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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 홍한별 옮김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까마귀가 검은 배로강 위로 날아올랐다. 


언덕 위 수녀원에 갇힌 어린 소녀들의 낮은 비명 소리가 겨울나무 사이로 안개가 되어 축축하게 흘렀다. 


아기예수의 탄신을 축복하는 크리스마스날,  빌 펄롱이라는 사내는 힘없는 소녀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소녀는 맨발이었고 검은 석탄이 묻어 있었으며 낡은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기쁜 구세주 오신 날, 가문비나무로 꾸민 성탄절 트리가 화려하게 점멸하고 가짜 수염을 단 산타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주었다. 신부님이 예수님의 사랑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라고 강론하던 밤. 선한목자 수녀원은 어린 여성들을 불법감금하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있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소녀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사내에게 묻지 않았다. 그저 소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내의 뒤편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유리조각처럼 날카롭게 반짝거리며 사라졌다.

막달레나 세탁소라고 불렀던 카톨릭 수녀원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아내의 핀잔 섞인 목소리도 사내의 귓전에서 거친 파도가 되어 일렁거렸다. 하지만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자신의 아이를 빼앗긴 소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놀라 소녀의 부탁을 차마 들어주지 못했던 사내. 빌 펄롱은 그 일로 깊은 죄책감에 빠져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방황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오신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의심하며 낮게 읊조렸다.


‘이렇게 고요한데 왜 평화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

그리고 사내는 문득 자신의 딸아이들도 자신이 옆에 없었다면 그 소녀처럼 수녀원에 감금되어 강제노동을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선한목자 수녀회는 어린 소녀들이 낳은 사생아들을 강제 입양시켜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자신 또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은 사생아였으며 16살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도 몹쓸 여자로 낙인 찍혀 수녀원의 직업 여학교에서 감금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도 어딘가로 입양돼 팔려 갔을 것이다. 


정말 운이 없었다면 어머니와 자신, 딸아이들도 그 소녀의 운명처럼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소녀의 이름은 어머니의 이름과 똑같은 ‘세라’ 이지 않았는가?


빌 펄롱과 그 어머니는 미시즈 윌슨이라는 착한 할머니의 도움을 받지않았다면그 가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빌 펄롱은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며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솟았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빛이 밖으로 나가는 듯한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좀처럼 느끼지 못한 삶의 환희였다.


그동안 사내는 태양과 함께 일을 시작하고 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생활에 지쳐 있었다. 때론 무료와 권태가 몰려왔고 삶의 회한이 무시로 사내를 짓눌렀다. 그러나 사내는 소녀를 수녀원에서 데려 나오며 삶의 새로운 의미를 새겼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장작과 석탄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아일랜드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직업학교와 세탁소에서 강제노동과 매질, 성추행한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작가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무미건조한 사실관계만 전달하거나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호들갑을 떨지도 않는다. 인간의 내면을 다루는데 능수능란한 작가는 빌 펄롱이라는 사내를 통해 인간 심리를  밀도 있게 스케치한다. 딸아이 다섯을 키우는 중년 남성의 숨겨진 생각과 매일 반복되는 일에 대한 권태와 지겨움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또한 현재 살아가는 의미를 되물으며 간혹 일탈적인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처음 소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과 갈등을 세밀하고 고요하게 그려내며 사람은 결국 서로 돕고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빌 펄롱이 미시즈 윌슨의 도움을 받았듯이 그 또한 세라라는 소녀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하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때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가 있으며 이 소설이 특별한 갈등 구조나 흥미로운 요소는 없지만 암담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서로 돕는 친절과 배려 속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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