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Jun 12. 2023

20대 사이에서 막내일을 하는 50대



 가끔은 주방에 출근을 하면 특이한 막내가 말단의 일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일을 배우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 혹은 그저 주방의 일을 배우고 싶어서 들어온 사람, 너무나도 바쁜 날 때문에 하루이틀 설거지만 하려고 온 단기알바생. 다른 주방에서 나와 새로운 주방에서 다시 막내의 일을 하는 사람.

 주방은 날카롭고 뜨겁고 위험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실력을 인정해 주는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안전하고 반복작업이 많은 말단의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경우도 있었다.

 그 주방은 사장을 제외한 최고 고참이 28살이었고 최소 21살로 구성된 멤버에 새로운 막내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제 50세를 눈앞에 둔 한 여성분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엄마뻘이 되는 분에게 수고가 많은 일을 떠넘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직원들의 입장에서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막내일을 한다는 게 마냥 편한 건 아니었다.

 최대한 말단의 일을 거리낌 없이 넘겨야 자신의 일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말 그대로 일의 순환을 부드럽게 하는 것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막내 또한 그런 입장이라는 걸 알기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더 힘들었다.


 그럼에도 일주일 후면 50대로 들어서는 그 여성분은 그런 눈치가 있더라도 수많은 설거지들을 받아들이면서 묵묵히 일했다. 거기다가 그때는 1년 중에서 가장 바쁘다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한 주였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그런 막내의 존재에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불만은커녕 오히려 있어주는 게 감사할 정도로 바쁜 연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첫 주부터 이렇게 힘들어서야." 사장님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막내에게 이런저런 걱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렇네요. 정말 쉴 틈 없었어요."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빠르게 순환했음에도 주문을 받은 테이블의 수는 가히 200여 개. 오늘 하루에만 수백 개의 파스타를 만들었고 모든 접시들이 열 번 넘게도 음식을 담기고 씻기까지 많은 노동이 필요한 날이었다.

 사실 사장님도 어쩔 수 없이 뽑게 된 자리였다.

 당장 더 바빠질 것인데 크리스마스가 있는 한 주에서 일을 시작하려는 알바생은 찾기 어려웠고, 그 순간에 나타난 그분을 뽑지 않는다는 건 하루 매출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망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새해가 지났다.

 1월 1일이 되는 새벽이 찾아왔고, 사장님은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나갔으며 우리는 직원들끼리 매장에 남아 그 해의 마지막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그분에게도 권유를 했다. 하지만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한 호칭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는지.

"괜찮아요.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가봐야겠어요. 젊은 친구들끼리 재미있게 보내요." 라며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래요? 그래도 같이 고생하셨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드시고 들어가시지."

"권유는 정말 고마워요. 솔직히 저도 그런 자리에 같이 뒤풀이 같은 것도 하고 싶은데. 집에 아이들도 있고 하다 보니."

"아. 그렇죠."

 막내의 일을 하지만, 가정이 있으며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한 명의 어머니였다.

 그렇기에 조금 어려웠다. 주방의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지금이 얼마나 힘든 시기인지는 더 잘 알고, 각자 어머니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쉽게 다가가야 할 막내의 위치에 존재한 그분에게 살갑게 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뒷담화는 아니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궁금증으로 막내인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자한 느낌으로 계속 웃으면서 일해주시니 마음이 편하긴 하죠."

 누구는 인상에 대해.

"솔직히 그 나이대면 한정식이나 분식집? 김밥천국 같은 곳에서 주방 이모 같은 일을 하셔도 괜찮을 텐데. 아니. 뭐가 어떻고 비하하는 게 아니고, 결국엔 받는 돈은 같잖아요? 굳이 어렵고 힘든데 똑같은 돈을 받는 곳에서 일하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싶어서요."

 누구는 일을 시작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해.

"누구든 상관없지, 차라리 책임감 없이 대충대충 식기세척기에 때려 넣는 놈들 보단, 지금 그분이 훨씬 낫지. 오히려 맘 편해."

 누구는 불만은커녕 그 자리를 끝까지 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결국엔 왜 굳이 이렇게 어려운 일에 뛰어들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이야기는 진행되었다. 하지만 우리끼리 이야기한다고 해서 풀릴 궁금증도 아니었다.

 참다못한 한 직원이 '그럴 거면 그냥 직접 물어보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다음날 바로 물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답은 아주 쉽게 돌아왔다.

"아이들이, 큰 애가 곧 성인이 되는데, 지금은 어렵지만 제 아이만한 나이일 땐 주방에서 양식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제 와서야 그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닌데, 지금 여기에 있는 직원들 만할 때까지 가졌던 꿈을 직접 못하더라도 눈에 담아보고 싶었거든요. 될 수 있으면 같이 일해볼 수 있으면 더 좋고 말이죠. 근데 역시 나이 때문인 건지 아니면 이 일이 힘든 건지 생각보다 더 고되긴 하네요." 그리고 그분은 소소한 웃음으로 마무리지으며 한마디를 더 붙였다.

"그러니 편하게 막내로서 일 주셔도 괜찮아요."


 막내는 정말로 인자하며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일을 시키고 일을 주고 막 부려져야 하는 입장이 불편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이 더 다가오고 낮추기까지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막내의 청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생기곤 했다.

 일찍 하게 된 결혼에 두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출산.

 사랑만을 따라가 잃게 된 낭만에 대한 이야기.

 청춘에 대한 부러움과 미련과 존경.

 그리고 더욱 빨라지는 자신의 시계 속에서 내딛게 된 도전. 


 우리는 막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하고 가볍게 보일진 몰라도 인생의 선배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막내는 그 이후 12월부터 시작해 5월까지 일을 했다. 마지막 한 달에는 직원용으로서 파스타도 만들어보았고 조금은 위험하지만 화덕피자를 만들기 위해서 피자 반죽을 펴보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건, 자녀의 전학을 따라 서울로 이동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막내는 마지막에 그렇게 말하고 인사했다.

"주방일이라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른 곳에 다시 하긴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도 그런 곳이라는 걸 배우고 일하고 싶었던 꿈을 경험하게 된 곳이 여기라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일 잘 못했는데도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막내는 정중한 인사를 하며 끝까지 자기보다 어린 우리에게 존칭을 했다. 아마 그런 기본적인 존중을 끝까지 했지에 우리 또한 막내에게 존중을 하며 웃는 얼굴로 보낼 수 있었다.


 설거지만 하고 말단의 일만 하는 막내의 일이라는 게 별 볼 일 없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귀한 경험이고 누군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직업과 일에는 귀천이 없다.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이 있을지 언정, 하찮은 일과 직업 따위는 없다. 그 자리 그 위치 또한 누군가는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만큼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이와 선후배의 문화가 강한 한국인만큼 막내의 도전은 누군가의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자신 또한 큰 어려움이 계속될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해보지 않는 일에 도전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건 인생의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더 큰 용기가 필요하곤 한다. 익숙하지 않은 곳,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은 곳, 서로에 대한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곳, 그런 곳에서 뛰어든다는 것 또한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하다.


 막내였던 그분은 지금은 어떤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