. 딸은 보통 옷 두 벌을 가져와서 손녀 보고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면 꼬맹이 손녀는 머뭇거림도 없이 그중 하나를 고른다. 데이케어에서는 기저귀가 보여도 지만, 프리스쿨에서는 기저귀가 보이지 않게 반바지를 꼭 입혀야 된다고 했다. 딸아이는 손녀와 처음 떨어지려니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를 둘이나 키운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  다녀오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오늘은 드디어 우리 부부 둘이서 손녀를 는 첫날이다. 막 잠에서 깬 손녀 볼이 발그스레하다. 아침 햇살 같이 환한 미소도 예쁘다. 손녀를 품에 꼭 안아 아기 침대에서 꺼냈다. 참 보드랍고 따스하다. 엄마, 아빠 방에 달려갔다 오더니 엄마랑 아빠가 여행 가서 없다고 했다. 이제 6일 자면 돌아온다고 손가락을 펴 보이니 나를 따라 고사리 같은 손가락 여섯 개를 오물거린다. 


하얀 꽃이 그려진 핑크빛 면 원피스에 진분홍 반바지를 입히려고 꺼내놓으니 싫단다. No, no! 하며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든다. 딸이 손녀에게 안 된다고 말할 때 쓰는 제스처다. 빨간 티에 파란 반바지를 입겠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입혔다. 양말 박스에서 파란색 양말이 눈에 띄어 얼른 신겼다. 양말까지 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슬쩍 파란 헤어핀도 머리 양쪽에 꽂았다.


식사는 프리스쿨에서 제공하니 아침에는 볍게 요거트 하나만 먹이면 된다고 했다. 딸이 매일 아침에 하듯이 손녀를 식탁에 앉힌 다음 헝겊 턱받이를 채워주고 그 위에 플라스틱 턱받이 이중으로 둘러준 후 요거트 통에 연두색 빨대를 꽂아 주었다. 파란 프리스쿨 가방에는 물통, 손녀가 최애 하는 원숭이 인형과 여분 옷을 넣었다.


이제 유모차에 태우고 프리스쿨에 갈 준비가 다 되었다. 마운틴뷰 하늘은 참으로 파랗다. 햇살은 강렬하지만 습도가 낮아 바람이 불거나 그늘에 들어가면 바로 서늘해진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날씨를 좋다고 하나 보다.


손녀랑 하늘도 쳐다보고 나무도 보고 노래도 하며 길을 걷다 보니 파란 양말을 신은 손녀의 두 발이 꼬물거린다. 아이고 신발을 신기지 않았다! 뒤에서 유모차를 밀고 있던 남편에게  기다리라고 하고 집까지 달려가 차고에 진열되어 있는 신발 중 하나를 들고 다시 뛰었다. 그래도 학교 도착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다. 프리스쿨은 보통 8시에서 9시까지 가면 된다고 했는데 그전에 가까스로 도착할 것 같다.


프리스쿨에 도착했다. 교실 입구에서 손녀의 체온을 잰 체구가 큰 여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따뜻한 미소가 넉넉하고 푸근해 보인다. 손을 씻는다며 손녀는 쏜살같이 교실 안쪽으로 뛰어갔다. 체온 재는 것과 손 씻는 일은 아침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루틴이다.


옆 방에 와서 입퇴실 기기에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얹으니 화면에 손녀 얼굴이 나와 클릭했다. 손녀가 8시 57분 교실에 잘 들어갔다는 체크 사인이 떴다. 딸과 사위도 마우이섬에서 손녀가 9시 전에 가까스로 교실에 들어간 것을 알 것이다. 신발 때문에 한 차례 작은 소동은 있었지만 첫날 아침 임무를 무사히 수행했다.


우리는 이제 편한 마음으로 프리스쿨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들러 아침을 먹을 것이다. 지난번 먹었던 햄과 치즈를 넣은 크로와상도 맛있었지만 오늘은 다른 빵을 골라봐야겠다. 전직 산파와 제빵사 부부가 운영해서 카페 이름도 The Midwife & the Baker인데 이 동네에서는 나름 맛집이다. 오늘 고른 것은 꽈배기(Frangi twist)와 스콘이다. 커피 컵에는 내 이름 Hazel이 쓰여있다.

Frangi twist and scone
The Midwife & the Baker


(2023. 7. 26)

작가의 이전글 생일 축하 고마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