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연수 1년을 채워서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즈음부터 일이 너무 하기 싫어졌다. 열심히 모범생으로 지내서 대학에 갔고, 열심히 준비해서 취업했다. 신입사원으로서도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새 더 이상 열심히 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흐릿하고 반복되는 일상이 두려웠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왔다. 집중은 되지 않지만 퇴근을 위해 할 일을 억지로 하나씩 처리했다. 점심시간에 팀원들의 대화가 즐겁게 들렸지만, 나는 혼자 있고 싶어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되면 피로감이 몰려왔다. 후배의 작은 실수에도 짜증이 났지만 지적하기조차 귀찮아서 내가 직접 고쳐버리곤 했다. 하루 종일 기다렸던 퇴근을 해도 집에 돌아가서 하는 건 없었다. 원룸에 펼쳐진 요가매트에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봤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하루를 흘려보내면서 스스로를 한심해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제 직장인 다 되었구나. 원래 일은 하기 싫은 거고,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게 당연한 거지.'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며 버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널리 알려졌지만, 그게 내 얘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직장을 다니다 보면 조금씩 지치기 마련 아닌가? 직장을 좋아하는 사람, 일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조금 더 건강해진 후 돌아보니, 그때 나는 단순히 '지친'게 아니라 번아웃을 겪고 있었다. 안전관리공단의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찾아보니, 당시 나는 심각한 단계에 가까웠다. 체크리스트 중에 내가 매우 그렇다고 대답한 항목은 이렇다 :
쉽게 피로를 느낀다.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된다. 아파 보인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이 재미없다.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유 없이 슬프다. 짜증이 늘었다. 화를 참을 수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느낀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가 생활을 즐기지 못한다. 자주 한계를 느낀다. 대체로 모든 일에 의욕이 없다. 유머 감각이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힘들게 느껴진다.
그때 나는 2년 간 크게 무기력했고, 이후 3년 동안은 그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사랑에 빠지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노력한다고 단번에 적극적이고 즐거운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뻔할 수 있지만 여러 경험을 하면서 결국엔 내가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일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조금씩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장이 즐거운 곳이 되는 건 운에 달린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직장이 내 일상까지 갉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갓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얼마 없는 에너지로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20대의 절반을 번아웃과 싸우며 보낸 사람으로서, 이 글이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공감이든, 위로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