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률 Oct 27. 2024

나에게 일은

돌이켜보면, 일이 재미없고 열의가 없었던 건 머리로는 열심히 하고 싶어 했지만, 마음과 몸이 그 기대를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정말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은 게 맞는지부터 확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관성에 따라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맞다. 하지만 그 대상이 '일'일 필요는 없다는 걸 여러 시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입시나 취업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를 쫓아왔지만, 이제는 꼭 그런 일에만 내 에너지를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행동에 책임감 있게만 행동한다면 말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이전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하며 깨달은 건 내가 이 일을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번아웃과 작별하기 위해 이직을 결심했다. 잦은 야근으로 나를 돌볼 시간이 부족했기에, 업무 강도가 낮은 작은 회사로 옮겨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줄이고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결정이었다. 혹시 나중에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지금 업계에서 그런 미련은 아직 없다.


물론 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으니 이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마음가짐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환경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활력 없이 우울한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휴직이 별다른 효과를 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긴 고민 끝에 '일은 내게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후였다. 그래서 이직 후에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누군가는 일을 단지 '돈벌이'로만 여기는 것이 매력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매력 없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처리하되, 남은 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며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퇴근 후에 브런치를 쓰고 복싱장에 가며, 주말에는 춤 수업을 듣고, 틈틈이 뜨개질로 에너지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내적 기강을 다잡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필요하다'며 게으름을 부리곤 했지만, 지금은 너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걸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충전되고 내 마음의 에너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진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