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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드 Jun 25. 2020

좋은아빠란 무엇일까

무럭무럭 자라렴

"괴짜가족의 고테츠처럼 자랐으면 좋겠어"


 아내와 연애를 할때 내가 입버릇 처럼 말하던 우리 아이에 대한 나의 바람이었다. 천방지축에 골목대장인 사내아이였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는 정말 착하고 순하고 밝고 예쁘다. 매일 '어디서 왔어? 날개는 어디갔어?"라고 물으면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뭐라뭐라 쫑알쫑알 대답을 한다. 너무 예뻐서 힘껏 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분명 착하고 밝은 아이다.


 그래서 아이를 훈육하겠다고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나면 스스로 너무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착한 아이에게 내가 무슨 얘기를 한걸까. 세살짜리 아이가 이런 장난 마저도 안하면 그게 문제있는거 아닐까". 내 바람대로 '고테츠'같은 아이였다면 정말 나는 상담이라도 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좋은아빠란 무엇일까.


 아이를 보며 매일 웃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가끔씩 '내가 잘 하고 있는것일까'하는 생각에 무서워질 때가 있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는 이유는, 아이는 부모가 제공하는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행여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면 우리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건 아닌지 겁이난다.


 이 세상 모든 부모의 고민이라는 것을 알고있다.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도 없고, 이 아이가 스스로 타고난 그대로 자랄 수 있게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최선일텐데. '옆집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우'면 그것이 최고의 육아방법이라고 하던데, 실제 내 아이를 키우니 맘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것일까, 내 통제하에 두고 싶은것일까'. 걱정의 근본적 출발점이 아이인가, 나인가하는 생각에 다다랐다.


 오늘 아침 식탁이 아닌 탁자에 내려앉아 밥을 먹는것에서 화가 조금 났다가, 펜으로 스케치북에 그리다가 스케치북을 벗어나 매트에 온갖 칠을 한것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를 했다. 처음하는 얘기가 아니라서 더 답답하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것이 조금 못마땅했던것 같다. 이제 세 살인 아이에게 내 말대로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고 교정하겠다고 드는것이 맞는지는 나 스스로 다시 돌이켜 생각해본다.


 글을 적는 순간에도 '너는 정말 아빠 예상보다 훨씬 착하고 순한 예쁜아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내 깜냥이 모자라 아이의 장난을 포용할 수 없음을 다시 반성한다. 아이에게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할게 아니라 부모 스스로 '이런 사람이 되자'고 생각하는게 더 좋은 방향인것 같다. 내가 더 넓어지면 그만인것을.


얼마전 갑각류에 대한 다큐를 보다가 '탈피'에 대해 마음에 남는 얘기가 있었다. 갑각류는 한동안 성장하지 않다가 '탈피'할때 껍질을 째고나와 껍질이 전혀없는 연약한 상태에서 한번 성장을 하고 다시 딱딱한 껍질속에 산다는 얘기. 가장 연약한 상태에서 크게 성장한다는 얘기. 우리 아가에게도 우리는 단단한 껍질이 되줄 수 있을까. 엄마 아빠의 단단한 껍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해. 너의 단단한 껍질이 되어줄게.


 나의 부모님은 남들의 기준에선 특별히 대단한 분들은 아닐지 모르지만, 자녀를 기르는 방식에 있어서는 가장 존경할만한 분들이다. 나는 자라는 동안 단 한번도 '무엇을 해라, 하지말아라'라는 말을 듣지 않았고, 내가 무얼하든 그걸 응원해주셨다. 나는 군생활동안 관물대에 부모님 사진과 함께 책에서 찢어낸 글귀 하나를 같이 걸어두었는데, 쉽지 않은 군생활동안 무척 큰 위로가 되었다. 그 글귀는 아직도 내 책상위에 부모님 사진과 함께 있다.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주)


늘 너를 응원할게.



주) 공지영,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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