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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oonsam Jun 01. 2022

예? 인천이라고요?  강남까지?

이 세상 모든 장거리 통근자에게 바치는 글

글의 제목은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만났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사는지 말하면 헤엑, 하고 놀란듯 숨을 들이쉰다.심지어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던 와중에 면접관에게도 들었다. 맞다. 나는 인천에 살며 강남에서 일하고 있다. 어언 2017년부터 올해 2022년까지 인천-강남의 통근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인천보다 강남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며 헛헛헛 농담조의 말을 던지고 다니는데, 듣는 사람들은 몰랐을 거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는 것을. 심지어 주말에도 서울로 나간다. 강남은 아니지만 성수, 연희동 등 방방곡곡 누빈다. 생각해 보면 인천은 그저 잠만 자고 나오는 그런 느낌이다. 처음에는 몸도 지치고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햇수가 거듭되다 보니 이제는 무뎌졌다.


논현부터 역삼, 그리고 선릉으로 이어지는 나의 통근 역사. 처음에는 "내가 강남으로 출근을 하는구나" 라는 설렘이 있어 괜찮았지만 설렘의 '약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정확히 일주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차츰 새로움이 옅어지며 눈 밑의 응달이 깊어졌다. 업무 시간이 9 to 6~7이었던 만큼 아침 저녁으로 지옥철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통근 시간을 합치면 왕복 2시간 30분 남짓의 시간이 소요돼 무척이나 힘들었다.

어느 날 출근하자마자 찍었던 사진.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씨 지치던 논현 시절의 나...아련..

하지만 인간은 답을 찾는 존재가 아니던가. 실제로 나는 답을 찾았다. 바로 아침 지옥철만이라도 탈출하는 것.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지각 없이 출근은 잘 했지만,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옥철에서 기력을 다 써 버리니 업무가 잘 될리 없었다. 인천부터 논현동까지 1호선~7호선을 이용했던 나는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적. 열차를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앉아서 올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먹는다? NO.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논현 시절부터 시작한 자발적 조기 출근은 회사가 역삼, 선릉으로 이전하고 나서도 계속됐다. 나의 알람은 항상 5시 55분. 언제나 고정이었다. 나란 사람 엄청 부지런한 사람이라며 살짝 내적으로 으스대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회사 문을 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니, 자연스레 출근하며 누적된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렸다.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에도 더 잘 집중할 수 있었고.


배운 점도 있었다. 세상은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시작된다는 것. 아파트 단지 곳곳 비질을 하시는 경비 아저씨부터 김밥천국 사장님까지. 열차 안에도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펜과 책을 꺼내 들고 무섭게 집중하며 공부하는 사람, 인터넷 강의 켜두고 눈도 안 깜빡이며 보는 사람. 잠이나 좀 자둘까 눈을 감으려던 내 자신, 괜스레 반성하게 되는 모습들이었다. 아침부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잠을 보충하는 것이 짱이라고 생각한다 ㅎ


남들보다 일찍 나오는 방법과 더불어, 강남에서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애정 포인트를 두는 것도 지겨움이나 피로감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힘이 된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생각보다 빌딩들의 모양새가 예쁘고 하늘이 맑다. 시선을 아래로 두면 이런 저런 전단지들이나 오물들만 눈에 들어오는데(특히 담배 피우는 사람들 제발 침 좀 뱉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를 쳐다보면 다른 세상이다. 깔끔한 강남, 하늘 맑은 강남.

이런 빌딩이 있었나? 싶어 찍어본 어느 건물. 벽 무늬가 묘하게 시선을 끌었다
올 상반기 최애 강남 사진. 빌딩 사이에 해가 들어서는 모습이 눈을 사로잡았다
해 질 무렵 따뜻한 색감이 예뻐서 찍은 모습. 찍고나서 몇 초간 더 바라봤다

대학교 '문학과 사회' 시간에 교수님께서 읊조리듯 말씀해 주신 내용이 불현듯 떠오른다. "세상을 따뜻하게 봐야 한다"는 그 말씀. 나는 졸업한지 한참이 지난 요즘에서야 교수님의 그 말씀을 이해하게 됐다. 무엇이든 따뜻한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좋아지기 마련이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지하철역을 벗어나 테헤란로에 올라오면, 가장 먼저 온정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하루 일과의 첫 시작이다. 오늘 하루 잘 이겨보자, 해 질 무렵 하늘도 기분 좋게 보자 생각하면서.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 오늘 할 일, 내일 할 일, 다음 주에 할 일을 고민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논현이든 역삼이든 선릉에서든 시선을 위로 두는 사람들을 많이 못 본 듯싶다. 물론 업무 중에 잠시 테라스나 옥상에 올라가서 남몰래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분들이 많을 수 있겠지만. 잠깐 서서, 혹은 걷는 속도를 조금 줄여서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치열하고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겠지.


우리 청년들보다 몇 십 해는 더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인생 별것 없다" 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그저 건강하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고들 하신다. 누군가는 치열하게 남들과 경쟁하며 많은 돈을 버는 일이, 또 누군가는 범접하지 못할 명예를 얻는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겠으나 나는 웃어른들의 말씀이 맞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힘든 하루 훌훌 털어내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반박 환영, 뒤쳐지지 않고 차별화된 능력으로 많은 돈을 벌며 부와 명예를 얻는 것도 무척 좋은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치열하고 정신 없는 강남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하늘을 보며 살아갈 예정이다. 요즘은 가로수 가득 풍성하게 돋아난 초록 잎에 눈길이 간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뜻하게 바라볼 것들이 늘어가는 만큼, 내 마음 속 인천과 강남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내일 아침에 울릴 알람은 조금 짜증나겠지만, 하늘은 또 맑고 가로수는 푸르겠지. 여러분들도 따뜻한 무언가로 피곤한 통근길과 하루 삶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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