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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률 May 16. 2023

자취생 필살기 요리, 똠얌꿍

집에서 이런 거 해 먹는 사람 처음 봐!

몇 년 전 초여름 휴일에, 엄마와 서울 익선동에서 인기라는 태국 음식 맛집을 간 적이 있다. 내가 태국에서 맛있게 먹었던 것들을 엄마도 맛봤으면 하는 마음에 평소에 안 하던 대기까지 해서 들어갔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는 걸 즐기는 엄마가 똠얌꿍도 좋아할지 궁금했다.


똠얌꿍은 태국의 대표 음식이고 세계 3대 수프라고 불린다. 새콤하면서 얼큰한 태국식 새우탕이라 할 수 있고 한국식으로 설명하면 대파와 다진 마늘 육수에 고추장을 풀고 액젓, 식초로 간을 한 후 새우, 토마토 등 원하는 재료를 넣어 끓인 국물 요리이다. 짠맛, 신맛, 매운맛이 도드라지고 거기에 코코넛 크림의 부드러운 단맛과 레몬그라스, 라임잎의 향긋한 향이 난다.


익선동 똠얌꿍은 엄마 입에 짜서 뜨거운 물을 따로 요청해야 했지만, 대신 향긋한 레몬그라스가 엄마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마는 시원하면서 얼큰한  감기가 나을 것 같은 맛이라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국물을 들이켰다.    




나는 똠얌꿍을 진작부터 좋아했어서 어느 가게가 내 입맛에 맞는지 취향도 생기게 됐다. 취향이 생기고 나니 내 입맛대로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어졌다. 는 엄마를 닮아 심심한 간을 선호하고 건더기 중에는 토마토를 제일 좋아한다. 직접 만들면 집 앞 야채가게에서 토마토를 싸게 사서 아낌없이 넣을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자취 경력 6년 차로, 라면을 취향대로 요리할 수 있고 냉장고에 남아 있는 양파, 달걀 같은 재료를 활용해서 뭐든 먹을 만한 한 끼 식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손맛은 없어도 요리 머리는 있으니 똠얌꿍도 고추장찌개처럼 만들 수 있지 않겠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똠얌꿍은 카레처럼 향신료와 조미료 맛이 강해서 자췻집 냉장고에서 시들어가고 있는 재료로 만들어도 티가 안 날 것 같았다.

 

집에서, 게다가 자취생이 똠얌꿍을 해 먹는다고 얘기하면 주변에서는 "에엥? 그 태국 음식 똠얌꿍?"이라며 놀란다. 이국적인 음식이다 보니 만들기나 재료를 구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똠얌은 지금 내 손님용 요리 필살기이고 냉장고 정리할 때 애용하는 레시피이다.




예상보다 만드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재료가 특별히 비싸거나 희귀하지도 않다. 위에서 한국식으로 설명한 재료들을 모두 태국식으로 갖춰둬야 하니 자취생 처지에서 재료의 진입장벽이 높긴 하지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다. 값은 한국 음식 재료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싸기 때문에 보관할 장소만 충분하다면 도전할만하다.


일회성으로 시도해 보고 싶다면 일 회 분량의 키트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랑스러운 맥시멀리스트로서 필요한 재료를 한 통씩 샀다. 부엌이 좁다고 꿈도 작게 꾸면 안 된다는 게 내 철칙이다. 조미료는 냉장고에 꾸겨 넣으면 되고 레몬그라스대파처럼 손질해서 냉동보관 면 된다.

구매한 조미료/향신료: 똠얌페이스트 (기본 향신료 반죽), 피시 소스 (태국식 액젓), 라임 주스(식초에 해당), 레몬그라스, 갈랑가, 라임잎 (대파에 해당. 육수를 우리는 향신료)   


똠얌꿍에서 '꿍'이 태국말로 새우를 뜻하긴 하지만 꼭 새우가 들어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태국에서 먹을 때도 메뉴 이름에서 '꿍'을 빼고 새우 대신 고기가 들어가기도 했다. 가게마다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했기 때문에 나도 냉장고에 남아 있는 재료를 이것저것 넣었다. 헬스를 열심히 다닐 때는 닭가슴살을 넣기도 했고 싸게 사 온 알배추를 처리해야 할 때는 배추를 넣었다.


자취 음식으로 생소해서 그렇지, 막상 만들어 보니 예상대로 고추장찌개와 다를 게 없었다. 사둔 향신료로 육수를 우리다가 조미료를 대충 한 큰 술씩 넣고 손질해 둔 토마토나 버섯 등을 넣어 끓이면 끝이다.   




동네 친구들에게 몇 번 해주고 좋은 반응을 얻어서, 엄마에게도 내 실력을 뽐내기 위해 익선동에 갔던 해 추석에 똠얌꿍 재료를 다 짊어지고 본가로 갔었다. 본가가 멀지 않아 그럴 생각을 한 거긴 하지만, 일단 엄마 집엔 똠얌꿍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엄마 집에는 다진 생강도 있고 말린 표고버섯도 있고 현미 쌀도 있고 청국장도 있지만 레몬그라스와 피시 소스는 없었다.


모든 게 있는 가정집에 없는 재료가 내 자췻집엔 있다는 걸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는 짐을 한가득 끌고 온 내 모습을 보고 "아니 이걸 왜 다 들고 왔어"라고 말하긴 했지만, 역시나 내가 끓인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자취생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만들어 먹는 요리는 보통 손님에게 대접하기에 좀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혼자 해 먹어 보니 똠얌꿍은 색다르면서도 다양한 재료로 건강도 챙길 수 있고 자신에게 요리를 대접한 기분이 들게 하는 메뉴였다. 손님들에겐 "집에서 이런 거 해 먹는 사람 처음 봐! 근데 파는 거처럼 맛있어!"라는 칭찬 들을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요리가 아닌 내 취향과 손님을 위한 요리를 한다는 건 꽤 우쭐대고 싶은 일이다. 막상 해 보면 별 것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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