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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 Aug 27. 2021

방황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민음사, 15,000원) 서평

 둘도 없는 친구의 죽음, 죽은 친구의 여자 친구에게 느끼는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의 자살. 이는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 줄거리를 이루는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인물 간 관계와 배경 묘사는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기묘함을 풍긴다. 우선 주변 인물 대부분이 현실에서 자주 보기 힘든 특이점과 솔직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나칠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외설적인 묘사와 인물들이 성(性)에 가지는 가벼운 태도가 기이함을 풍긴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와 그의 오랜 소꿉친구이자 여자 친구인 나오코와 함께 자주 어울려 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친구가 자살한다. 기즈키의 죽음으로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슬픔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주 산책하고 어울리며 사랑 아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나오코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사랑 사이, 와타나베를 좋아한다고 매번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는 미도리가 나타난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도 불확실한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한다. 나오코가 20살이 되던 날, 그는 그녀의 집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되고 다음날 차갑게 얼어버린 그녀를 두고 자취방에서 나온다. 이후 꽤 오래 소식이 끊기게 되는데…. 나오코에게 열심히 편지를 써 알게 된 그녀의 소식은 시골에 거취를 옮기고 요양 중이라는 것. 그녀를 찾아가 몇 번의 면회를 하면서 좋아진 건강 상태에 안심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오코는 죽은 기즈키의 목소리를 따라 자살을 선택한다. 그 충격으로 와타나베는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삶의 대극이 아닌 그 일부로 존재함”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것을 잃는 슬픔은 치유될 수 없고 우리는 흘러가는 대로 아파하고 추억을 떠올리며 묻고 사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작품을 내고 ‘음담패설 집, 허드레 대중문학’이라던가 ‘고전으로 불리기 충분하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필자는 음담패설 집 같다는 평가에 동의하는 동시에 내가 작품을 얼마나 깊게 해석하는지에 한해 고전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루키 자신도 스스로 “상당한 문제가 있는”작가라고 인정하지만 그의 읽기 쉽고,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듯한 입체적인 문체는 많은 독자를 거닐만하다.   

   

 『노르웨이의 숲』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사다. 와타나베 앞에서 항상 참새같이 활달하고 재잘거리는 미도리는 삶을 대변하는 인물인 반면, 나오코는 죽은 기즈키라는 우물에 갇혀 죽지 못해 사는 죽음에 가까운 사람이다. 와타나베가 사랑과 삶에 방황을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혼란스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설 속 배경인 일본의 1950-60년대는 20대 자살률이 60%로 최고조였다. 저자 하루키는 20대 시절 기억을 되살려 『노르웨이 숲』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당시 일본은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때로 개인주의가 심해지던 시기였다. 아마도 그렇게 급작스럽게 당면한 무규범의 불안정한 삶에 불안함을 떨칠 수 없던 청년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본다. 세계에서 청년 자살률 2위인 우리나라도 많은 청년이 이러한 방황, 상실의 시간을 갖고 있다. 1980년대에 출간된 소설이지만, 40년도 더 지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소설 속 사랑이 대변하는 방황과 상실감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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