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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문 Apr 12. 2022

"시간 도둑은 우리 마음 안에 있어."

『모모』 서평

취업 준비를 할 때, 첫 사회생활에 이제 막 적응해 혼란스러워할 때 나는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조급했으며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미 하루하루의 성취를 해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몇 시간, 친구들과의 약속 그러니까 잠깐의 여유를 누리는 것에 매우 인색했다. 으레 '취업 준비생'이라 하면 친구 만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스펙을 쌓고 서류를 넣고 면접을 봐야 하는 게 당연지사라 느꼈다. 막상 일을 시작하게 돼서도 이전과는 달라진 삶에 정해진 할 일을 헤쳐 내느라 다른 사람들이 소진되는 것처럼 '쉬어야 해.'라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일이 끝나면 만남을 단절하고 이불 안에서 휴식을 취하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산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이다. 이제는 미래에 대한 안정적인 생각을 하고 직장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면서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업무 속도도 굉장히 빨라졌다. 여유를 누리게 되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린 시절 있었던 일도 곧잘 떠올랐다. 어릴 적 종종 가던 동네 작은 도서관을 방문해 한 책을 발견했고 이로 인해 잊고 살았던 중학생 시절 기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당시 친했던 친구가 학교 도서관 책장 한켠에서 <모모>라는 책을 꺼내며 "꼭 읽어봐. 엄청 재밌어."라고 했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모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음을 찾을 수 있게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녀였고, 그랬기에 많은 사람들은 모모를 찾아왔다. 적어도 시간 도둑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회색 신사라고 불리는 시간 도둑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갔고, 시간을 아껴 써 저축하지 않으면 마치 '당신의 인생은 볼 품 없이 마감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여유롭고 친절했던 도시에선 시간 절약이 미덕이 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큰 목적을 뭔가를 이뤄내고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데 두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우정과 사랑, 명예는 그 뒤에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모모>는 무분별한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세상에 의문을 던지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삶)에 대해 생각할 지점을 열어준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 괴로워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 정말 당신이 원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말이다. 나의 경우, 뭔가를 이루고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데 집중했을 때, 즉  실로 막연한 것만을 바라보고 달렸을 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조급해 하고 불안해하는 데 썼었다. 차라리 내가 보다 구체적인 하루하루의 목표에만 집중했다면, 주변을 돌아보면서도 내 하루의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말이다.  

소설 속 모모가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주는 과정에서 발견한 건 '모든 사람들의 시간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너무 먼 미래, 먼 이상향에 나아가기 위해 주변도 돌아보지 않고 시간을 쪼개고 아껴가며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려나가지만, 신기하게도 어느새 목적지와는 더 멀어져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 사이 좌절과 극복을 수십 번 반복하며 그토록 빨리 지나가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던 베포처럼 조급해 하지 않고 천천히 하지만, 묵묵하게 오늘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 그려둔 구체적인 이상향에 어떻게 도달했는지도 모르게 닿아있지 않을까? 지치지 않고 무너져 내리지 않고도 최종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하는 방법은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물론 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만. 당연히 필자에게도 또 무언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생긴다면 마음속에 시간 도둑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동안 달려나가다 모든 것이 소진된 듯한 무기력함을 느꼈던 필자의 경험으로서는 현재의 시간을 만족하는 데 집중했더니 신기하게도 시간과 여유가 생겨났다. 특히 잊고 지냈던 추억과 따뜻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함께 그 기억을 만들었던 이들을 찾게 되었다. 

모든 것이 지루하고 의욕 없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대들에게 이 시간의 비밀이 발견되기를 바라본다. 그대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마음속에 잊지 못할 아름다운 꽃이 다시 펴지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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