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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Jul 31. 2023

무기력, 까짓 게 힘은 힘이라고

무기력에 대항하는 우리의 삶을 응원하며

매해 연말 연초가 되면 으레 한 해가 끝났다는 벅참과 함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글쎄, 나의 경우에는 사뭇 다르다. 무엇을 일구었고, 또 무엇을 일궈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혼자 깊은 공허에 빠져들곤 한다.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어느 순간 사르르 사라지고 마는 감정이지만, 나만의 공허에 빠지는 그 감정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해를 거듭하며 나이가 차오를수록 공허감에 침잠하는 시간이 차차 길어지고 있다. 딱 12월, 딱 1월에 한정되던 것이 하반기까지 기승을 부린다. 괜스레 아무 것도 하기가 싫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하는 미운 마음이 계속 남아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누워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곤 한다. 쉬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며칠 연차를 사용하고 휴식을 만끽해도 그 순간 뿐.


무엇이 나를 이토록 옥수수 수염같이 흐늘거리게 만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도무지 명쾌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봤다. 숨이 그득 차올라 폐가 터질 정도로 공원을 뛰어 보고(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잔잔한 음악을 깔아서 명상도 했다. 혼자 부산으로 훌쩍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잔뜩 사 먹고 이곳 저곳 예쁜 카페를 찾아 카페 투어를 즐기기도 했다.


부산의 '얼룩'이라는 카페. 혼자 우두커니 앉아 멍 때렸던 곳

이러한 방법들은 나에게 분명 각각의 해방감과 행복을 주기는 했다. 문제는 '잠깐'이었다는 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장을 보며 누워서 하염없이 무기력한 감정에 다시 빠져들었다. 다음 휴가 때는 이걸 해볼까? 이번 주말에는 저걸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내 의지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섬찟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무얼 하든 "어차피 별 감흥이 없을 거야"라고 넘겨 짚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해서.


무기력, 까짓 게 힘은 힘이라고 사람을 참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진다. 잡아 당기는 힘이 대단하다. 사람을 앞에서 잡아 끌면 다행이지만 아래로 끌어 당긴다. 걷지 못하게, 달리지 못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마음에 고민을 털어 놓자니 그 마저도 쉽지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문제들과 싸워 이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실제로 나는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기분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것을 무척이나 조심하는 편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으레 내뱉곤 한다. 물론 참 어려운 일이다. 간혹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거나 욱하는 경우는 있지만 최대한 조심하려 노력한다. 이런 이유로 나의 무기력이 다른 이에게 옮겨 가는 일을 최대한 경계한다. 만약 말을 하더라도, 가급적 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일정 수준 스스로 다독여 둔 이후에 한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저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본인의 무기력함을 다른 이에게 말하고 공감과 위로를 얻어 이겨내는 사람이 있고,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훌훌 털고 탈출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가까운 지인 중 한 사람은 무기력이 찾아올 때 혼자서 하루 종일 녹색을 바라본다고 한다. 수목원에 가서 숲을 거닐든, 공원에 가서 나무를 보며 걷든 하면서.



모쪼록 새삼 깨닫는 것은 자신만의 무기력 타개책을 "미리 대비해야"한다는 점이다. 강이 범람하는 와중에 둑을 짓는 일이 소용 없듯, 무기력이 나 자신에 깊이 파고들 때 허우적대면 밀어내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무기력은 마치 늪과도 같다. 이미 발이 빠져들고 있는 와중에 탈출을 위해 힘을 쏟으면 도리어 더 깊고 빠르게 몸 전체가 빠져들게 된다.


무기력의 늪지대에서 혹시라도 이미 늪에 발이 깊게 빠진 후라면, 그 즉시 '붙잡을 것'을 손으로 튼튼하게 잡고 몸을 끌면서 힘껏 올라와야 한다. 그 붙잡을 것을 미리 가방에 넣어두었거나 어깨에 메고 있었다면 다행일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그 붙잡을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있다고 한들 나무젓가락(?) 정도의 수준이려나. 여전히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작은 희망이 있다면, 최근 자취를 시작하고 나만의 집이 생기면서 공간을 꾸미거나 음식을 하며 새로운 자극이 생긴 점이랄까. 내가 사는 거처를 이리 저리 꾸미고 나를 위한 음식을 직접 해 먹는 일은 무척이나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간들이 차츰 무기력의 공허를 메우고, 또 꾸덕한 늪에서 빠져 나오도록 돕고 있다.


회사와 집을 반복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현대 삶 속의 우리. 공허감에 무척이나 취약할 수밖에 없다. 피곤하고 정신 없는 와중에도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하며 무기력을 밀어내는 중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꼭 당신만의 무기력 탈출 대비책을 갖춰 놓길 바란다. 무기력에 대항하는 우리의 삶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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